A안.png

절차탁마(切磋琢磨), 칼로 다듬고 망치로 쪼아 숫돌을 간다는 뜻입니다. 학문이나 기술을 오랜 기간 연마하는 것을 표현하는 사자성어입니다. 한국은 물론 세계 반도체 업계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때부터 반도체 기술을 연마해 경쟁력을 쌓아올린 중국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수탁 생산)업계의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 입니다. 중국어 이름인 쭝신궈지는 한자로 ‘중심국제(中芯國際)’입니다. ‘심(芯)’자가 중국어로 반도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해석하면 “중국 기술로 만든 반도체를 세계에 퍼뜨리겠다”라는 포부가 담긴 기업 이름입니다.

SMIC 매출 성장의 비결은?

절차탁마 표.jpg

당찬 포부가 무색하지 않게 SMIC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2002년만 해도 5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이 2016년 29억 달러로 58배 성장했습니다. 점유율에서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삼성전자와 UMC, 글로벌파운드리 등을 바짝 뒤쫓고 있습니다. 2004년 홍콩 및 뉴욕 증시에 상장했으며 2007년부터 미국 주요 업체를 고객으로 거느리는 등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매출 성장은 탄탄한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뒷받침된 결과입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28㎚(나노미터·10억 분의 1m) 기술의 수준도 의심됐던 SMIC는 퀄컴, 화웨이 등과 손잡고 14㎚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미 2015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데다 한국에서 고위 기술자를 영입해 내년이면 양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두 파운드리 업체의 미세화가 7~8㎚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입니다. 2016년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부품 관련 전문 파운드리업체 L파운드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국 반도체업계에서도 “파운드리만큼은 중국이 한국 업체에 큰 관심을 가지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생산 규모도 만만치 않습니다. 본사를 포함해 상하이에 12인치 웨이퍼 공장 한 곳과 8인치 공장 세 곳, 베이징에 12인치 공장, 톈진에 8인치 공장, 선전에 8인치 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한에도 12인치 공장을 갖췄습니다. 청두에는 후공정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안부터 내륙까지 중국 전역에 9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 정부의 자본을 활용해 설비 투자를 빠르게 늘려온 결과입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중국 내 선두업체들이 흔히 채택하는 방식으로, 2009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사례 연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숨은 1등 공신, 장루징 전 회장

절차탁마1.jpg

▲ 출처: SMIC 공식 홈페이지

 

이 같은 성장 배경에는 아직 한국에서는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탁월한 경영자의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2000년 설립 당시부터 2009년까지 SMIC를 이끈 장루징(張汝京) 전 회장입니다. 1948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난 장 회장이 출생과 동시에 국민당을 지지했던 부모와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갔을 때, 아무도 이 갓난 아이가 반세기 후 대륙으로 돌아와 반도체 산업을 이끌 것으로 예상 못 했을 것입니다. 타이완대학을 졸업한 장 회장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에서 석사, 남부감리대에서 박사를 받으며 반도체 관련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이후 미국 반도체 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20년간 근무했으며,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 이탈리아, 타이완에 이르기까지 20개에 가까운 공장에서 일하며 반도체 양산 기술의 전문가가 됐습니다.

2000년 장 회장은 “대륙에서 반도체 기술을 꽃피우겠다”라는 포부를 안고 상하이 시정부 등이 출자한 SMIC를 이끌게 됐습니다. 이후 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매일 아침 흰색 소형차를 끌고 가장 먼저 출근해 12시간씩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중국 경영자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 신자로 일요일은 쉬고 교회에 다니며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출장 때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고 호텔비도 가능한 아끼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온화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부하 직원을 엄격히 다루고 크게 야단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번 야단치는 대신 인사로 불이익을 주지는 않아 SMIC에서 여러 혁신이 나타나는 토양을 일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SMIC는 2016년 4분기 3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등 중국 첨단 산업에서 드물게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10배에 달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들도 든든한 내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회사입니다. TSMC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한국경제신문

노경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