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된다. 바쁜 일상이 고될 때 추억을 꺼내 다시 힘을 얻기도 한다. 때론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띵작은 회로를 타고’ 시리즈를 통해 ‘추억의 명곡’과 함께 SK하이닉스의 ‘그 시절 그 반도체’를 추억해보자.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가사’에 집중하기, 음악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추억의 명곡을 살펴보면 시대의 공감을 이끌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가사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곡이 많다.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의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 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라는 가사에서는 아침 풍경의 모습과 함께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글로벌 대세로 자리매김한 K-POP에서도 이는 마찬가지. BTS ‘Answer : Love myself’의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 네 가면 속으로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라는 가사에서는 ‘나 자신을 사랑하자’는 ‘Love myself’의 철학이 담겨있다. BTS는 이 가사를 통해 차별과 편견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줬다.
이처럼 주옥 같은 가사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훔친 또 한 명의 아티스트와 곡이 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크 록 보컬 강산에, 그리고 그가 1998년에 발매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에 대한 얘기다.
이 노래가 발매될 당시는 IMF 경제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절. 그의 노래는 ‘보이지도 않는 끝 지친 어깨 떨구고 한숨짓는 그대, 두려워 말아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걸어가다 보면 걸어가다 보면’이라는 가사로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여기에 강산에의 진솔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SK하이닉스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된 사연은?
2017년은 SK하이닉스가 또 한번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해였다. 당시 SK하이닉스는 반도체 호황 속에서 ‘DRAM 강자’로서의 입지를 굳혔지만, NAND 분야에서는 치열한 경쟁구도 속에서 기술 개발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특히 경쟁자보다 앞서가기 위해선 eSSD(Enterprise Solid State Drive, 기업용 SSD) 제품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eSSD 경쟁력의 핵심은 그 안에 탑재되는 ‘컨트롤러(Controller)1)’와 ‘펌웨어(Firmware)2)’다. SK하이닉스는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펌웨어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온 이재성 담당(현 Solution PE 담당)을 투입, 펌웨어 기술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 컨트롤러 : 낸드플래시 칩(Chip)을 제어해 데이터를 어디에 쓰고 읽을지 결정하는 SoC(System on Chip) 형태의 반도체. 이상 작동이나 불량 섹터를 막아주며 셀 사이의 간섭현상을 줄여주는 신호처리 기능을 수행.
2) 펌웨어 : 기능적으로는 소프트웨어에 가깝지만 하드웨어 내부에 위치하여 하드웨어적인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컨트롤러를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
“컨트롤러와 펌웨어를 자사 내에서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신뢰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NAND 칩을 제어하는 컨트롤러와 솔루션 내 모든 요소들을 제어하는 펌웨어가 정교하게 기능해야만 SSD가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습니다. 이에 eSSD 제품 개발 이전에 컨트롤러와 펌웨어 개발이 반드시 선행돼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담당에게는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다. 펌웨어 개발 프로젝트는 한국 분당캠퍼스, 미국 산호세 법인, 벨라루스 법인 등 여러 조직이 원격으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했고, 각 조직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당시 펌웨어 인력을 확보해 역량 성장을 시켜야 하는 과제도 수행해야 했기 때문.
먼저 이 담당은 세 조직을 통합하기 위해 ‘Shared Goals and Consciousness’를 강조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합심해 달려가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세 조직 모두 그들만의 문화가 있고 이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지침을 내리는 방식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죠. 그래서 ‘목표와 생각을 공유한다’고 구성원들에게 강조했습니다. 규범 안에서 생각과 목표를 공유하며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결과, 세 조직이 하나의 조직처럼 기능할 수 있게 됐고 성과로도 이어졌죠”
또한, 이 담당은 펌웨어 인력 충원과 역량 성장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펌웨어 역량을 갖춘 , 경력사원을 뽑기 위해 별도 테스트를 진행했으며, 입사 후에도 추가적인 교육을 통해 꾸준히 관련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했다.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협업 체계 구축, 인적자원 확보 등 여러 방면에서 초석을 다져야 했던 시기. 그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들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노래 가사가 당시 상황과 평행이론처럼 꼭 맞았기 때문에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가수 본연의 감성이 느껴지는 노래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강산에의 음악은 그의 꾸밈없는 털털한 목소리와 통기타 선율이 잘 어우러져 그만의 감성이 선명하게 드러나죠. 가사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특히 이 곡은 절절한 노랫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가사 중 ‘거꾸로 거슬러오르는 연어처럼, 딱딱해지는 발바닥 걸어 걸어 걸어 가다보면 저 넓은 꽃밭에 누워서 난 쉴 수 있겠지’라는 대목에서 참 많은 위안을 받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이 이겨내고 반드시 펌웨어를 개발하겠다는 의지도 다시 한번 다지곤 했습니다”
‘72단 3D 낸드 기반 eSSD’ 개발, 자체 펌웨어와 컨트롤러를 탑재해 초고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다
▲ 72단 3D 낸드 기반 eSSD
이와 같이 여러 과제를 해결한 끝에 탄생한 제품이 바로 ‘72단 3D 낸드 기반 eSSD’ 제품이다. SK하이닉스가 자체 개발한 컨트롤러와 펌웨어가 최초로 탑재된 eSSD 제품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 제품은 4TB(테라바이트) SATA(Serial ATA)3) 형식을 채택했다. 4TB는 용량이 20GB(기가바이트) 내외인 UHD급 영화를 200편 정도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의 대용량. 또한 이 제품은 당시 SATA SSD 업계 최고 수준인 최대 연속 읽기 560MB(메가바이트)/s, 연속 쓰기 515MB/s, 랜덤 읽기 9만 8,000IOPS(Input Output Operations Per Second), 랜덤 쓰기 3만 2,000IOPS의 성능을 구현해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주요 데이터센터와 서버 업체에 공급됐고, 이후 SK하이닉스가 eSSD 제품 사업화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됐다.
3) SATA : PC 개발 초기부터 써온 병렬 ATA(Parallel AT Attachment, PATA) 방식의 인터페이스를 대체하기 위해 병렬 구조를 직렬 구조로 바꾼 직렬 ATA. 이때 ATA는 PC와 AT 호환을 위해 사용하는 하드디스크 인터페이스 중 하나인 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 소프트웨어 개발용 통합개발환경)를 미국표준협회에서 표준화한 것을 의미한다.
이 제품은 스펙(Spec.) 측면에서 시장의 관심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 내부적으로도 많은 것을 남긴 제품이다. 우선 이 제품은 컨트롤러와 펌웨어의 설계, 코드의 구조 등을 표준화한 ‘플랫폼’을 완성하는 데 기여했다. 72단 3D 낸드 기반 eSSD 이후에 개발된 제품들은 모두 동일한 플랫폼을 활용해 개발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고, 스펙도 빠르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이 제품을 통해 컨트롤러, 펌웨어에 대한 검증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컨트롤러와 펌웨어 코드를 쫓아 불량을 잡아내는 ‘시뮬레이션 기법’을 도입한 계기가 된 것. 이를 통해 품질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한 이 제품은 글로벌 기업 내 데이터 센터 일부의 검증절차를 통해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을 이어가는 데에도 중요한 전기가 됐다.
SK하이닉스는 이 제품을 기반으로 삼아, 4년 만에 eSSD 시장점유율을 한 자릿수 미만에서 두 자릿수대까지 확보하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또한, 모바일용 SSD, 소비자용 SSD, PCIe(PCI Express)4) eSSD 등 다양한 SSD 제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었다.
4) PCle : 메인보드에 그래픽카드, 사운드카드 등 주변 장치나 기타 구성요소를 바로 연결하기 위해 새롭게 고안된 인터페이스 규격.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낸 이 제품은 이 담당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72단 3D 낸드 기반 eSSD는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제품이 시장이 공개됐을 때, 이제 회사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과 저 역시도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이는 지금의 SSD 분야 경쟁력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이 헛되지 않도록 더 높은 곳을 날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