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문 기정(이천 P&T 소속 DRAM-WT제조팀)은 반도체의 작동 여부를 검사하는 핵심 장치인 프로브 카드(Probe Card)를 맡아 수년간 엔지니어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본연의 역할을 다하며 제조 현장의 혁신을 일구는 데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그는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SK하이닉스의 ‘명장’.
그의 책상 위 모니터에는 회의록 한 페이지가 띄워져 있다. 회의록은 곧 전용문 기정의 신념과 업무 스타일, 그리고 SK하이닉스에서의 여정을 보여주는 상징 중 하나다. SK하이닉스 뉴스룸은 전용문 기정을 만나 그의 피땀 어린 회의록을 통해 그간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기술명장으로서 앞으로 그가 그려갈 미래에 대해서도 함께 들어봤다.
전용문 기정은 Fab(Fabrication, 반도체 생산라인)의 마지막 Wafer TEST 공정, PCM(Probe Card Management) 파트에서 프로브 카드를 관리하는 엔지니어로 업무를 수행 중이다. PCM 파트에서 관리하는 프로브 카드는 완성된 웨이퍼(Wafer)와 테스터 장비 사이에서 웨이퍼의 불량 여부를 판별하는 장치다. 프로브 카드에 장착된 니들(needle)이 웨이퍼와 접촉해 전기를 보내고, 그때 돌아오는 신호에 따라 웨이퍼의 이상 유무를 판별하는 것.
“오랫동안 몸담았던 공정을 떠나 2013년 PCM 파트에 처음 입문한 이후, 늘 새로운 세계와 맞닥뜨렸습니다. 특히 프로브 카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때부터 1,000여 개에 이르는 현장의 수많은 로그를 모두 기록해 정리하기 시작했죠. 6개월 정도가 흐르니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더라고요. 당시 현장의 로그는 저에게 전부나 다름없었죠”
그는 그렇게 PCM 파트에 발을 디딘 지 1년 만에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설비의 Down Rate(24시간 중 설비 가동이 정지되는 시간의 점유율)이 10%에 이르렀으나, 프로브 카드의 개선을 통해 이를 2%대로 대폭 단축해, 생산성을 향상시킨 것. 이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데이터 분석과 창의적 문제해결(TRIZ) 등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다.
이후에도 도전과 성공이 거듭됐다. Fab 내 물류자동화가 확산되던 2015년, 웨이퍼를 이송하는 신규 설비에 문제가 발생하자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이를 해결했다. 이듬해에는 프로브 카드의 개조∙개선과 설비의 표준 정립을 통해 Magnum 장비의 Set-up 성공률을 60%대에서 85%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담금질 과정 끝에 그는 평범한 엔지니어에서 ‘난제 해결 전문가’로 한 차원 더 성장할 수 있었고, 2017년, 높은 기술 역량과 직무 노하우를 갖춘 구성원에게 수여되는 ‘기술명장’ 1기에 선정되며 그 노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PCM 파트에 배정받은 이후 전용문 기정은 한 달에 4번씩 진행하는 기술회의를 도입했다. 회의의 주된 내용은 프로브 카드의 개조∙개선을 통한 문제 해결과 성능 향상. 매주 직접 어젠다와 일정을 수립하고, 팀원들과 과제를 수행했다. 그리고 매 회의가 끝난 후 직접 회의록을 작성했다. 이 기술회의 덕분에 그는 기술명장이 되기까지 수 차례의 굵직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 전용문 기정이 작성한 회의록의 일부. Magnum 장비의 SET-UP 성공률 TF 진행 당시 웨이퍼 수율 저하를 야기한 프로브카드 왜곡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PCL(Probe Card Latch) 측정 툴 개발 및 시스템 구축으로 해외 업체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방식을 수립할 수 있었다.
“현재와 미래의 길잡이가 되어준 건 다름 아닌 회의록입니다. 기술명장이 되기까지, 그리고 기술명장이 된 지금도 역시 차곡차곡 쌓아온 회의록은 저의 큰 자산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추진해 온 사항들을 통해 미래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죠”
그동안 겪었던 난제나 어려움은 없었는지 묻자, “혼자가 아닌 훌륭한 동료들이 있기에 대부분 함께 풀면 풀리는 문제였다”라고 말하는 전용문 기정. 기술회의라는 소통의 장을 통해 동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온 그는 원활한 소통과 성공적인 회의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의사결정 방식’을 꼽았다.
“한번에 많은 칩셋(die)을 테스트할 수 있는 성능의 프로브 카드를 가진 업체는 모두 해외 업체입니다. 언어가 다른 만큼 더 논리적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할 때 명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자 노력합니다. ‘통계적 의사 결정’ 방식은 서로 트러블 없이 의견을 조율하기 수월할 뿐 아니라, 보다 더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기술명장이 된 이후 그는 프로브 카드 관련 업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다. 지금은 ‘프로브 카드의 보관 및 이동 자동화 관련 표준 정립 및 개선’과, ‘데이터 분석을 통한 프로브 카드의 개선’ 과제를 진행 중이다. 세계 최초로 프로브 니들(Probe needle) 압력 연구 활동을 실현하고자 IoT 센서 구축 과제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구성원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권장하는 통계분석 툴 중 하나인 JMP 사용법에 대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과제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비결은 업무에 충실하면서도 남는 시간을 쪼개 쌓아올린 학문적 성취들. 그는 청강문화전문대 소프트웨어학과,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거쳐 연세대학교 MBA경영 과정을 수료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이론적 기반을 닦았다.
회사에서 추진하는 데이터 분석 및 TRIZ(창의적 문제해결 이론) 등 문제 해결 기법에 대한 지식도 지속적으로 습득했으며, 실무역량을 기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전자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부품 및 회로를 공부하기 위해 전자기사, 전자기기기능장, 통신설비기능장 등 자격증을 취득했고, 지금도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이어온 전용문 기정은 아직도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전용문 기정에게 자기개발은 기술명장으로서의 사명이기도 하다.
“기능장에 그치지 않고 기술사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설비자산 연구와 지식동아리 CoP(Community of Practice) 활동을 통해 회사의 설비자산경영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먼 미래에는 저만의 설비를 개발해보고 싶기도 해요. 예전부터 꿈이었는데 지금도 그 꿈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제가 몸담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전문위원이 돼보고 싶은 꿈도 생겼습니다. 모두 다 성공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쥐띠는 특히 신중하고 영리하며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마침 오늘 만난 전용문 기정 역시 올해의 주인공, 쥐띠. 설을 앞두고 그에게 새해 다짐 한 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대신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과 함께 동료들과 독자들에게 행복에 관한 글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