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직 나에게 주어진 길을 따를 뿐~” 세르반데스 돈키호테의 뮤지컬 버전 ‘맨오브라만차’에서 돈키호테가 부르는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치’에서 돈키호테는 기사가 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고, 그를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합니다. 옆에서 보면 무모해 보일 수 있는 그 꿈이지만 돈키호테는 꿈에 이르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어쩌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로 잰 듯 따지는 우리가 아니라, 무모해 보일지라도 꿈을 꾸며 하루하루 즐거이 도전하는 돈키호테 그 자체가 아닐까요?
2017년 1월의 어느 날, 거짓말같이 온 세상이 하얗도록 눈이 내리던 날 'SK하이닉스 돈키호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바로 SK하이닉스의 유일한 연극동호회 <극단 난다고래> 단원들인데요. 가족과 친구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초대해 놓고 지난해 내내 준비한 공연을 올리는 날이라 막판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최첨단 기술인 반도체를 생산하는 SK하이닉스와 소품하나 조명하나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는 아날로그의 결정체 연극이라니 왠지 생소한 느낌마저 들었는데요. 과연 연극동호회는 언제 어떻게 시작을 한 것일까요?
▲ (좌측부터) 사내동호회 <극단 난다고래> 단원인 박기현 기사, 김수정 기사, 김은비 사원, 박은옥 사원
<극단 난다고래>의 회장이자 창단멤버인 박은옥 사원은 이렇게 기억합니다. "처음 입사하고 사원교육을 받고 있는데 연극동호회 창단멤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학교 때 연극을 했었기에 '이거다' 싶었어요. 저에겐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극단의 간사이자 이번 공연에서 조명을 맡고 있는 김수정 기사는 좀 더 특별한 가입경험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처음엔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이었어요. 그러다 친구가 극단에 가입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가주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저도 가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유명한 친구 따라 캐스팅 되었다는 일화가 비단 연예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극단 난다고래>는 회장인 박은옥 사원과 이번공연의 연출인 박기현 기사를 포함해 8명이 2011년 시작을 했습니다. 적은 수였지만 서로 배우가 되었다가 스태프가 되었다가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당백으로 첫 공연을 올렸지요. 그렇게 매년 한편의 공연을 꿋꿋이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김수정 기사, 김은비 사원 등이 가입을 하게 되었고, 어느덧 단원들도 20여명으로 늘어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고래가 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짓게 된 이름인 ‘난다고래’! 극단 이름처럼 이들은 6년동안 함께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과 동호회, 그것도 팀워크가 생명 같은 연극을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무직과 생산직 등 각각 다른 업무, 거기에 근무시간까지 달라, 연습시간 맞추는 것도 회식한번 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극단 난다고래>가 성장하고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연출자 박기현 기사는 '가족 같은 팀워크‘라고 답을 합니다. SK하이닉스의 수많은 동호회 중 무대에 오르는 동호회는 <극단 난다고래>를 포함해 난타 공연팀과 밴드팀 등 단 3개뿐입니다. 대부분의 동호회들은 여가를 즐기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동호회들이지요. 일 년을 온전히 투자해야 겨우 한편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연극을 하기 위해선 개인시간을 이곳에 투자해야 합니다. 친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으면 공연을 올릴 수 없습니다. 때문에 늘 당연히 붙어있는 사람들, 가족 같은 친밀함이 바로 <극단 난다고래>의 저력인 것인데요. 실제로 인터뷰를 하는 내내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서 서로를 위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 저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극단 난다고래>에서 연기력을 맡고 있는 김은비 사원은 SK하이닉스 직원으로서 또 극단의 단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 극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지원하게 되었어요. 가족 같은 단원들과 함께하는 극단생활은 회사생활을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회식자리에서 '배우'로 불리기도 하는 김은비 사원은 팬이라며 다가오는 동료들을 보면 더욱 뿌듯함을 느낍니다.
일과 취미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열정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공연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은 <극단 난다고래> 단원들은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작품 선정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요. 한 달에 한 번 함께 다른 공연을 보러 가거나, 저작권과 창작권이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대본을 구해 각색을 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또 공연에 맞게 연기자, 조명, 음향, 연출 등 역할을 나누기도 합니다. 시간과 예산이 한정이 되어있기에 외부에서 도움을 받기보단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나가며 각자 품고 지냈던 꿈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수상한 흥신소 3탄, '임이랑 지우기'라는 공연을 <극단 난다고래>에 맞게 각색하여 만든 이번 작품 ‘시간을 달려서’는 자살을 시도한 주인공 임이랑이 시간여행을 하다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지를 알게 되면서 갈등을 해소하게 되는 과정을 재미있게 푸는 코미디입니다. 성인이 주 대상이었던 이전의 무대와 달리 이번 공연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고 하는데요. 매년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부모님을 따라 오는 어린 관객을 위한 배려라고 합니다.
사내 동호회인 만큼 연극의 주 관객은 동료, 친구 그리고 가족입니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극단 난다고래>의 무대를 본 지인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꿈을 지지하는 지원군이 되길 자처합니다. 연극을 보고 난 뒤에는 단원들을 배우로 특별대우 해주기도 하고, 동호회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이해해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단원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터뷰 할 때는 해맑게 웃는 대학생과 같았던 분들이 리허설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켜지자마자 진지한 배우모드로 돌변했습니다. 별다른 세트가 없이 배우가 무대를 꽉 채워야하는 공연은 대사 하나 손짓 하나에 정성이 가득 들어가야 합니다. 언제나 무대에 올리는 공연만큼은 완벽하기를 바라는 이들의 눈빛은 영롱하게 빛이 났습니다.
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입니다. <극단 난다고래>는 여러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지만 앞으로도 하고 싶은 작품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요. 회사차원의 지원도 있지만 무대를 올리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듭니다. 세트도 만들어야 하고 의상이나 소품도 구입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회원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모으기도 하고 공연에 임박해서는 너나없이 주머니를 털기도 합니다.
이렇듯 많은 분들의 마음을 담아 올리는 공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사실 당연히 '금전적 지원'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한 것은 '꽉 채운 객석과 신입단원의 모집'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준비한 무대인 만큼 많은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는데요. 또 동호회에 가입하고자 하는 분 중 ‘연극’이기에 망설인다면 무대에 오르는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로, 작가로, 홍보요원으로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기에 부담감 없이 도전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연극동호회를 하면서 좋은 점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풀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 강조합니다.
사내 동호회이긴 하지만 <극단 난다고래>는 올해 조금 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바로 100%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는 꿈인데요. SK하이닉스의 일원으로 또 개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귀띔합니다. 아직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의 얼굴과 표정은 '밝은 에너지’로 가득했습니다. 반복되는 직장생활 속에서 연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삶의 행복을 누리는 <극단 난다고래> 단원들. 사내 동호회 활동은 무미건조했던 일상에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연극에 대한 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낸 이들과의 유쾌한 인터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돈키호테는 마지막에 현실을 직시하며 우울해 했지만, <극단 난다고래>는 고래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열정’을 다해 ‘도전’합니다. 이들이 가진 긍정의 에너지는 결국 고래를 띄울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는데요. <극단 난다고래>의 바람처럼 2017년에는 꼭 그들이 만든 창작극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