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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은 지난해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누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냈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당장 올해부터 중국의 거센 도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부터 반도체업계를 긴장시킨 중국의 ‘반도체 굴기(堀起·우뚝 섬)’ 원년이 바로 올해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특히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룬 중국은 이제 메모리 반도체로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업계에서는 푸젠·칭화·허페이·YMTC 등 중국 기업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장비 투자에 20조원 가량을 쓸 것으로 예상합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반도체 산업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까요?

왕성한 M&A 식성, 반도체社 마구잡이 인수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토록 반도체산업에 집착하는 걸까요? 알다시피 중국은 전 세계 전자 제품의 60% 이상을 제조하는 ‘세계의 공장’입니다. 이런 중국은 매년 2200억 달러(약 235조원)의 반도체를 수입하고,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60% 가량을 소비하는 반도체 최대 소비국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아직 20%대 수준에 그칩니다.

반도체는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으로 대표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으로 여겨집니다. 중국은 이런 반도체산업을 더 이상 수입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고 보고, 대규모 자본 투자를 통해 시장 확보에 나선 겁니다. 반도체가 지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역시 중국이 주저 없이 투자하는 이유입니다.

반도체를 국가 중점 육성 산업으로 규정한 중국은 지난 2015년 ‘메이드인 차이나 2025 전략’을 발표하고,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해외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입니다. 선진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M&A를 택한 겁니다. 칭화홀딩스와 베이징-장군 인베스트먼트의 합작 법인인 칭화유니그룹은 스프레드트럼·RDA 등 반도체 설계 기업뿐 만 아니라, 파워텍·SPIL·칩모스 등 패키지 및 테스트 기업까지 모조리 인수하면서 왕성한 M&A 식성을 보여줬습니다.

다른 하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로의 영역 확대입니다.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2016년 자국 내 기업인 XMC를 인수해 창장메모리를 설립했습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SK하이닉스 등 핵심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대해 지분 인수를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M&A가 여의치 않자,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 제조라인에 직접 투자하고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성과내고 ‘메모리’로 확장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기업 두 곳이 세계 20위권에 포함됐고,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2개 기업이 세계 10위권에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도 2015년 736개에서 2016년엔 1362개로 급증했습니다. 이 기업들의 매출은 177억 달러(20조원)로 세계 시장의 11%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구 개발 인력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상위 20개 시스템 반도체 기업의 인력은 총 2만여 명으로, 한국 전체 시스템 반도체 기업 종사자의 약 4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2014년만 해도 100명이 넘는 인력을 보유한 중국의 팹리스 기업은 328곳이며, 500~1000명 규모의 인력을 보유한 중견 기업도 42곳에 이르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국내 전체 팹리스 기업이 200개가 안 되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합니다.

선두 기업의 우수 인력도 대거 영입하고 있습니다. 다년간 반도체 설계 및 생산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고급 인력들은 중국의 반도체 연구 개발 인력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국은 재료·공정·장비·패키지·테스트 등 후방산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어 완벽한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1위 뺏긴 디스플레이, 중국이 무섭다

우리가 관심이 가는 분야는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아직까지는 D램과 낸드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와 4~5년 수준의 격차를 보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정부의 막강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반도체기업이 우리와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혀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와 같은 장치산업으로 분류되는 디스플레이 쪽으로 시선을 돌려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해 3분기 디스플레이업계에선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줄곧 우리가 1위였던 9인치 이상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LCD·OLED 등) 시장에서 중국 BOE가 LG디스플레이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겁니다. 중국이 LCD 굴기를 선언하고, 평판 디스플레이를 본격 생산한 지 딱 10년 만에 생긴 일입니다.

총 84조원을 투자해 우한, 청도, 난징 등의 지역에 반도체 제조라인 구축한 칭화유니그룹은 올해부터 3D(3차원) 낸드를 양산합니다. 시노킹 테크놀로지는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D램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푸젠진화반도체는 대만 UMC와 협력해 D램 생산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는 이들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2020년쯤에는 의미 있는 수준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과연 올해 중국 업체들이 계획대로 양산에 돌입하면서 반도체 굴기의 원년을 알리는 서막이 펼쳐질까요? 아니면 역부족인 걸 실감하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치게 될까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우리나라 기업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술 유출 방지와 고급 인재 양성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일 것입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 선언으로 국내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수년간에 걸쳐 진행됐던 극한의 ‘치킨게임’ 속에서도 리더십을 더욱 공고히 했던 저력 있는 기업들입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얘기하던 중에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중국의 잠재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아직은 성과가 드러난 것이 없잖아요? 중국이 우리를 쫓아온다고 해도, 그만큼 다시 격차를 벌려놓을 만큼 충분한 능력이 있습니다.” 늘 그래왔듯,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의 맹추격에도 흔들림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지키기를 기대합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