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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반도체를 읽다

Written by 정우영 피처에디터 | 2017. 3. 8 오전 5:00:00

 

 

“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는 문구는 지나쳐보였습니다. 이미 윈도우 모바일이 산업용 PDA폰/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후였고, 심비안이 스마트폰 OS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으며, 블랙베리가 지금처럼 몰락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때니까요. 하지만 알다시피 애플은 전화기를 바꿨으며 어쩌면 세상도 바꿨습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정의하자면, 스마트폰은 첨단의 반도체들을 하나의 기기에 통합한 것인데요. 애플의 업적은 이 통합을 통해 새로운 물건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 데 있을 겁니다. 오늘은 스마트폰이라는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반도체와 그것의 진화를 증명하는 앱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모바일 AP, GPS, 이미지 센서, LCD 디스플레이, SIM 카드, 플래시 메모리 등 첨단 반도체 기술을 대번에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 모바일 AP / 플래시 메모리 – WeDJ

▲ 출처: 애플 앱스토어 WeDJ

 

모바일 AP는 컴퓨터의 CPU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기술집약적인 반도체로서 연산/계산을 담당한다는 점도, ‘코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는 점도 같습니다. 플래시 메모리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나 SSD처럼 저장 장치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 ‘플래시 메모리’ 바로 가기)

컴퓨터와 한 번 더 비교하자면, 모든 컴퓨터 교본의 1장에 나와 있는 컴퓨터의 4대 구성 요소 중 중앙처리장치와 보조기억장치가 각각 모바일 AP와 플래시 메모리에 가깝습니다. 주요할 뿐만 아니라 긴밀히 연결되어있기도 합니다. 연산/계산 능력이 없다면 데이터가 무의미하고 데이터가 없다면 연산/계산 능력은 필요 없을 테니까요.

아이폰이 아이팟이라는 MP3 플레이어에서 비롯됐다는 것에서 착안해 ‘WeDJ’를 추천합니다. 디제이 믹서의 표준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파이오니어에서 제작한 앱입니다. 흔해 빠진 게 디제이 앱입니다만 ‘WeDJ’에는 특별한 기능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모바일 AP와 플래시 메모리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한데요. 자동 믹스가 가능합니다.

한쪽 데크에 아무 음악이나 걸고 이 버튼을 누르면 리듬, 화성, 분위기를 분석해 가장 잘 어울리는 다음 곡을 자동으로 겁니다. 자동 추천한 곡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버튼을 눌러 다른 곡을 추천받을 수도 있습니다. 페이더(채널 A와 B를 바꿔주는 슬라이드 바)를 조작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여러 가지 디제이들의 테크닉을 동원해 다음 곡으로 이어줍니다. 꽤 감탄스러울 정도의 정확도라서, 플래시 메모리에 좋아하는 곡을 가득 저장해놓기만 한다면 세계적인 디제이가 부럽지 않습니다.

둘. 심 카드 – 토스

▲출처: 토스 사이트

 

전화번호, 주소록, 이용자 ID 등이 내장된 IC 메모리. 스마트폰의 세계에서 신분증처럼 통용되는 심 카드에 대해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실제로는 스마트폰 보다 심카드가 자기자신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토스는 모바일 뱅킹의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는 공인인증서를 심카드로 대신하는 앱입니다. 점심을 먹고 한 명이 카드로 결제한 뒤 함께 식사한 사람들이 각각의 금액을 그에게 줘야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죠.

공인인증서 복사가 완료된 은행 앱, 그 친구의 계좌번호가 필요하며, OTP 카드 혹은 자물쇠 카드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토스에서는 전화번호면 충분합니다. 친구라면 대개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을 테니 사실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죠. 토스를 통해 송금하면 친구가 문자로 링크를 받게 되는데,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 그가 계좌번호를 입력하면 끝입니다.

친구도 토스를 이용 중이라면 토스에 쌓아둔 돈을 바로 송금할 수도 있고, 친구에게 토스로 돈을 입금하라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간단한 송금이 가능해진 배경에 심 카드가 있습니다. 독자적이고 복잡한 암호화 과정을 거쳐서 송금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에 앞선 기본은 스마트폰 명의자와 실 소유자, 토스에 등록된 계좌의 예금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알뜰폰’의 경우 “이통사를 통한 스마트폰 소유자 실명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이유죠.

셋. 디스플레이 패널 - VSCO 캠

▲출처: VSCO 사이트

 

아몰레드든 IPS든 스마트폰에 주로 사용되는 디스플레이 패널이 반도체로 만들어졌다는 것, 고해상, 고화질의 TFT LCD 기반이라는 점은 공통적입니다. 하지만 표현력이 높아진 만큼 정밀하게 보정할만한 조건은 갖추지 못한 게 스마트폰이기도 하죠. 아마도 그래서 스마트폰 카메라 앱 중 ‘필터’가 풍부한 제품이 각광받고 있을 겁니다.

VSCO 캠은 가장 널리 알려진 카메라 앱이자 그 다양하고 아름다운 필터에 관한 한 이견이 없는 앱입니다. 워낙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카메라 앱으로 시작해 전 세계적인 SNS로 발전한 인스타그램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견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그 양상은 좀 다를 것 같네요. VSCO 캠이 제휴 혹은 개발을 거쳐 유료로 판매하고 있는 필름 팩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는 한정적인 범주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거든요. 보다 사진가 중심의 SNS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넷. GPS – 스카이가이드

 

▲출처: 애플 앱스토어 Sky Guide

 

스마트폰에 GPS가 포함되었기에 지도, SNS, 음식 배달, 여행 등 보다 구체적인 범위에서 생활을 바꿔나갈 수 있었고, ‘포켓몬 고’처럼 뜻밖의 재미도 탄생했습니다. 스카이가이드도 포켓몬 고처럼 증강현실을 이용합니다. 책과 하늘을 나란히 놓고 봐도 망원경을 들여다봐도 좀처럼 파악하기 어려웠던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밤에 홀로 집에 앉아 창밖에 대고 스카이 가이드를 켜니 ‘쌍어궁 자리’가 떴습니다.

비록 2월 20일과 3월 20일 사이에 태어난 물고기자리는 아니지만, 지금 그 시기를 살고 있는 건 어떤 계시일지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별자리도 스마트폰도 만들어낸,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밤이 있습니다.

 

여전히 스마트폰이 그저 전화기인 분들도 있겠습니다.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애초에 스마트폰에 포함된 다양한 반도체, 그것을 이용한 앱 대부분은 마치 구경거리처럼 일회적인 흥미에 그치는 제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만큼이나 사람들의 감식안도 진화하면서 한번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워졌습니다.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해본 사람은 없도록" 만드는 게 지금의 제작자와 개발자의 목표랄까요. 한번 제대로 스마트폰을 사용해보시길 권합니다. 쉽게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는 게 인간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하는 것도 인간이니까요.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