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아” 성공만을 말하는 현대사회에선 기대하기 힘든 말이죠. 경제적 이익 창출이 우선인 기업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실패를 겪은 구성원의 어깨를 다독이고, 아예 대회까지 열어 상을 준다면 어떨까요? SK하이닉스는 올해로 2년째 실패사례 경진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실패를 인정하고 노하우를 공유했으면 좋았을 컬 시즌2’가 열린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에 다녀왔습니다. ‘실패’란 단어 앞에 무한히 쿨해질 수 있는 이 날,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을까요?
올해로 2회째인 실패사례 경진대회는 중장기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미래기술연구원이 구성원들의 실패사례를 공유하여 개개인이 겪은 실패 경험을 공동의 자산으로 삼자는 취지로 작년에 처음 도입한 제도입니다.
제1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 컬(문화를 뜻하는 컬쳐(Culture)의 첫 글자)’에 이어, 이번 대회의 타이틀은 ‘실패를 인정하고 노하우를 공유했으면 좋았을 컬’인데요.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 이번 대회의 메인 테마는 바로 ‘공유’입니다. 실패사례의 내용뿐 아니라 다른 조직에 얼마나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했는가가 올해의 평가 기준입니다.
행사는 뮤지컬 배우 이희주의 영화 <라라랜드> OST ‘Audition’ 무대로 막이 올랐습니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내용이 담긴 이 노래는 특히 오늘 더 의미 있게 들리는데요. 이처럼 이번 행사는 시상식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준비된 영상과 뮤지컬 공연, 경품 행사 등으로 다채롭게 꾸려져 즐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에 앞서 작년 제1회 실패사례 경진대회의 우승자, C&C의 박지용 TL이 무대에 올라 이 자리에 모인 구성원을 위해 실패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전했습니다.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때문에 실패를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실패가 쌓이고 쌓이면 앞으로 실패를 덜 할 수 있는 노하우를 얻게 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엔지니어는 성장해나갑니다. 그리고 이 노하우가 우리 모두에게 공유될 때, 우리는 실패를 피해갈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실패란, 실패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공유한다는 것, 사실 우리나라 정서상 문화로 정착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과정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실패에 관심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이지니어들은 실패를 더 ‘잘’ 공유하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패에 대한 제도적 장치나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구성원들의 마인드 변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겪었을 때 스스로 자책하기 보다는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 한승현 TL
“우리 리더분들이 먼저 어떤 실패를 했고,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솔선수범하여 먼저 공유해주시면 실패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것 같습니다” - 이선행 TL
“실패 사례를 한 개인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일로 인식하고 함께 논의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보고하는 방법도 매우 중요합니다. 결과 보고에만 그치는 게 아닌, 실패를 통해 얻은 Lesson과 이것을 바탕으로 다음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 이성훈 담당
실패를 하는 게 두려운 이유는 그 이후에 쏟아질 질책과 비난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실수에 대해 잘못을 추궁하고 책임을 전가한다면, 실패를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잡히기는 힘들겠죠. 그래서 SK하이닉스는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말 그대로 심리적으로 안전함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심리적 안전감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걸까요?
“실패를 했을 때 잘못에 대한 지적은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그 일이 마무리된 후 감정적으로 뒤끝이 없을 때 심리적 안전감을 느낍니다” - 박지용 TL
“스스로의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괜찮다고 되뇌며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영곤 TL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실수를 용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실수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가 심리적 안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리더의 몫일 겁니다.” - 이성훈 담당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구성원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한 것처럼 리더는 구성원의 실패에 질책보다는 격려를, 또 구성원은 리더의 격려에 힘입어 실패를 딛고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변화된 조직문화를 곧 체감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올해 등록된 실패사례는 190여건으로 지금까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실패사례는 456건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발성(등록건수), 적극성(공유방법, 횟수), 파급력(공유범위)을 기준으로 심사해 5명의 구성원을 ‘우수 구성원 상’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우수조직은 팀 단위에서 실패 사례를 얼마나 많이 제출하고 공유했는지를 기준으로 실패 공유가 활성화된 팀에게는 ‘조직상’을 수여합니다.
올해의 최우수 구성원상 주인공은 바로 D램 소자의 특성 개선 및 신뢰성을 높이는 연구를 수행하며 7건의 실패 사례를 전파한 이선행 TL입니다. 이어 2위에 오른 소재개발 Patterning팀 심재희 TL과 공동 3위에 오른 소재개발 Patterning팀 김재헌 TL, 이천양산분석팀 강효진 TL, DMR Modeling 강태욱TL이 우수 구성원을 수상했습니다. 우수 조직상에는 후보에 오른 HARC PJT팀과 DMR Modeling팀 모두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의미 있는 실패사례라 하더라도 공유되지 않는다면 이 자체도 실패일 수 있습니다. 전사적인 실패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초기가 중요한 만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술혁신을 위한 패기 있는 도전을 계속해주세요” - 김진국 부사장
Q. 안녕하세요,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 구성원들 모두가 한 명도 빠짐 없이 실패 사례를 등록해주었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기에 수상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소속해계신 조직 내 두 팀 모두 구성원 전원이 이 대회에 참가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대회 공고를 보고 제가 제일 먼저 등록한 것 같은데요. 그저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만 얘기했을 뿐인데, 구성원 모두가 실패 사례를 등록했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자발적으로 이번 대회에 동참해준 구성원들에게 감사합니다.
Q. 그만큼 조직 내 실패를 공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분위기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텐데요.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HARC 조직의 경우 3D낸드 공정 중 가장 어려운 공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보다는, 조금씩 발전해나간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합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서 한 번에 성공하는 법은 없죠. 디바이스를 개발할 때에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다음 디바이스에 전달돼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개발 과정이 수월해질 뿐 아니라 기간도 짧아지죠. 기술의 난이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움을 얻는 것이 성공에 도달하는 길이라는 걸 저희 구성원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Q. 이번 대회에 등록한 사례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는 항상 기획 과정에서 기대효과를 예측합니다. 저희는 제품을 만드는 팀이니 비용 절감 효과를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1년 동안 모든 구성원이 열심히 노력해 결국 프로젝트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원가를 계산하는 방법이 바뀌게 된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바뀐 계산 방식을 적용해보니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거의 차이가 없게끔 나왔죠. 중간에 한 번만 더 점검했었더라면, 사실은 그 일을 굳이 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었죠. 성공은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한 사례가 된 것입니다. 저를 비롯해 모든 구성원이 안타까워했지만, 직접 부딪혀 얻게 된 Lesson은 저희 팀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Q. 실패사례 경진대회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SK하이닉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반도체는 개발 기간을 따져보면 거의 2~3년 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연구개발에 참여해 나오는 결과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누군가의 실패에 대해 질책한다면 결코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깨달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을 좀 더 문화로 정착시켜보자고 시작된 게 바로 실패사례 경진대회라고 생각합니다. 반도체산업이 다운턴인 상황이지만 실패를 질책하지 않는 회사, 실패 앞에 낙담하지 않는 구성원들이 있기에 다시 극복할 거라 강력하게 믿습니다.
Q. 안녕하세요,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저는 사실 실패가 되게 두려운 사람입니다. 그런 저에게 팀장님께서 항상 말씀해주세요. “괜찮아, 틀려도 돼” 이렇게 리더가 옆에서 조력을 해주셨기 때문에 겁 없이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런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Q. 평소 업무 스타일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일을 하면서 ‘왜?’를 항상 물어봅니다. 사람의 잘못인지 장비의 잘못인지, 혹은 시스템의 잘못인지 되짚어보죠. 그리고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구성원들과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합니다.
Q. 실패를 공유한다는 것, 굉장히 독특한 기업문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직 실패를 두려워하고 공유하기를 주저하는 동료들에게 격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도전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주어진 결과를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고, 나아가 창의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끌어내야만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과연 SK하이닉스의 혁신적인 제품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 발전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Q. 앞으로 SK하이닉스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더욱 발전된 DRAM 소자를 개발함과 동시에 신뢰성 특성을 개선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양한 팀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고요. 반도체 업 특성상 협업은 필수인데요. 저는 이러한 협업 속에서 생기는 반짝이는 아이디어, 단순하지만 기가 막힌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략, 기획, 세일즈&마케팅 등 소자 개발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 판매가 이루어지는 제품 출하 단계까지 다양한 팀과 함께 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실패를 공유하는 문화. 1년이 지난 지금, 하이지니어는 이 멋진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스스로 고민하고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가 기술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하이지니어들의 숱한 시행착오, 그리고 실패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 때문인 게 아닐까요? 행사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오늘의 현장 스케치를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실패는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다. 마음껏 실패하고 공유하고, 그리고 다시 도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