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로 움직이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반도체가 이끄는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세미의 시대; 세상을 설계하는 작은 조각]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SK하이닉스 뉴스룸이 깊이 있게 준비한 이번 시리즈에서는 산업별 최신 이슈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전문가와 함께 해법 및 발전 방향을 모색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지만 혁신적인 반도체 기술이 어떤 돌파구를 제시하는지도 살펴봅니다. 2편에서는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술 현황을 짚어보고, 휴머노이드의 등장을 앞당길 새로운 반도체 기술에 주목해 봅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가 로봇이라면,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질 만큼 인간을 닮은 그들은 과연 언제쯤 우리 앞에 나타날까?
움직임과 언어, 감정까지 재현하며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는 휴머노이드(Humanoid). 경계가 흐려질수록 우리는 ‘그들을 인간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마주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지금, 뉴스룸은 로봇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그 속에서 AI 메모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봤다.
로봇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휴머노이드의 부상
우리는 이미 로봇과 밀접한 관계 속에 살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보고서[관련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산업용 로봇 가동 대수는 428만 대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1년 대비 23%, 22년 대비 11% 증가한 수치다.
로봇 한 대가 평균 3.3명의 업무를 수행한다고 볼 때[관련자료], 이는 경제 활동 인구 약 1,400만 명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규모다. 비유하자면, 서울 및 수도권 전체 경제 활동 인구에 맞먹는 수준이다.
서빙과 배달을 맡는 서비스 로봇 또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IFR 보고서[관련자료]에서는 2023년 한 해에만 약 20만 대가 판매됐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30% 늘어난 최고치를 경신했다.
로봇은 산업 현장을 넘어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이제 시선은 다음 단계로 향한다. 움직임과 표정, 언어와 감정까지 사람을 닮은 존재, 휴머노이드다.

▲ 한재권 교수가 휴머노이드 시장 규모 전망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재권 교수(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는 휴머노이드에 대해 “인간이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을 대신하는 범용 다목적 로봇”이라며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범용화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 전문 기관마다 예측치는 다르지만, 모두 ‘시장 규모가 급성장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마켓앤마켓은 2029년까지 132억 달러(약 18조 원)로, 스트레이츠 리서치는 2032년까지 237억 달러(약 33조 원)로 성장할 것을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380억 달러(약 53조 원) 수준으로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시장 전망보다 중요한 것은 ‘제작비 추이’라고 지목했다.
“휴머노이드 제작비는 매년 40% 이상 하락하고 있는데요. 이 말은 대중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장 현황을 보면, 테슬라는 자체 생태계에서 폐쇄적으로 개발 중이고, 엔비디아는 파트너사와 함께 합종연횡을 모색 중입니다. 기술 수준의 경우 테슬라 기준으로 3단계까지 진입한 듯합니다. 이는 인간 개입 없이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단계를 말하죠.”
하지만 OECD 기준으로 보면 아직 전 세계 평균 로봇 기술 수준은 2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간처럼 움직이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경 적응력, 정밀성, 힘과 속도를 모두 갖춘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발전된 5단계에 도달하면 로봇은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인간과 동등하게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수색·구조 같은 고난도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은 휴머노이드 단계까지 진화하려면 로봇을 구성하는 모든 부문의 발전이 뒤따라야 한다.

▲ 한재권 교수가 휴머노이드 구성요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한 교수는 “휴머노이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체로, 기계·전기전자 부품뿐 아니라 제어와 AI 기술이 핵심”이라며 “액추에이터, 로봇 손, 센서, 배터리, 반도체 등 모든 요소의 발전이 맞물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그는 “물리적으로 활동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진화하려면 저전력 AI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의 진보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2025년 말 혹은 2026년에는 미국에서 먼저 산업용 휴머노이드가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의 뇌를 닮은 반도체, 뉴로모픽의 시대
휴머노이드가 인간처럼 판단하고 움직이려면 고도화된 AI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 것이 방대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AI 메모리, 그리고 인간의 뇌를 모사한 ‘뉴로모픽 컴퓨팅’이다.

▲ 황철성 석좌교수가 뉴로모픽 컴퓨팅 구현을 위한 스파이킹 뉴런에 관해 설명 중이다.
황철성 석좌교수(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는 뉴로모픽에 관해 “뇌를 모사하는 초저전력 아날로그 연산 시스템”이라며 “인공 뉴런을 넘어 생물학적 뉴런의 동작과 유사한 ‘스파이킹 뉴런*’을 구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현재 인공신경망은 계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간은 훨씬 적은 에너지로 확률적 결론을 내린다”며 “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뉴로모픽 컴퓨팅이 필수”라고 말했다.
뉴로모픽 개념을 처음 제시한 카버 미드(Carver Mead)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의 말처럼, 기존 컴퓨터 방식으로는 뇌처럼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없다. 결국 반도체 자체의 구조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황 교수 역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반도체를 언급했다.

▲ 황철성 석좌교수가 뉴로모픽 반도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로모픽 반도체의 경우 연산과 저장을 하나의 칩 안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합니다. 프로세서, 메모리로 각각 역할이 나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죠. 현재 뉴로모픽 반도체를 비롯한 새로운 반도체 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는데요. SK하이닉스도 뉴로모픽 반도체를 견인할 ACiM*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뉴로모픽 반도체가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활약할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는 ‘효율성’ 때문이다. 관련해 황 교수는 “휴머노이드를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효율”이라며 AI 연산이 과도한 전력을 소모하면 기계 움직임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뉴로모픽 같은 고효율 반도체는 휴머노이드의 에너지 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ACiM(Analog-Compute in Memory): 컴퓨팅과 메모리 사이의 경계를 없앤 차세대 AI 반도체를 위한 기술
휴머노이드를 움직이는 AI 메모리의 힘
결국 휴머노이드를 앞당기는 데는 AI 메모리와 뉴로모픽 반도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차세대 AI 메모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먼저,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인 PIM(Processing In Memory)은 칩 안에서 직접 연산하는 지능형 메모리다. 데이터 병목 현상을 줄이고 전력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연산의 중심을 프로세서에서 메모리로 옮겼다는 점에서 차세대 기술로 가는 초석이자 상징적인 의미도 품었다.
대표 제품으로는 GDDR6-AiM과 AiMX가 있다. 특히 AiMX는 높은 대역폭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구현해 생성형 AI가 요구하는 대규모 연산을 안정적으로 지원한다. 멀티 배치* 데이터 처리 성능도 뛰어나, AI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 PIM 제품은 온디바이스 AI 설루션으로 확장 가능하며, 회사는 향후 휴머노이드 산업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개발 중인 ACiM은 뉴로모픽 반도체 발전을 견인할 중요한 구성 요소로 평가받는다. 이 제품은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수행한다. MAC(맥)* 연산이 가능하며, PIM보다 빠른 AI 연산 능력을 보여준다. 또, 뇌처럼 정보를 처리하고 초저전력으로 병렬 연산을 수행해, 휴머노이드 개발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저항성 시냅스 소자를 활용한 아날로그 연산을 통해 ACiM의 추론 정확도를 소프트웨어 수준으로 끌어올린 바 있다. 회사는 ACiM을 비롯한 차세대 AI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최초, 최고의 성과를 달성한다는 목표로, 현재 연구 개발에 매진 중이다.
이처럼 SK하이닉스의 차세대 메모리는 AI 시대를 이끌 동력이자 휴머노이드 시대를 준비하는 핵심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 MAC(Multiply-Accumulate): 입력값과 가중치를 곱해 누적하는, 신경망 계산의 기본 연산
1927년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등장한 로봇 마리아는 인류 최초의 휴머노이드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상상은 기술이 되었고 기술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어쩌면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더 이상 상상 속의 대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은, 이 작은 반도체 칩에서 시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