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많은 CEO가 차고(Garage)에서 꿈을 키워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듯, SK하이닉스에도 반도체 생태계를 이끌어갈 예비 CEO들이 하이개라지(HiGarage, SK하이닉스 사내벤처 육성 제도)에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하이개라지는 구성원의 아이디어에 귀 기울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함으로써,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러한 조직문화를 확산시켜 반도체 생태계를 활성화함과 동시에, SK하이닉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하이개라지의 궁극적인 목표. 지금까지 하이개라지를 거쳐 탄생한 스타트업만 15개에 달하며, 올해도 4기 6명의 예비 창업가를 선발해 그들의 꿈을 지원하고 있다.
뉴스룸은 하이개라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윤표 TL을 만나 그간의 성과를 짚어보고, 최근 출사표를 던진 하이개라지 4기 멤버들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또한 하이개라지 스핀오프(Spin-off, 분사) 기업 지원을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L&S벤처캐피탈을 찾아, 외부에서 바라본 하이개라지에 대한 평가도 들어봤다.
※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COVID-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진행했습니다.
올해로 4기를 맞는 ‘하이개라지(HiGarage)’는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구성원에게 사업화 기회를 부여하는 SK하이닉스만의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매년 하반기 지원자를 모집하고, 그중 아이디어의 사업화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 창출 수준 등을 고려해 여섯 팀을 선발하고 있다.
하이개라지에 선정된 여섯 팀은 기존의 소속에서 분리돼 별도의 전담 조직으로 이동한다. 이후 벤처 창업 전문가들의 전문 컨설팅과 창업 교육을 받으며, 시장조사, 특허 출원 준비 등 창업 준비 기간을 거치게 된다. 이와 함께 창업진흥원이 지원하는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창업 준비가 완료되면 회사의 승인을 받아 재직 중 법인을 설립하고 사무실 임대, 직원 고용 등 본격적인 창업 절차를 밟게 된다.
하이개라지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후 2년의 사업화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독립 분사할 수 있다. 만약 이 기간 내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재입사를 보장함으로써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하이개라지는 SK하이닉스만의 탄탄한 인프라와 더불어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더해져 빠르게 성장 중이다. 앞서 1기와 2기에서는 각각 4개, 5개의 사내벤처를 탄생시켰으며 지난 3기에서는 6팀 전원이 창업에 성공함으로써 분사 창업 성공률 80%를 달성했다. 현재까지 누적 매출 64억 원, 투자유치 148억 원, 투자기준 기업가치 710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 80명 수준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하이개라지 사업담당자 이윤표 TL은 “아직 1기가 창업한 지 만 3년이 안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15명의 하이개라지 출신 CEO들이 업계 곳곳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첫 기수 멤버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1기 ㈜알세미(조현보 대표)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설계자동화(EDA) 분야에 진출해서 국내 대기업과 협업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엠에이치디(이성재 대표)도 반도체 소재기업 한 곳과 기술개발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표 TL은 “많은 대기업이 신사업 발굴과 기술난제 해결에 스타트업을 적극 활용하는 추세”라며 “그 중심에서 하이개라지 스핀오프 기업들이 활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출범 당시 약 240건의 아이디어가 모일 정도로 구성원의 뜨거운 관심과 함께 시작된 하이개라지는 4기를 맞는 올해도 역시 순항 중이다. 올해는 총 82건의 아이디어를 모집했으며, 구성원 온라인 심사(50%)와 발표 심사(50%)를 거쳐 최종 6개 팀을 선발했다.
올해도 △포토마스크 보호용 EUV 팰리클 개발(하태중 TL) △반도체용 고순도 Filter 개발(조일동 TL) △특수 함수성 연마 CMP Brush 개발(유범진 TL) 등 소재 및 부품 국산화에 대한 아이템이 심사단의 지지를 얻었다. 현장의 불합리를 개선해 안전한 작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FAB 공정 사고 방지를 위한 실시간 분석 시스템(김승환 기장)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미래 기술인 △DNA Storage Technology(이근우 TL)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비반도체 분야에서는 △Low-Code 기반의 Web/App Platform(최승헌 TL)이 최종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뉴스룸은 이천 캠퍼스 하이개라지 사무실에서 여섯 명의 예비 창업가를 만나, 그들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봤다.
SK하이닉스는 하이개라지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2019년부터 L&S벤처캐피탈과 하이개라지 스핀오프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심의/진행하는 펀드도 조성했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1기 기업인 알세미와 차고엔지니어링, 2기 기업 중에는 FLC에 투자가 진행됐다. 3기 기업 투자는 현재 대기 중이다.
하이개라지 스핀오프 기업에 대한 기업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L&S벤처캐피탈 김지혜 상무는 투자사 선정 기준으로 ‘독창적인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첫손에 꼽았다.
김 상무는 “알세미의 경우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AI를 적용해 소자 성능 예측 시간을 줄이는 아이디어에 주목했다”며 “국내 EDA 산업을 육성하는 측면에서도 가점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차고엔지니어링과 FLC에 대해서는 “창업자의 기술적인 역량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 L&S벤처캐피탈 김지혜 상무
현재 반도체 산업은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어 신생 창업 기업이 특정 제품을 개발해 산업에 진입하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 특히 소부장 분야에서는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 검증된 제품만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벤처기업이 기회를 얻기란 매우 어렵다. 김 상무는 이런 상황에서 사내벤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사내벤처 제도를 이용하면 창업자는 회사의 지원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이 겪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초기 창업 기업이 자금 부족 등으로 인해 사업화에 실패하는 기간)를 보다 쉽게 넘길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회사는 벤처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고, 창업자는 안전판을 확보해 창업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이개라지 스핀오프 기업은 초기부터 SK하이닉스에서 필요한 제품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향후 협업을 통해 기업 간 시너지를 효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성공 사례가 늘어나게 된다면 반도체 산업에서도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지펴지고, 나아가 산업 생태계에서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사업화에 첫발을 뗀 하이개라지 4기 멤버들이 이러한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