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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카와 커넥티드카라는 기술은 모두 생각만 할 뿐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 기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이와 관련 기술들의 개발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심지어 국제 행사를 통해 시험 운행해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죠. 그리고 이런 기술 발전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습니다. 이렇게 반도체 업계가 자동차 시장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지 그리고 반도체와 융합한 자동차 시장은 어떻게 변화할 지 지금 확인해보시죠.

반도체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지난 3월 인텔이 ‘모빌아이’라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인수했습니다. 인수가는 무려 15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7조 원에 달하는 거액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인수가로 기록될 정도의 ‘빅 딜(Big Deal)’입니다. 인텔이 이렇게 거액을 쏟아 부은 이유는 뭘까요? 자동차 때문입니다. 모빌아이는 카메라로 차량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는 기술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자율 주행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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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이 모빌아이의 기술을 통해 자율 주행 자동차의 기본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인텔은 인수를 앞두고 모빌아이의 주가가 한창 올라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0%가 넘는 가치를 함께 더해 인수할 만큼 이 회사를 원했습니다. 모빌아이의 이 기술이 향후 인텔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인텔의 모빌아이 인수는 반도체 업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대변합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PC와 스마트폰이 이제 성숙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지표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컴퓨터는 많이 팔리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로서는 성장을 이어갈 동력이 필요한 것이죠.

이 보다 앞선 사례로 그래픽 프로세서를 만드는 엔비디아의 주식은 지난 1년 새 2배 가까이 올랐는데요. 게임이나 머신러닝 같은 부분도 엔비디아의 주가를 자극했겠지만 요즘 엔비디아를 돋보이게 하는 기술 중 하나가 바로 자율주행 자동차입니다. 테슬라와 아우디는 이미 엔비디아의 칩을 이용한 자율 주행차를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는데요. 이 차량들이 앞서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부분이 바로 반도체인 셈이지요.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BMW는 늘 IT 전시회에 다양한 컴퓨팅 기반 기술들을 쏟아내는 단골이 됐고, 벤츠 역시 자율 주행과 공유 서비스 형태의 자동차를 개발하는 등 자동차 업계는 이전과 묘하게 다른 가치들을 쫓고 있습니다. 바로 IT와 통신이지요. 그리고 그 뒤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바로 반도체입니다. 이렇게 고성능, 대용량 반도체가 자동차의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 열리면서 자동차 시장은 반도체로 뜨거워졌습니다.

자동차와 반도체의 수줍은 만남

5년 전, 한 반도체 업체의 임원과 자동차 산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스마트카'니 '커넥티드카'니 하는 이야기가 막 나오기 시작한 시기인데요. 이 기술에 대해 반도체 시장은 얼마나 대비가 되어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이 시기만 해도 자동차와 IT의 실질적인 결합이라고 하면 조금 더 나은 내비게이션 시스템, 인터넷에 연결해 원격으로 시동 버튼을 눌러주는 것 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스마트카와 커넥티드카는 미래에 개발되긴 하겠지만 그게 언제인지 확신할 수 없었던 시장이 바로 자동차 IT 분야였던 것이죠. 그런데 불과 5년만에 이런 스마트카와 커텍티드카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반도체와 자동차가 적극적으로 손을 잡는 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자동차가 반도체 시장에서는 큰 시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동차 기업들이 자동차 관련 기술 발전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소비자들은 원하지만 업계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PC와 비교해 보면, 위축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PC 시장은 여전히 큰 시장입니다. 시장 조사기관인 가트너가 발표한 지난 2016년 세계 PC 판매량은 약 2억 7천만 대에 달합니다. 그에 비해 자동차 시장은 아직 작습니다. 자동차 시장 조사 기관인 ‘자토 다이내믹스(JATO Dynamics)’는 2016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을 8천 400만 대로 집계했습니다.

물론 자동차 시장 역시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택시나 버스를 비롯해 영업용 차량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 차’의 숫자는 훨씬 적습니다. 언뜻 생각해봐도 컴퓨터는 1인당 두 대씩 갖고 있는 경우도 많지만 자동차는 가구 당 한 대 정도인 경우가 많죠. 그나마도 반도체가 마음껏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고급 차량의 비중은 매우 낮습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동차 업계가 기술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도 컸습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휴대전화 시장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가전에 이런 스마트폰을 융합한 제품들이 그 뒤를 따랐다가 쓴 잔을 들었던 상황이 동시에 스쳐 지나갑니다. 섣불리 뭔가를 도입하기가 어려웠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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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동차 개발 기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기획에서 설계, 생산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24개월 정도로 짧아지긴 했지만 3개월 만에 신제품이 시장에 나오는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자동차에서는 절대적인 안정성이 필요하고 안전에도 복잡한 검증이 필요해 신제품 출시 시기가 더디기 때문에 지난 기술의 프로세서와 운영체제가 적용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더 좋은 엔진, 더 탄탄한 차체 등이 차량을 구분 짓는 기술을 통한 경쟁이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부분에서 더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전기차의 대중화와 같이 성능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우버(Uber)나 스마트폰으로 근처의 차량을 빌려 타는 집카(Zipcar)처럼 차량에 대한 소유 개념을 흔들어버리는 서비스들까지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자동차 업계로서는 변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꾸준한 혁신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 시장과 반도체 업계의 ‘수줍은 만남’은 이제 ‘격렬한 포옹’을 넘어 ‘한 식구’까지 내다 보며 변화 및 혁신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이어가는 시대가 됐습니다.

자동차 제1의 가치와 반도체의 융합

그리고 그 노력들은 성큼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올해 CES는 그야말로 자동차 기술의 축제였습니다. 자율 주행 자동차를 비롯해, ADAS(운전자보조시스템), 그리고 인터넷으로 스마트폰과 집을 연결하는 커넥티드카(Connected Car)까지 온갖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들이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연구됐던 자율 주행 자동차는 관람객들에게도 직접 타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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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기술은 반도체에서 시작되며, 자동차에는 상당히 많은 반도체가 들어갑니다. 즉, 자동차 내에는 많은 센서가 달려 있고, 이 센서들을 제어하는 마이크로 콘트롤러 형태의 프로세서가 각각 붙습니다. 주차 보조 센서나 비, 밝기 센서를 비롯해 엔진과 변속기 등의 부품까지 섬세한 센서들이 연결되고 있죠. 여기에 최근 기능이 부쩍 좋아지는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LCD로 빠르게 대체되는 계기판까지 컴퓨터 역할을 돕는 프로세서도 들어갑니다.

이는 PC에서의 경험처럼 빠른 프로세서가 곧 좋은 경험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로 연결됩니다. 특히 기기가 스스로 정보를 학습하면서 고도화되는 머신러닝 기술과 접목되면서 차량 전용 컴퓨터의 기술 개발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와 인텔. 퀄컴 등의 반도체 기업들이 자동차 업계에서 주목 받는 이유도 자율 주행 자동차나 커넥티드카처럼 고도화된 경험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프로세서와 통신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업계 역시 단순히 프로세서 칩만 생산하는 것에서 벗어나 메모리와 저장장치, 차량용 확장 포트 등의 하드웨어를 갖추고 이를 작동하는 운영체제와 시스템 가상화, 보안 그리고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Framework)까지 품고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의 기술 개발이 흥미로운 이유는 자동차가 확실한 컴퓨팅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다는 부분에 있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마트TV 이야기를 예를 들 수 있는데요. 스마트TV가 개발 후 시장 진출에 부진했던 이유는 바로 TV가 단순히 스마트폰과 PC의 역할을 흉내 내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TV와 PC의 갈 길은 달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표준화 경쟁에서 뒤떨어진 성능으로 결국 ‘스마트TV는 의미 없이 비싸기만 하다’는 인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는 스마트TV 보다 늦게 발을 들이긴 했지만 안전이라는 자동차 제1의 가치를 시작으로 이 기술이 차량에 왜, 어떻게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이어 왔습니다. 그 결과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확대뿐 아니라 고성능 프로세서, 표준화, 플랫폼화 등 단순히 PC에서 하던 일들의 이전이 아니라 차량에서 필요한 서비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차량과 IT 기술의 융합이 늦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방향이 뚜렷하고, 반도체와 플랫폼 업계가 기대하고 있던 만큼 그 발걸음은 아주 빠르고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방향, 반도체

이제 자동차 회사들은 그저 원하는 기술을 상상하고, 각 플랫폼을 선택한 뒤에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과거 자동차 회사들이 새 반도체 기술에 대해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가 개별 반도체에 대한 검증과 이를 이용한 시스템을 만들고 윈도우나 리눅스를 직접 프로세싱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CES2017을 통해 선보인 엔비디아의 ‘드라이브PX2’나 인텔의 ‘고(Go)’같은 플랫폼은 검증부터 적용까지 훨씬 간편해집니다. 이는 곧 비용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중화로 연결됩니다. 시장이 넓어진다는 이야기죠.

반도체 업계로서도 자동차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반대로 자동차 업계도 반도체에 대한 기대가 예전과 전혀 다릅니다. 차량 내 소프트웨어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를 제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꼽히고 있는데요. 그 중심에는 결국 막강한 반도체가 필요하게 마련입니다.

 

앞으로 자동차가 지금과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겁니다. 전기차는 성능에 대한 기준을 바꾸고,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는 운전을 비롯해 자동차 안에서의 경험을 다시 쓰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그 필요성과 역할을 확실히 하면서 각 산업과 반도체 기술이 순식간에 성장한 것처럼 자동차 역시 새로운 기술 발전, 그리고 우리 삶에 새로운 경험들을 가져오지 않을까요? 아마 그걸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에 자동차와 IT 기술 결합이 숨가쁘게 이뤄지고 있을 겁니다.

 

IT 칼럼니스트

최호섭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