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하이개라지(HiGarage)'가 출범한 지 어느덧 반년, 그동안 SK하이닉스 블로그는 1기의 여섯 팀 중 RC-TECH팀과 차고엔지니어링팀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았는데요. 오늘 만나볼 세 번째 주인공은 바로, 세상에 없던 소재로 공정 혁신을 넘어 사회적 가치 창출까지 꿈꾸는 ‘MHD’팀입니다. 하이개라지라는 '놀이터'에서 누구보다 즐겁게, 또 치열하게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성재 TL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이개라지에서 신규 소재 및 공정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이성재 TL입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이디어가 선정된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고, ‘내가 생각하는 게 그저 꿈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쁩니다.”
앞서 만나본 두 팀과는 달리, 팀원 없이 홀로 일하고 있다는 이성재 TL. 그의 팀 이름인 ’MHD’에서 M과 H는 아이들 이름의 이니셜, D는 'Dream'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Materials for Highend Device'의 약자이기도 하죠. 자랑스러운 아버지로서, 또 집념의 엔지니어로서 열정과 책임감이 느껴지는 중의적인 이름입니다.
하이개라지 이전부터 이성재 TL은 반도체 업계의 최대 이슈인 ‘미세화 한계’ 극복 방안에 대해 늘 고민했습니다. 하이개라지에 선정된 그의 아이디어는 이러한 현업에서의 고민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 결과 패턴 미세화에 따라 증가되는 SPT(Spacer Pattern Technology) 공정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소재와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Photo 공정 영역 내에서 ‘어떻게 하면 공정을 단순화할 수 있을까’, ‘반도체 패턴 미세화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를 항상 고민했죠. 그러던 중 외부 학회에서 강연을 듣게 되었는데, 강연 내용을 반도체 공정에 연결시키다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생각하고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이성재 TL은 부서 변경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업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그는 운명처럼 하이개라지 공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그것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현업에 있을 때는 우선순위를 따지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후순위로 밀릴 때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데만 몰입할 수 있죠. 이것이 하이개라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단계별로 문제를 만나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아성취를 이루는 것 같아 뿌듯하고요.”
지금까지 반도체는 작은 면적에 많은 용량을 저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회로를 새겨 넣어야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회로 간 선폭을 좁혀야 하는데, 이를 반도체 미세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미세화가 진행될수록 공정수가 계속 증가하고, 이에 따른 비용 부담도 커집니다.
하나의 반도체 칩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수백 회의 공정이 필요합니다. 공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반도체의 생산단가가 올라가기 마련인데요. 이성재 TL이 개발 중인 아이템은 현재 실현되고 있는 공정들을 대체하는 프로세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현하는 아이디어의 핵심은 ‘USM(ULTO Skip Materials)’, 세상에 없던 소재입니다.
"ULTO라는 공정을 통해 원하는 패턴을 만들려면 총 여섯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하나의 공정으로 만드는 것이 새로 개발하는 프로세스의 핵심입니다. USM은 그 프로세스를 구현하기 위한 소재이죠.”
USM이라는 소재와 그에 따른 프로세스가 현업에 적용된다면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요? 이성재 TL은 현재 반도체 산업이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이 개선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USM이 실현될 경우, 공정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향상됩니다. 여러 공정을 건너뛸 수 있어 비용이 절감되며, Fab Space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죠. 지금도 EUV(Extreme Ultraviolet), DSA(Directed Self Assembly) 등 반도체 미세화를 위한 기술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개발단계에 머물러 있어 많은 투자 비용이 필요한 상황인데요. USM이 이를 대체할 수 있어 반도체 미세화를 좀 더 빨리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세상에 없던 소재와 프로세스를 만들어낸다는 것, 말 그대로 무(蕪)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현업에서와는 달리 혼자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그만큼 고충도 많을 텐데요.
“아이디어를 한 단계씩 검증하고, 이것을 양산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생각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같은 곳을 보고 함께 의논할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좀 외롭죠. (웃음) 하지만 하이개라지에서는 사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유관부서의 담당 PL들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하이개라지를 통해 이성재 TL은 품고만 있던 아이디어를 세상 밖으로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 TL에게 하이개라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놀이터를 준 것 같아요. 마음껏 뛰어 놀며 제가 가진 것들을 모두 활용해볼 수 있는 기회니까요. 아침에 나가서 놀든, 밤에 나가서 놀든 아무런 제약 없지만 모든 권한이 저에게 있는 만큼 책임 또한 저에게 있죠. 제 사업인 만큼 부담감이 크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큽니다.”
반대로 SK하이닉스에게 하이개라지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성재 TL은 하이개라지를 ‘씨앗’으로 비유합니다.
“산이 풍요로워지려면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SK하이닉스를 큰 산이라고 볼 때, 여기에 하이개라지라는 씨앗을 심어 놓으면 그것이 무럭무럭 자라서 산을 더 푸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하이개라지는 미래를 위해 뿌리는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수한 아이디어를 가진 구성원에게 창업의 기회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하이개라지의 방향성입니다. 이성재 TL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경우 어떠한 사회적 가치가 창출될까요?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화학 물질을 무해하게 만들려면 불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공정이 단순화되면 그런 과정이 생략되니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또, 현재 우리나라는 반도체 포토 공정에 필요한 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를 USM을 통해 국산화함으로써 국내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고, 오히려 해외 반도체 업체에 우리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습니다”
2년간의 하이개라지 활동이 끝나면 창업과 사내사업화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성재 TL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의 꿈이 맞닿은 곳은 어디일까요?
“이왕 시작한 것이니, 후회가 없을 정도로 연구해보고 싶고요. 나중에는 구글에 제가 하는 사업 아이템이 많이 검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기술에서 더 개선된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거기서 제 이름이 많이 인용되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반도체 분야에서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가들은 뜨거운 열정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차고에서 꿈을 키워 굴지의 기업을 일궈냈습니다. 오늘 만나본 하이개라지 멤버 이성재 TL에게서 느껴지는 열정은 그들 못지않아 보였는데요. 그래서 그가 말하는 미래의 꿈은 단순히 꿈으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는 엔지니어,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SK하이닉스가 있기에 기술로써 더불어 사는 세상은 이미 가까워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