燒冷灶(소냉조). 차가운 온돌을 미리 덥혀놓는다는 뜻입니다. 현대 중국어에서 성어라기보다는 숙어에 가깝게 자주 쓰이는 말인데요. 당장은 쓰지 않지만 훗날을 위해 온돌에 불을 미리 올리듯 장래성이 밝은 일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워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별 볼 일 없지만 장래가 유망한 사람에게 미리 아부해 환심을 사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난해 반도체 설계 관련 자회사를 세우며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알리바바의 행보는 여러모로 ‘소냉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스스로 아직은 소프트웨어 중심 업체지만 미래 산업을 좌우할 반도체에 발을 미리 들이겠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이는 중국 정부가 관심을 쏟는 반도체 굴기에 힘을 보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알리바바가 지난해 9월 설립한 반도체회사의 이름은 핑토우거(平頭哥)입니다.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라텔의 중국식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꿀오소리라는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한국에서도 유력 정치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을 꿀오소리라고 지칭하면서 생김새와 성격이 잘 알려져 있기도 하죠.
작은 덩치임에도 어떤 상대를 만나든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상대하는 라텔은 불굴의 투지를 상징합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라텔을 처음 접한 뒤 새로 만들어질 반도체 자회사의 이름으로 고수했습니다.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는 성격이 알리바바의 창업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는 후문입니다.
알리바바는 핑토우거 창립 1년여 전인 2017년 초부터 반도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연구소 다모위안(達摩院)을 설립해 세계 각지의 반도체 전문가들을 영입한 것입니다. 150억 달러(약 17조 원)을 투자한 이 연구소의 2만5000여 명의 인재 중 적지 않은 수가 반도체 설계를 연구했습니다. ARM AMD 인텔 엔비디아 등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반도체 인력을 끌어들였습니다.
핑토우거는 다모위안 연구소의 반도체 관련 인력과 새로 인수한 반도체 설계업체 텐웨이의 조직을 합쳐서 출범했습니다. 구체적인 규모 등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만 사업 목표 등은 명확합니다.
그 목표는 라텔처럼 거침없습니다. 우선 연내에 기존에 나와 있는 NPU(Neural Processing Unit·신경망반도체)보다 성능이 10배 향상된 제품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모방하는 NPU는 단순히 입력에 따른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값을 스스로 도출합니다. 인공지능(AI) 칩이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내놓고 있는 퀄컴이 해당 영역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인텔도 높은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AI 칩 ‘기린’을 상용화한 화웨이도 높은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한 번도 자체 칩을 내놓은 적이 없는 핑토우거가 최소한 화웨이 기린의 10배에 해당하는 성능을 지닌 NPU를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핑토우거는 2~3년 뒤에는 최초로 양자반도체를 내놓겠다는 목표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양자반도체는 물질량을 나타내는 최소 단위인 양자를 이용해 현대 반도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대략적인 개념만 제시돼 있을 뿐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정의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핑토우거가 시제품 단계라도 양자반도체를 내놓는다면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바꿀 사건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도체 설계는 공정 등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제작 단계의 노하우 축적이나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텔 등에서 일하던 중국 출신 기술자가 귀국해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설계회사를 창업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재에 대규모 투자를 한 알리바바가 핑토우거를 통해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반도체 설계 역시 공정 등 물리적 작업을 거쳐야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관련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핑토우거가 목표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양자반도체를 실제로 개발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생산라인을 만들거나 찾지 못한다면 학술 논문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반도체는 알리바바가 기존에 해온 업역과 시너지를 가지지 못합니다. 알리바바는 잘 알려진 대로 전자상거래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여행과 개인금융 등에도 진출했지만 역시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기반이 된 분야입니다. 반도체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전자부품인 반도체가 알리바바의 기존 사업 영역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그들 스스로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리바바의 반도체 진출은 결국 중국 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알리바바가 수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더라도 중국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기술자들을 중국 내에 묶어두며 이들의 연구성과를 축적할 수 있죠. “아부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한 ‘소냉조’가 알리바바에게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 본 기사는 기고가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