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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의 비지중물(非池中物), 중국 롱시스의 잠재력을 보다

Written by 노경목 기자 | 2018. 10. 17 오전 12:00:00

 

비지중물(非池中物), 용이 때를 만나면 못을 벗어나 하늘로 오르듯 영웅도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큰 뜻을 편다는 뜻입니다. 중국에는 한국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하드웨어 제조업체들이 있습니다. 이 중에는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있지만 반도체로 저장장치를 비롯한 제품들을 만드는 기업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고객에 속하는 기업들이죠. 그중 롱시스(Longsy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장보롱(江波龍)은 중국 내에서 기술력이 가장 높고 판매량도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저장장치 제조업체입니다. 기업명 자체가 ‘강에 파도를 일으키며 승천하는 용’이라는 뜻입니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롱시스는 반도체 업계의 비지중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마이크론 자회사 렉사 인수로 글로벌 경쟁력 강화

 

▲ 첫번째 이미지 : 소비자용 메모리카드(출처: Longsys) / 두번째 이미지 : 2.5인치 SSD (출처: Longsys)/ 세번째 이미지 : BGA NVMe SSD (출처: Longsys)

롱시스는 낸드플래시를 이용해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플래시메모리 카드 등을 제조합니다. 1998년 설립돼 원래 넷콤(netcom)이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판매했지만 일부 국가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기업이 존재해 2011년에 포씨(forsee)라는 브랜드를 새로 도입했습니다.

한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은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의 저장장치 제조 자회사 렉사(Lexar)를 지난해 9월 인수하면서입니다. 디지털 카메라용 저장장치 및 USB를 주로 만들어온 렉사를 정리하고 관련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마이크론의 발표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이뤄진 일입니다. 롱시스는 오랫동안 저장장치 사업을 하며 해외에 많이 알려져 있는 렉사의 브랜드 파워를 이용하기 위해 업체 자체를 사들였습니다. 실제로 렉사 인수 이후 롱시스는 소비자용 제품에 렉사, 기업용 제품에는 포씨라는 브랜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롱시스는 마이크론의 저장장치 제조 자회사 렉사를 인수했다. (출처: Longsys)

아직 롱시스는 세계 저장장치 업계에서 크게 두각을 못 드러내고 있습니다. SSD 시장의 점유율도 아직 미미한 수준입니다. 회사 자체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3년간 포씨 브랜드를 달고 팔린 저장장치는 1억 5000만 개로 용량을 기준으로는 18억 GB(기가바이트)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큰 저장장치 업체인 만큼 중국 시장 내 영향력은 큽니다. 중국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요 낸드플래시 고객 중 하나입니다. 특히 회사 측은 2015년 “중국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를 가장 많이 사들였다”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죠.

中 내수 수요 등에 업고 세계시장 제패 노린다

▲ 롱시스는 지난 1월 CES에서 초소영 SSD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출처: Longsys)

최근에는 기술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난해부터는 SSD에 HMB(Host Memory Buffer)를 탑재해 D램의 도움 없이 높은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는 초소형 SSD를 내놔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가로, 세로 크기가 8㎜, 10㎜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저장장치와 크기 자체는 별 차이 없지만 용량은 사양에 따라 480GB에 이르는 제품입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자체적으로 내장도 해야 하는 VR(가상현실) 기기와 자율주행차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회사 측의 전망입니다.

중국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 정부를 추진하며 저장장치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중국 내 PC의 40%만 SSD를 사용하고 있어 소비자용 제품의 내수 시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 롱시스의 차이화보 회장 (출처: Longsys)
“낸드플래시 시장에서의 경쟁은 마라톤 경기와 비슷합니다.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뛰는 것 이상으로 인내심을 갖고 다른 이들을 쫓아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이는 이렇게 인내심이 있으면서 끝까지 함께 뛰는 기업일 것입니다.”

 

창업자인 차이화보 회장은 이처럼 든든한 중국 내수 수요를 바탕으로 언젠가 세계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중국의 ‘반도체 굴기’와 관련해서도 눈여겨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창장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양산에 돌입하더라도 초기에는 저사양 제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 진입을 시작했던 LCD(액정표시장치) 제조업체들의 선례에 비춰볼 때 초기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소화하기에는 수준에 못 미치는 물량을 중국 업체들에 떠넘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의 생태계가 튼튼할수록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연착륙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구조의 연장선에서 롱시스의 성장은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 반길 수만은 없는 사안입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롱시스는 아직 세계 SSD 제품 시장의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소니 SSD에 납품하는 등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습니다. 속도 못지않게 인내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차이화보 사장의 말처럼 마라톤 같은 낸드플래시 시장 경쟁에서 과연 승자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