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업계에 ‘상생’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 잠재적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나아가 기술혁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 SK하이닉스 역시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노력 중이다. 뉴스룸은 상생협력 시리즈를 통해 SK하이닉스가 추구하는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5년 전부터 현재까지 패턴 웨이퍼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협력사들을 위해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참여사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어느덧 국내 반도체 산업계의 대표 상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 뉴스룸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상생협력팀 강대희 TL과 실제 사업을 통해 패턴 웨이퍼를 지원 받고 있는 두 협력사 관계자를 만나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 그리고 반도체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패턴 웨이퍼(Pattern Wafer)란 미세 회로 패턴이 새겨진 웨이퍼를 의미한다. 반도체 장비·소재 업체에서 신규 장비나 재료, 부품을 개발하거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소자 고객사의 패턴 웨이퍼가 필요하다. 하지만 웨이퍼에 패턴을 형성하는 노광장비는 한 대당 가격이 1천억 원대에 이를 정도로 고가이므로 중소·중견 업체에서는 장비의 마련이 사실상 어렵다. 또한 패턴 웨이퍼는 장당 가격이 수백만 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며, 값을 치른다 해도 마땅한 공급처가 없어 소자 회사와 공동개발을 진행하지 않는 한 확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협력사의 고충을 눈여겨본 SK하이닉스는 지난 2014년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강대희 TL은 이에 대해 “협력사의 대부분이 패턴 웨이퍼를 필요로 하지만, 수급이 어려워 연구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라며 “SK하이닉스가 보유한 공정장비를 활용해 협력사가 필요로 하는 패턴 웨이퍼를 제작•공급함으로써 신제품 및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나아가 기술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자 지원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를 시작으로 2015년부터는 반도체산업협회의 주관 아래 삼성전자, 동부하이텍 등 국내 반도체 소자 대기업이 참여하며 그 규모도 확대됐다.
패턴 웨이퍼 지원을 희망하는 기업은 1년에 두 번, 반도체산업협회를 통해 필요한 스펙과 수량, 원하는 소자 기업을 선택해 신청서를 접수한다. 이후 소자 기업의 구매 담당자가 참여사의 기술력, 적합도, 협업도 등을 평가해 최종 지원할 수량 및 스펙을 확정한다. SK하이닉스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미래기술연구원 Fab에 패턴 웨이퍼 제작을 의뢰하고, 약 30여 일 간의 제작과정을 거쳐 협력사에 최종 전달한다.
SK하이닉스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국내 반도체 중소•중견기업을 위주로 지원대상을 선정하고 있으며, 국산화 및 산학협력을 추구하는 기업과 대학교, 공공연구기관 등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협력사가 원하는 Spec을 최대한 반영하여 3가지 타입(Bar, Hole, Blancket), 14 종의 Spec을 보유하고 있다. 협력사는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을 통해 기존(2,000$/장)보다 10%의 저렴한 가격(200$/장)에, 해외 연구기관으로부터 조달 받을 때(90일)보다 3배 빠른 기간(30일) 내 공급받을 수 있다.
2014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패턴 웨이퍼의 누적 지원 규모는 5,100여장. 프로그램에 지원한 협력사는 대학교 포함 47개사에 이른다. SK하이닉스가 진행 중인 동반성장 프로그램 중 단연 반응이 가장 뜨겁다. 해를 거듭할수록 패턴 웨이퍼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SK하이닉스는 연간 1,000장을 목표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협력사 입장에서 바라본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은 어떨까? SK하이닉스와 오랜 시간 협력관계를 이어오며 기술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두 협력사, PSK와 유진테크를 만나 사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PSK는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Dry Strip, Dry Cleaning, Etch Back 등 다양한 반도체 장비 및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그 중 PSK의 대표 장비는 웨이퍼에 남아있는 감광액 찌꺼기를 제거하는 ‘애셔(Asher)’. PSK에서 공정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윤영 수석은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로 '패턴 사이즈의 문제'를 첫 손에 꼽았다.
당시 웨이퍼 직경이 200mm에서 300mm로 커지면서 이에 따른 기술 변화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PSK는 300mm 웨이퍼용 장비를 개발 중임에도, 200mm 패턴 웨이퍼로 테스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던 상황. 그마저도 국내 나노종합기술원(나노팹) 혹은 해외 연구기관을 통해 조달해야 했으며, 3개월이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이 수석은 "반도체 개발은 '타이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고객사에서 반도체가 적기에 개발되려면 훨씬 이전부터 장비가 공급돼야 하는 만큼 그 과정에서 부침을 겪었다"고 말했다.
유진테크 오완석 과장 역시 “모든 협력사가 같은 고민이었을 것”이라며 이에 공감했다. 유진테크는 웨이퍼 위에 박막을 형성하는 증착 관련 장비업체로, 그는 증착장비의 공정 및 장비 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오 과장은 “고객사인 SK하이닉스는 300mm 웨이퍼를 사용 중이었으며, 메모리 반도체 회로 선폭 역시 10나노급으로 점점 미세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같은 고객사의 조건에 맞춰 테스팅 할 수 있는 패턴 웨이퍼를 구할 수 없어 장비개발 단계에서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의 고충을 털어놨다.
유진테크와 PSK 모두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에 참여한 지 어언 5년이 흘렀다. 두 협력사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겼을까?
오완석 과장은 '개발기간의 단축'을 가장 큰 메리트로 꼽으며 "패턴 웨이퍼 지원을 통해 협력사와 고객사의 간극을 많이 좁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개발한 설비를 고객사 양산라인에 투입한 뒤 산출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또다시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절차를 밟았다면, 지금은 고객사인 SK하이닉스로부터 받은 패턴 웨이퍼로 자사에서 바로 테스트할 수 있게 된 것. 이에 그는 “보다 더 완성도 높은 제품을 빠르게 개발하여 고객사에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윤영 수석은 "신제품의 정확한 검증과 예측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적합한 사이즈의 웨이퍼를 구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베어 웨이퍼(Bare Wafer, 가공 전 웨이퍼)에 시료를 잘라 붙여 쓰는 방식을 취했다”며 “패턴 웨이퍼를 쓰고 있는 지금은 사전에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지 미리 파악할 수 있어 더욱 개선된 조건으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협력사는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 이외에도 SK하이닉스의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얼마 전 이윤영 수석은 반도체 아카데미를 통해 플라즈마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다. '분석측정 지원센터' 또한 두 사람이 꼽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 오완석 과장은 "SK하이닉스의 최신 장비를 통해 분석을 수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품질의 분석 데이터를 바로 제공 받을 수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SK하이닉스는 ‘상생협력’을 기치로 내걸고 반도체 업계와 동반성장하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협력사와의 상생이 곧 미래경쟁력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 SK하이닉스가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이와 연결된다.
“하나의 반도체 칩이 탄생하기 까지는,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사가 함께 힘을 합쳐야만 합니다. 협력사의 경쟁력은 곧 SK하이닉스의 경쟁력입니다. 나아가 이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로 이어집니다. SK하이닉스는 biz.파트너를 넘어 biz.패밀리로서 협력사와 함께 선순환 구조를 일구어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상생협력 활동의 보폭을 넓혀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