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빛(Light)과 열(Heat), 그리고 물질(Substances)의 예술이다. 반도체 칩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백 개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동안, 클린룸에서는 빛, 열, 그리고 각종 용액이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부산물(By-Product)이 쌓인다. 안전한 사업장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발생하는 부산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안전(Safety), 보건(Health), 환경(Environment) 분야의 위험요소가 없는 기업(SHE Risk Free Company)을 추구한다. 최근 공정 부산물 처리 장비인 1차 스크러버(Scrubber, 액체를 이용해서 가스 속에 부유하는 고체 또는 액체 입자를 포집하는 장치)를 대상으로 ‘부산물 평가’를 실시하는 등 부산물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뉴스룸은 SK하이닉스 안전보건팀을 만나 부산물 관리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반도체 칩 생산장비 내부에서 발생하는 가스, 화합물을 걸러내고 제거하는 스크러버(Scrubber)는 쉽게 말해 클린룸 전용 ‘청소기’라고 할 수 있다. 장비에서 배출되는 부산물을 가장 먼저 제거하는 ‘1차 스크러버’와 이후 남아있는 잔여 부산물을 최종적으로 처리하는 ‘2차 스크러버’로 구성돼 있다. 웨이퍼 생산장비와 직접 연결되는 1차 스크러버는 각 공정별 다양하게 발생하는 부산물의 특성에 따라 처리하며, 이천캠퍼스에만 약 6,000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공정 부산물을 처리하다 보면 스크러버 체임버(Chamber) 내부에 하얀색 찌꺼기인 파우더(Powder)가 생긴다. 이 찌꺼기를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기기 오작동은 물론, 공정 완성도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사람이 스크러버 장비를 직접 해체해 청소하는 예방정비작업(PM, Preventive Maintenance)을 진행해야 한다. 특히 크기가 작은 1차 스크러버는 PM 주기가 매우 짧아 작업자가 업무 과정에서 가스 등 장비 내 잔여 부산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좌)생산장비에서 발생한 부산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는 ‘1차 스크러버(Scrubber)’ 내부 모습. ▲(우)작업자가 스크러버 체임버 내부 예방정비작업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안전한 작업을 위해 방독마스크와 보안경, 장갑 등 보호장비를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
이런 스크러버의 특성에 주목한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고용노동부와 함께 합동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예방정비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작업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꼼꼼히 조사했다. 조사 결과 특이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근무환경 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1차 스크러버 장치를 대상으로 부산물 평가를 시행했다. 자체 연구를 통해 예방정비작업을 책임지는 협력사 구성원의 건강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고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안전보건팀 조재현 팀장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아직 규격화되지 않아 측정하지 못한 위험요소가 현장에 있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며 “처리 시설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부산물들을 구체적으로 측정∙정리해,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부산물 평가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스크러버 부산물 평가는 4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대상 공정 선정’ 단계. 80여개 공정의 스크러버 중 가장 우선적으로 정밀 평가가 필요한 공정을 선정했다. 이론상으로 예방정비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부산물 리스트를 만들어 유해성을 검토한 후, 그중 CMR¹ 1등 특별관리물질 발생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공정들을 선별했다.
1) CMR: 발암성(Carcinogenicity), 생식세포 변이원성(Mutagenicity), 생식독성(Reproductive toxicity)을 지닌 화학물질을 이르는 용어. 환경부에서는 2018년 기준 총 364종의 성분들을 CMR 물질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부 고시 제2018-232호)
다음으로는 ‘부산물 정성 평가’를 통해 각 공정별로 실제 예방정비작업을 하는 동안 작업자가 노출될 수 있는 부산물의 종류를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스크러버 체임버 내부의 모든 성분을 입자, 금속, 가스 등의 세부 유형으로 분류해 구체적으로 발생가능성이 높은 부산물 리스트를 확보했다.
세 번째 단계는 해당 성분들이 해당 공정에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검출 농도를 측정하는 ‘부산물 정량 평가’다. 사업장 내 여러 측정 장비들을 동원해 기준치 미만의 낮은 검출량이라도 각 성분별로 최대한 정확한 수치를 확보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스크러버 장비를 대상으로 ‘퍼지 타임(Purge Time, 장비 내 잔여 가스를 빼내는 환기 작업에 걸리는 시간)’의 적절성을 평가했다. 장비별로 상이하게 설정돼 있는 퍼지 타임을 전수 조사해 작업장이 충분히 환기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를 통해 얻은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스크러버 장비별 데이터로 부산물에 장기간 노출됐을 때 작업자가 받을 수 있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평가해 대응할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마련했다. 특히 법적 규제 항목에는 포함돼 있지 않아 그동안 관리대상에 포함하지 못했던 부산물의 정보를 수집, 데이터화함으로써 예방적 차원의 개선책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두 번째는 장비마다 다르게 적용되던 퍼지 타임의 명확한 설정 근거를 마련한 것. 잔여 가스 제거에 사용되는 질소 투입량과 환기 작업 소요 시간에 대한 내부 기준을 구체적으로 수립했다. 상대적으로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total volatile organic compounds, 여러 가지 종류의 휘발성 유기화학물 농도의 총합)의 농도가 높은 스크러버 장비의 종류를 파악해 공정 특성에 최적화된 퍼지 타임을 설정함으로써 냄새 흡입 등의 문제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보건팀은 앞으로 기존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던 1차 스크러버에 대한 연구를 완료한 뒤, 일반 생산장비까지 단계적으로 부산물 평가를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스크러버 부산물 평가는 외부 전문기관의 권고에 따른 사후 조치가 아닌, 기업 차원에서 안전보건 분야의 새로운 규범을 선(先) 제시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없었던 기준을 만드는 일인 만큼 준비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안전보건팀의 조재현 팀장과 산업위생 파트장 김동문 TL을 만나 평가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안전보건팀 조재현 팀장
“1차 스크러버의 성능은 각 생산장비는 물론 전체 반도체 공정의 효율로 직결되기 때문에 예방정비작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협력사 구성원들이 조금 더 쾌적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법적 기준치를 만족한다고 거기 머물 것이 아니라, 외부 규제 요건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일관되게 구성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싶었죠. 그러기 위해서 우선 우리가 현장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안전보건팀 김동문 TL
“깐깐하다고 알려진 외부 기관에서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성분들을 회사 내부에 있는 장비들로 측정하려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필요한 장비 중에 회사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것도 있었고, 대부분의 부산물 농도가 워낙 낮아 정확한 값을 측정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죠.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관부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 덕분에 무사히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부산물 평가는 향후 일반 생산장비까지 확대되는 전사 차원의 장기 프로젝트인 만큼, 저농도의 부산물도 더욱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측정 장비를 개선하는 등 아직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협력사 관리자 교육을 통해 내부 구성원에게 평가 결과를 공유하는 절차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안전보건팀은 이 일을 꾸준히 지속해가는 이유로 ‘차별 없는 안전·보건 환경 구축’에 대한 사명감을 꼽았다. 소속과 관계없이 SK하이닉스 사업장 내에서 근무하는 구성원이라면 모두 동일한 안전·보건 시스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는 반도체 기술뿐만 아니라 건강과 안전 관리까지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SK하이닉스의 신념과 맞닿아 있다.
“정말 많은 협력사 구성원분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회사에 기여를 하고 있어요. 그분들이 시스템 차원에서 생기는 구멍 때문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자, 진정한 동반성장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구성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안전∙보건 관리 활동을 지속해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