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5일 프랑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화재가 일어나 건물 골조만 남는 일이 발생했죠. 그야말로 인류의 유산이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유비소프트의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는 만큼, 파리의 주요 건축물의 모습을 접할 수 있는데요. 특히 다른 게임과는 달리 1:1 축척을 사용해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다 자세히 재현해, 지금은 볼 수 없는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게임 속에 구현되는 물체나 인물을 하나하나 제작했다면, 이제는 실제처럼 만들기 위해 스캔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게임 속에서 실제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건축물이 어떻게 제작되고 구현되는지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3D 레이저 스캐닝은 3D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스캔 대상물의 3차원 형상 정보를 디지털화하여 데이터를 취득하는 기술입니다. 3D 스캐너는 레이저를 발사한 뒤 대상에 부딪혀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공간 구조를 파악하는 기술로, 레이저가 반사돼 돌아오는 지점 하나하나의 거리를 계산해 이를 바탕으로 건축물의 형상을 3차원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수치를 데이터화할 수 있는 3D 레이저 스캐닝은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골조 공사 후 3D 스캐닝을 통해 설계 도서와 시공 현황과의 오차를 정확히 측정하여 설비 배관 간섭을 미리 검토할 수 있고, 마감 계획과 필요한 자재 파악 등에 활용해 건축 예산을 절약할 수도 있죠. 특히 반도체 공장처럼 매우 정교한 시공이 필요한 건물의 시공 품질 향상 및 오류 감소로 인한 비용 절감 등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3D 스캐닝을 통해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운 구조물의 처짐 등 시설물의 유지 관리를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건축물의 구조안전진단을 위한 변위 측량에도 유용하다고 하네요.
여기에 문화재 보존을 위한 건축물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도 유리합니다. 레이저지만, 에너지가 낮은 가시광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건물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빨강, 녹색, 파랑 등 3가지 파장의 가시광선 레이저를 써서 색채를 구현하기도 하고 적외선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앤드루 탤런 전 미국 배서대 교수가 측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3D 스캐너 기업 ‘라이카 지오시스템’이 재현한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출처: 라이카 지오시스템)
앞서 언급한 노트르담 대성당도 이미 3D 레이저 스캐닝을 통해 자료가 남아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타계한 전 미국 배서대 교수이자 건축사학자였던 앤드루 탤런은 평생 노트르담 대성당의 구조를 3D 측정 데이터로 담는 일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그는 2010년부터 대성당 안팎의 모습을 3D 레이저 스캐너에 담았는데 내·외부를 50차례 넘게 측정해 무려 10억 개가 넘는 표면 위치 정보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하네요. 5mm 크기의 작은 부재와 세부 장식까지 완벽하게 담았는데 이를 토대로 디지털 노트르담 대성당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합니다.
▲ 1:1 축척을 사용한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속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출처: 유비소프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속 노트르담 대성당은 정밀한 3D 스캔 기술이 아니라 사진 데이터를 토대로 모델링했습니다. 여기에 게임 플레이를 위해 내부 배치를 변경하고 저작권 때문에 벽화나 파이프 오르간 등이 빠졌습니다. 이 때문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보는 용도는 될 순 있겠지만, 아쉽게도 정밀한 복원 작업에는 사용될 수 없죠.
▲ 3D 레이저 스캐닝 기술을 통해 복원된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출처: 문화재청)
3D 레이저 스캐닝을 통해 실제 복원한 사례는 국내에도 있습니다. 20년 만에 복원한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이 기술이 쓰였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01년 미륵사지 석탑 6층 옥개석을 내릴 때부터 마지막 기단부 해체까지 10년에 걸쳐 해체하면서 작업 전과 중간, 후에 각각 3D 레이저 스캐너로 입체 정보를 측정했다고 합니다.
연구소는 해체 과정에서 나온 부재 3,000개를 하나하나 레이저로 스캐닝해 모양과 크기 정보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8년에 걸쳐 총 2만 4,000개의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정보는 낡은 부재를 강화하거나 새 부재로 대체할 때, 탑 전체의 안정성을 평가하고 복원 방법을 결정할 때도 모델링 연구를 통해 활용됐다고 하네요.
▲ 포토스캔은 보다 많은 양의 사진이 있으면 더 자세하고 고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출처: Agisoft Metashape 공식 유튜브 채널 동영상 캡처)
게임 속에서 3D로 구성된 물체를 구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포토그래메트리는 실제 물체를 촬영한 ‘사진’을 재료로 사용해 3D 모델링을 구현하는 기술입니다.
포토그래메트리의 툴 중에서 ‘포토스캔’은 러시아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여러 각도로 촘촘하게 찍은 여러 장의 사진으로 색 정보와 방향을 분석, 계산해 고품질의 텍스쳐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 포토그래메트리 기법을 게임 속 오브젝트에 적용한 ‘스타워즈 배틀프론트’. (출처: 일렉트로닉 아츠)
포토스캔을 통해 3D 오브젝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포토스캔에 사용되는 사진은 일반 사진과는 다르고 물체를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보다 다양한 각도와 다양한 높이에서 촬영해 물체를 촘촘히 찍어야 합니다. 찍은 사진을 정렬하고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고밀도 클라우드를 생성, 이를 기반으로 표면을 구현하면 사실과 똑같은 3D 오브젝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광원 효과 조절을 거쳐 게임 속 오브젝트로 태어납니다.
3D 스캔은 실존하는 대상을 다수의 카메라로 다각도에서 촬영해 3차원 모델링 데이터로 변환하는 기술입니다. 대상을 찍는 카메라가 많을수록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죠. 이를 통해 성별, 연령별, 체형별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게임에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 128대의 DSLR로 제작되는 엔씨소프트의 3D 스캔 스튜디오. (출처: 엔씨소프트)
우리나라에서는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가 대한민국 게임회사 최초로 3D 스캔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128대의 DSLR로 동시에 대상을 촬영해 보다 리얼리티를 살린 고퀄리티 게임 캐릭터를 제작한다고 합니다.
▲ BetterReality 3D 스캔 기술 (출처: Next Gen Scan 유튜브 채널)
사람 이외에 건물 같은 배경을 스캔해 모델링하는 기술도 있습니다. 폴란드의 BetterReality는 Thorskan이라는 3D 스캔 기술을 선보였는데 인물이나 작은 오브젝트를 스캔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나 건물을 스캔하는 기술입니다.
▲ 3D 스캔을 통해 사실감을 높인 ‘Get Even’. (출처: The Farm51)
이 기술을 활용해 The Farm51에서는 2017년 ‘Get Even’이라는 FPS 게임을 선보였습니다. 가상의 데이터를 통해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배경을 스캔해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더 실감 나는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원래 모습 그대로를 적용하려면 고용량의 데이터를 속도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뛰어난 메모리 성능이 요구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래픽 다운을 거쳤습니다.
이렇듯 현실의 모습을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다양한 기술이 존재합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피카소의 명언 중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방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데이터로 담는 3D 스캔 기술이야말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