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지난 9월 2025년도 기업 PR 광고 <위대한 여정>을 유튜브와 TV를 통해 공개했다. 이는 2020년 팬데믹 시대 반도체의 역할을 조명했던 <언택트>편 이후 5년 만이다. 기업 성장 히스토리를 훑어보는 내용의 <위대한 여정>은 회사가 겪어온 굴곡과 함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임직원들의 끈기와 내실에 대해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사면서 1백만 뷰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오랜 공백을 깨고 흥행을 달리고 있는 올해 광고의 기획 의도와 제작 과정을 깊숙이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광고는 SK하이닉스가 1983년 창립 이후 현재의 글로벌 No.1 AI 메모리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기업의 정체성과 비전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헤리티지(유산) 필름’이다. SK하이닉스의 위기 극복 DNA, 끊임없는 도전 정신, 그리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이어갈 내일에 대한 기대감까지 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편의 영화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서사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 함께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영화 같은 서사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취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SK하이닉스가 걸어온 길을 통해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조명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번 광고에서는 ‘No.1 기업의 자부심’보다는 SK하이닉스가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견뎌왔던 것처럼 우리 모두 함께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숏폼 시대에 완성된 장편 광고, 그 안에 담고자 한 깊이와 메시지
AI가 영상을 만들고, 숏폼 콘텐츠가 주류로서 소비되는 디지털 시대. 이런 흐름 속에서 <위대한 여정>은 총 제작기간 275일, 순수 촬영 132시간, 백여 명의 스태프와 출연진이 참여해 6분 30초짜리 장편 광고*로 완성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보기 드문 이와 같은 시도는 어떤 의도와 철학에서 출발했을까?
* 6분 30초 분량의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과 4분 25초 분량의 광고 본편으로 편집됐으며, 두 영상 모두 SK하이닉스 공식 유튜브 채널[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룸에서는 이 광고를 만든 이노션(INNOCEAN)의 홍성혁 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Group Creative Director, 이하 GCD)와 백룸(BACKROOM)의 연출자 전문용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제작 과정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깊이 있게 들여다봤다.

위대한 여정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Q. 1983년부터 2025년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까지, 광고에는 SK하이닉스의 역사는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까지 담겨 있는데요. 이렇게까지 무대를 확장한 이유가 있을까요?
홍성혁 GCD 전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으니까요. 살펴보니 정말 중요한 이야기인데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담지 않으면 헤리티지 필름이 아닌 일반적인 기업 PR 광고가 될 수밖에 없었고요.
AI로 세상이 천지개벽하면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한 SK하이닉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우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리는 콘텐츠라고 생각했어요. 헤리티지를 말한다는 것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자신감의 표시죠. 그런 자신감의 표출은 웬만한 규모의 배경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Q. 기업의 역사를 일반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홍성혁 GCD 보통 자기 회사에도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의 회사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나 스스로도 안 볼 것 같은 스토리는 제외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HBM 1위, 사상 최대 경영실적 달성 등 연일 미디어에서 SK하이닉스에 관한 뉴스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회사에 관해 관심이 있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회사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 이야기들이 궁금했고, 만드는 사람도 궁금할 정도면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문용 감독 대중들에게는 나와 관계없는 회사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흥미를 갖고 집중할 수 있도록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역사를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감정과 공기가 함께 있어야 보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순 기술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대신, 시간 속에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담긴 밀도를 어떻게 담을지 고민했습니다.
Q. 준비기간도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땠나요?
홍성혁 GCD 1983년부터 2025년까지를 각각의 시대별로 쪼개면서 시간의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어설프게 보이는 것들은 아예 시도하지도 않았죠. 생생한 디테일을 구현하기 위해 스태프들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직접 온몸으로 겪은 사람의 전달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대에 절묘하게 SK하이닉스의 이야기를 담았고, 매 순간이 마치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전문용 감독 과거 장면의 고증을 위한 과정과 스터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동시대를 겪은 이들이 광고를 보고 거짓말이나 흉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 그때 그곳에 있었다’고 느낄 수 있게 단계적인 고증을 거쳤고, 시대물에 주로 참여한 의상·분장·설치 스태프들과 함께 그 시절 사무실에서 사용했던 집기류와 가구들을 수소문 끝에 구해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구현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Q. 실제 촬영은 어땠나요?
홍성혁 GCD 이를 갈고 준비한 수험생이 자신 있게 시험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날씨를 컨트롤할 수 없어서 좀 힘들었지만, 날이 개면 날이 갠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하늘의 컨디션에 맞게 촬영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다채로운 느낌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자들도 잘 따라와 줬고요. 현장의 모습을 더 풍성하게 찍을 수 있도록 촬영 일수가 좀 더 길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전문용 감독 촬영을 하면서도 기업의 역사적 사건에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기업의 부침과 성장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모두 겪었던 일처럼 보일 수 있도록 시대상과 자연스레 엮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배우의 연기에서 이러한 것들이 잘 표현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장면을 추가로 촬영했는데 기존 소스와의 이질감을 줄이는 과정에서 다소 고충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완성도를 더 높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Q.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인해 광고가 완성되었는데요. 제작자로서 사람들이 이 부분은 꼭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홍성혁 GCD 시대별로 등장하는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의 캐릭터가 핵심입니다. 우직하면서 헌신적이고, 약간 어설픈 듯하면서도 은근히 똑똑한 사람들이요. SK하이닉스는 뭔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일군 세계적인 회사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차갑고 스마트한 사람들이 만든 회사는 왠지 드라마가 없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핀잔 듣는 식사 장면, 넋이 나간 결혼식 장면, 회의 시간에 유치한 내용으로 싸우는 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리고 캐릭터와는 상관없는 명장면을 하나 뽑자면 SK하이닉스의 사명이 빈티지한 네온사인으로 켜지는 장면입니다. 사명이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던 적이 있을까요?

▲ 홍성혁 GCD가 선정한 명장면
전문용 감독 SK하이닉스의 이야기가 대한민국 성장사의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게 연출한 부분입니다. 특히 알아봐 주셨으면 하는 부분은 80년대 사무실 컷입니다. 공간에 대한 고증이 너무 잘 되어서 저도 그 시절에 들어와 있는 것 마냥 신나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이 광고는 SK하이닉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함께 경험한 대한민국의 기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 밖에도 엔딩 파트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과거 첫 출근을 회상하며 현재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떠오르는데요. 여기에서 많은 구성원분들이 감동과 향수, 그리고 앞날에 대한 기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전문용 감독이 선정한 명장면
Q. ‘위대한 여정’이 두 분께 남긴 것이 있을까요?
홍성혁 GCD 이 광고의 주안점은 구성원이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이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우뚝 선 현재의 SK하이닉스를 만든 주인공들 스스로가 지난 시간에 위로받고, 자신의 노력에 감정적으로 보상받기를 바랐습니다. 그 모습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SK하이닉스 사람들’이 남다른 사람들이자 충분히 인정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6분 30초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정말 ‘위대한 여정’이었어요. 역사는 원래 말하는 사람에 따라 재미없는 과목이 되기도 하고, 가장 재미있는 과목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번 ‘위대한 여정’은 후자가 되기 위한 깊은 노력의 산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재미있는 역사 선생님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전문용 감독 이번 프로젝트 참여를 통해 ‘SK하이닉스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반도체 기업’을 넘어 오랜 기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 구성원들이 있었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문화가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우뚝 서게 된 회사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영상을 본 임직원들이 SK하이닉스의 소울을 느끼면서 ‘아, 저게 우리 이야기였지’ 하고 과거에 대한 향수와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또 이 영상이 여러 세대의 시청자들에게 진지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콘텐츠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고요. 누군가 새로이 ‘위대한 여정’을 시작할 때, 이번 작품이 작게나마 출발의 힘을 지펴주는 불씨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