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X센터 8층의 어느 한 사무실, 한쪽 벽면엔 ‘경쟁자를 이기는 수준’이란 글귀가 쓰여있다.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지는 이곳은 바로 워룸(War Room). 조용하게, 하지만 예리하고 치열하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 중인 이곳에서 오늘의 주인공, 기술명장 마경수 기정(SK하이닉스 Etch기술혁신팀)을 만났다. 다년간 생산라인을 종횡무진하며 장비의 ‘건강’을 책임져온 그는 현재 소스파라를 이용한 장비 이상 감지와 TTTM 관리, 이와 관련된 시스템 개선 및 개발 업무 등을 맡고 있다.
그의 책상 한켠에는 노트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이 노트에는 기술명장에 오르기까지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의 기록이 담겨 있다. SK하이닉스 뉴스룸은 업무 현장에서 그를 만나 빼곡히 필기된 글씨처럼 빈틈없이 치열했던 그의 여정과 SK하이닉스 기술명장을 넘어 그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반도체 생산라인에는 공정을 처리하기 위한 수많은 장비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각의 장비에는 사람의 혈관에 해당하는 소스파라(Source Para)1)가 내재화돼 있다. 마경수 기정은 소스파라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장비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장비간 오차를 줄여 퍼포먼스를 동일하게 맞추는 TTTM(Tool To Tool Matching) 업무도 맡고 있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각 항목에 따른 정상수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초과 또는 미달되는 정도에 따라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죠. 제가 하는 업무도 이와 비슷합니다. 건강검진을 통해 미리 질병을 예방하는 것처럼, 장비의 결함 여부를 실시간으로 발견해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생산 신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품질 Part로 이동하며 워룸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기존 업무의 연장선에서 제조기술 부문의 구성원들과 함께 SK하이닉스의 모든 팹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는 ‘원팹(One Fab)’을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15년간 일하던 현장을 떠나 사무실로 나오게 된 2008년, 저에게 미팅 참석을 요청하는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파트장님께서 잘못 보낸 메일이었죠. 그 사실을 모른 채 미팅에 참석했다가 그 사건이 계기가 돼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조직이 바로 Smart FDC TFT2)이죠.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된 이 조직에서 어느새 그룹 총괄 담당자가 되었네요”
우연한 계기로 들어가게 된 Smart FDC TFT에서는 유독 크고 작은 품질 관련 이슈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난제를 해결해갔다.
“M10에서 소스파라 업무를 할 당시, 인터록(Interlock)3)을 릴리즈(Release)하는 판단 기준이 엔지니어마다 상이해 품질 이슈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인터록은 제품의 불량률을 줄이고 품질을 좌우하는 만큼,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했죠. 그래서 일명 ‘풀프루프(Fool-proof)’, 누구나 인터록을 릴리즈해도 동일하도록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생산라인에 외산 장비를 셋업(Set-up)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이슈를 분석하고 개선하는 일을 하기도 했고요”
업무를 하며 만나게 되는 수많은 난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그의 기술 수준은 날로 발전해 어느새 ‘명장’의 경지에 오르게 됐다. 그 밑바탕엔 현장에서 축적한 오랜 경험과 노하우들이 있다. 특히 시절부터 매일매일 그날 처리한 업무에 대해 기록한 노트들은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곤 했다. 마경수 기정을 기술명장으로 만들어낸 현장에서의 15년을 그의 노트를 통해 되돌아봤다.
마경수 기정이 현장에 처음 발을 디디게 된 93년 1월. 당시 6인치 웨이퍼가 주력이었던 SK하이닉스는 8인치 웨이퍼를 만드는 팹(Fab)을 건설하고 있었다. 이었던 마 기정은 E-1 프로젝트(200mm 1st Line)에 배치 받아 새로운 생산환경에 맞춰 장비를 셋업하고, 수시로 점검하며 트러블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맡았다.
“셋업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지만 짧은 기간 내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이 경험이 지금의 밑바탕이 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일하던 15년 동안 잠자는 시간이 아쉬웠고, 빨리 날이 밝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어제 점검하던 장비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그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람이 만든 장비, 사람이 못 고칠 수 없다는 신념이 있었고, 제 손과 제 눈으로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되는 피곤한 스타일이었죠. (웃음)”
▲ 당시 신규 모델 장비에 적용된 새로운 부품 Gate Valve4)에 문제가 생기자, 이를 분해해 각 부품의 기능과 사용조건에 따른 예상 Risk Point를 기록한 것(왼). 고진공을 유지해야 하는 챔버에 Leak5)가 발생하여 문제를 야기한 Valve6)를 분해해 문제점을 분석한 것(오). ▲ 장비 내 Wafer를 반송시켜주는 핵심 Robot의 Controller의 동작 원리를 영문판 원본 Manual을 번역하여 정리한 것.
새 팹에 장비를 셋업하는 일은 이제 갓 입사한 에게 만만치 않은 임무였다. 마경수 기정은 현장에서 선배들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모두 메모하기 시작했다. 장비의 컨디션을 시간 단위로 작성해 동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PC가 보급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현장에서의 경험을 모두 기록한 이 노트는 마경수 기정만의 Office PC였다.
“ OJT 때부터 2008년까지 현장의 경험을 정리한 노트와 파일들이 이제 사무실 한 켠에 박스에 담겨져 있습니다. 보물 1호가 됐죠. 당시엔 몰랐는데, 퇴사한 선배님들이 제 노트를 많이 카피해갔다고 들었습니다. 10년 후에 알게 됐어요. 지금도 그 노트들을 한번씩 들여다보면 옛 생각에 웃음이 나옵니다. 유사한 문제가 생겼을 때, 과거의 기록을 보며 ‘이럴 땐 이렇게 해결했었지’하고 참고하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현장을 떠나 Etch기술혁신팀에 오면서 작성한 PDC(Personal Development Card)에 적힌 마경수 기정의 장래희망은 ‘대한민국 명장’이었다. 그는 2017년 기술력과 리더십을 두루 갖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분야 최고 기술자 ‘기술명장’에 선정되며 그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곱씹었어요. 그렇게 꾸준히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기술명장이 되었고,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뿌듯했습니다”
SK하이닉스 기술명장에게는 난제 해결과 자기개발, 후배 양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가 부여된다. 기술명장으로서 맡게 된 업무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요즘 SK하이닉스에 무엇이 도움이 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업무적으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전체 업무를 바라보는 시야도 더욱 넓어졌다. 처음에는 파트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팀 담당자가 되고 또 그룹 담당자가 되면서 관여하는 분야가 더욱 늘어난 것.
업무 외적으로는 타 부서의 요청으로 강의에 나설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 마경수 기정은 오래 전부터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소스파라와 TTTM 실무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얼마 전 ‘우수강의 Top10’에 꼽힐 만큼 웬만한 스타강사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또 마경수 기정은 후배들에게 자신이 작성했던 PDC를 작성할 것을 권하며 목표를 갖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때론 “10년 뒤의 모습이 지금과 똑같으면 실패한 사람이다”라며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무뚝뚝한 선배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술 한잔 기울이며 주저 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선배다.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후배들을 많이 봐요. 하지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혹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주어진 일에 자기주도적으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분명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날이 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도 현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그랬으니까요.”
SK하이닉스와 오랜 시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마경수 기정. 처음 프로젝트를 배치 받고 장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필기했던 시절처럼, 그는 여전히 스스로 녹슬지 않도록 끊임 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하이지니어로서, 기술명장으로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입사 이래 SK하이닉스는 그 어느 때보다 고속성장을 이루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래왔듯 꾸준함을 잃지 않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해, 회사의 성장에 도움이 됐던 한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래 전부터 소망하던 ‘대한민국 명장’의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에는 현재 M16 팹이 건설되고 있으며, 용인에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팹이 늘어날수록 생산장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금까지 장비의 표준을 정립하는 일을 모두 인력으로 진행했다면, 이제는 ‘원팹’ 구축을 통해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시스템’을 물려주고 싶다는 게 마경수 기정의 가장 큰 바람. 그는 오늘도 ‘소리 없는 전장’ 워룸에서 그 꿈을 이루고자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각주>
1) 소스파라(Source Para): 장비의 실시간 상태를 대변하는 근원적 패턴 데이터(Pattern Data)
2) Smart FDC TFT: Smart Fault Detection Classficationdml의 약어로 Source Data의 Intelrock 관리 System
3) 인터록(Interlock): 최적화된 공정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장비의 작동이 중단되는 시스템. 올바른 조건에 맞춰질 때까지 작동을 중단함으로써 제품의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4) Gate Valve: 고진공의 역압을 유지하는 장치
5) Leak: 고진공을 유지해야 하는 공간에 유체가 미세하게 유입 되는 현상
6) Valve: 유체의 이동 통로에 설치되어, 유체의 양 or 방향, 압력을 조절 하는 장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