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코로나 19가 모든 이슈를 잠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도 기업들은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다양한 마케팅으로 활로를 모색했다. 덕분에 사람들은 어려운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마케팅은 MZ세대를 겨냥한 ‘뉴트로(New-tro)’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다.
뉴트로, 과거의 향수에 현대적 재해석을 더해 인기를 끌다
뉴트로와 레트로(Retro)의 차이점은 뭘까? 레트로는 과거에 유행했던 것을 다시 되새기며 추억을 꺼내어 그때의 향수를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뉴트로는 레트로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트렌드를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마치 새로운 상품을 접하는 것처럼 아이디어를 더해 과거에 대한 향수와 새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을 뜻한다. 쉽게 요약하면 레트로가 과거를 재현한 것이라면 뉴트로는 과거를 재해석한 것이다.
뉴트로와 레트로는 소비층에서도 차이가 난다. 레트로의 소비층은 주로 20~50대 중장년층이지만 뉴트로의 소비층은 주로 10~30대다. 특히 1980~2004년에 태어난 MZ세대가 뉴트로 열풍을 이끌고 있다.
▲곰표 밀맥주(사진제공 : 곰표)
뉴트로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지난해 5월 편의점 브랜드 CU가 대한제분, 세븐브로이와 협업해 출시한 ‘곰표 밀맥주’를 꼽을 수 있다. 곰표 밀가루의 백곰 마스코트를 캔에 그려 넣어 복고 느낌을 살린 이 맥주는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물량 10만 개를 ‘완판’하며 전체 국산 맥주 판매량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오래된 밀가루 브랜드의 마스코트인 귀여운 백곰이 왼손에는 주재료인 밀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이 MZ세대에게 ‘신선함’과 ‘독특함’으로 다가가며 인기를 끌었다.
경기 불황기에는 복고가 유행하곤 한다. 익숙함에서 심리적인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뉴트로 마케팅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고객들의 충성도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이색적인 경험을 원하는 젊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위기였던 코로나 19 시대를 겨냥한 뉴트로 마케팅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 중 하나라 할 만하다.
게임업계 리마스터 열풍, 성공 사례와 기대작
게임업계도 이런 트렌드에 올라탄 모양새다. 과거 인기 게임을 현대 기술로 다시 출시하는 리마스터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가장 성공적인 리마스터 사례로는 ‘콜 오브 듀티 모던워페어 리마스터드(Call of Duty Modern Warfare Remastered)’를 꼽을 수 있다. 미국 게임사 인피니티 워드는 2016년 자사 대표 IP(지식재산권)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리마스터해 유저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인칭 슈팅 게임((FPS, Frist-Person Shooter)으로 만들어준 명작 ‘콜 오브 듀티 4: 모던워페어(Call of Duty 4 Modern Warfare)’를 리마스터해, 유저들의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 본연의 게임성을 살리면서 그래픽은 대폭 업그레이드해, 가장 모범적인 리마스터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가장 최근의 성공 사례로는 넥슨의 중국 자회사인 세기천성에서 개발한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를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고전 명작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를 리마스터한 제품으로, 모바일 기기에 맞춰 물리엔진을 바꾸고 완전히 새로 개발됐다. 지난해 5월 한국 출시 이후 기존 유저와 MZ세대를 아우르며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의 지난해 신규 다운로드 횟수(안드로이드 기준)는 약 920만회로 786만회를 기록한 2위 ‘어몽어스’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 공식 홈페이지 메인화면 캡처
최근에는 게임 팬들로부터 오랜 사랑을 받아온 대작 게임 시리즈의 리마스터 버전 출시 계획이 공개돼 큰 화제를 모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디아블로2 레저렉션(Diablo2 Resurrected)’.
디아블로(Diablo) 시리즈는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StarCraft)에 견줄 만한 블리자드(Blizzard)의 대표 IP다. 판타지 세계관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지옥의 악마들과 전투를 벌이는 게임 시리즈로, ARPG(Action Role Playing Game)1) 장르를 새롭게 정의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 출시된 수많은 게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 타임스가 디아블로2를 향해 “역대 최고의 PC 게임”이라는 찬사를 보냈을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 Action Role Playing Game: 유저가 가상의 세계관 속 캐릭터가 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RPG(Role Playing Game)의 세부 장르 중 하나로, 액션(Action)을 강조하거나 주요 특징으로 내세우면서 스토리를 따라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며 적과 전투를 수행하는 어드벤처(Adventure) 게임의 요소를 일부 반영한 게임을 의미.
무려 20년의 세월을 관통해 다시 등장한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이러한 추억을 밑자락에 깔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PC방을 돌면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WarCraft)의 전성기를 모두 함께한 소위 ‘블리자드 세대’들은 전설의 게임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블리자드가 20년의 세월을 넘어 클래식 서비스를 재개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디아블로 시리즈가 여전히 상당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업적인 측면에서 흥행 가능성이 높은 만큼, 뉴트로에 대한 니즈가 높은 시점이 리마스터 게임을 내놓을 적기라는 판단을 한 것.
더구나 디아블로2 레저렉션은 단순히 리마스터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블리자드는 리마스터 과정에서 4K 고해상도와 수준 높은 사운드를 제공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PC와 콘솔 간의 연동, 공유 보관함 등 유저를 위한 기능도 더할 계획이다.
리마스터 게임의 성공 방정식은?
많은 리마스터 게임이 성공했지만, 단순히 과거의 추억에 기대 비즈니스를 전개하면 오히려 원작의 가치마저 훼손될 수 있다. 실제로 게임성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게임도 있지만,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추억팔이’라는 평가를 받은 게임도 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을 포함한 리마스터 게임들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본기가 중요하다. 블리자드를 포함한 주요 게임사들이 언제나 게임 완성도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만큼, 리마스터 과정에서도 게임성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단순히 추억 앨범을 만드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된다. 고전 게임이 갖고 있는 추억 보정을 고려하면,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경우 다채로운 즐길거리로 가득한 지금 시대에서는 흥행할 수 없다.
또한 유행에 기대지 않고 롱런할 수 있는 차세대 고전 게임이 돼야 한다. 고유한 클래식 가치는 보존하되, 새로운 콘텐츠와 최신 기술은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수익 확보보다는 팬덤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 기존 팬들의 신뢰를 다져야 한다. 여기에 MZ 세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브랜드 스토리의 감성 마케팅이 병행되면 진부한 ‘추억팔이’가 아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뉴트로’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