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기업을 관통하는 화두는 단연 ‘ESG’다.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앞글자를 딴 약자인 ESG는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을 뜻한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 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Alliance)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ESG 투자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30조 6,830억 달러(3경 7,329조 원)로 2012년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야기한 불확실한 시대 속 ESG는 어쩌면 유토피아적인 이념으로 보일 법도 하지만, 기업들은 오히려 ESG에 집중한 새로운 경영원칙을 앞다퉈 내세우며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ESG 경영을 내재화하기 위해 관련 CEO 직속 TF를 올해 신설하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뉴스룸은 ESG의 현주소, 그리고 앞으로 SK하이닉스가 그려나갈 미래를 들여다봤다.
지난달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그룹 전 구성원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메일의 핵심 내용은 ‘ESG’였다. 최 회장은 ESG에 대해 “미래 세대와 공감하며, 사회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건강한 기업 지배구조를 고민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매출, 영업이익 같은 숫자로만 우리를 보여줄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연계된 실적 및 주가,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꿈을 하나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생존법”이라고 전했다.
최 회장의 메일은 글로벌 경영 트렌드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기업의 전통적 경영방식은 재무적 성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기업을 바라보는 이해관계자의 눈이 확연히 달라졌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며, 인권·노동 분야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그 기업은 신뢰와 공감을 잃게 된다. ESG 경영은 단순히 ‘착한’ 기업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도구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며 기업에 투자할 때 단순히 재무적 성과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환경적 영향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지배구조의 투명성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살피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올 초 “투자 결정 시 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겠다”며 기업의 ESG 준수 의무를 강조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도 기업의 ESG 경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극심한 피해를 입은 가운데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요구가 더욱 강화된 영향이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수 년 전부터 “기업이 돈만 벌어서는 생존할 수 없으며, 사회적 가치를 키워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SK그룹의 철학을 바탕으로 DBL(Double Bottom Line,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경영철학) 경영을 본격화했다. 사회적 가치(SV, Social Value)를 화폐가치로 환산해 체계적인 자체 지표를 마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해관계자 사회적 가치 니즈 및 글로벌 사회 이슈 등을 반영하여 환경-공급망관리-사회공헌-기업문화 측면의 4대 분야에서 각각 ▲Green 2030 ▲ Advance Together ▲ Social Safety Net ▲ Employee Development 에 기반해 ESG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즉, SK하이닉스는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환경∙사회∙거버넌스 각 영역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ESG 경영을 통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DBL경영에 힘 쏟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는 다량의 에너지와 용수를 사용한다. SK하이닉스는 업의 특성상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고려해 온실가스 배출 감축, 폐기물 재활용, 수자원 관리,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등 세부 과제를 설정해 꾸준히 실행 중이다. 나아가 협력사 40여 곳과 ‘에코 얼라이언스(ECO Alliance)’를 결성, 반도체 생태계가 안고 있는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도 했다. 얼마 전 SK하이닉스 이천 사업장 근처 죽당천에 등장한 수달은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달은 수질과 생태계의 안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수달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방류수를 깨끗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 ① SK하이닉스의 폐수 재활용 시스템 ② ‘에코 얼라이언스(ECO Alliance)’ 출범식 ③ 죽당천에서 발견된 수달 ④ 고가 장비 및 현장 분석 노하우를 공유해 협력사의 물성, 화학, 계측 분석을 돕는 ‘분석/측정 지원 사업’ ⑤인공지능(AI) 스피커 실버프렌드(좌), 위치추적 기반 배회감지기 행복GPS
‘동반성장’ 역시 SK하이닉스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SK하이닉스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회사가 보유한 반도체 지식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있다. 협력사를 대상으로 분석/측정 지원 사업, 패턴 웨이퍼 지원 사업, ESG컨설팅, 청년 Hy-Five 등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더불어 독거노인 어르신을 위해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스피커 ‘실버프렌드’를 무상 지원하고, 치매 어르신과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위치추적 기반 배회감지기 ‘행복GPS’를 보급하는 ICT 기반 사회공헌 활동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사회 곳곳에 지원 활동을 펼치며 사회안전망(Safety Net)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확보하고 책임 경영을 수행하기 위해 건전한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외이사 비율이 전체 이사의 과반수를 유지하도록 규정해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확보했다. 또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해 경영진 감시 및 견제기능을 강화했으며, 사외이사진 대상의 다양한 교육을 진행해 이사들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또한, 다양한 ESG 활동과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위해 매년 지속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은 건전한 기업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려 하는 SK하이닉스의 노력을 살필 수 있으며, 더불어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경영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ESG 친화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난 9월 1일 CEO 직속 ESG TF를 출범했다. TF를 이끌고 있는 김형수 SHE 담당을 만나 앞으로 SK하이닉스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ESG TF의 발족은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맞는 ESG 경영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기업가치 2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2위 기업으로서 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에 따라 전사 관점에서 ESG 전략방향을 검토하여 사업 전략과 연계시키고, 다수의 부서간 협업을 조정할 전담 부서의 필요성이 안팎에서 제기된 것이다.
최근 투자자들은 ESG 성과들을 중요한 지표로 보는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ESG가 우수한 기업들이 재무적인 성과도 우수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따라서 회사가 ESG 활동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또는 외부 평가기관들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ESG 평가는 평가기관에 따라 편차를 보이는 이슈가 있다. 평가 기관별로 평가 결과가 정체되어 있거나 일관성이 떨어지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 TSMC의 경우, 친환경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해 국제 기준인 AWS(Alliance for Water Stewardship)¹ 기준을 적용, 수자원 관리 정책 및 조직별 업무분장(R&R, Role and Responsibility)을 재정립했다. 그 결과 반도체 업계 최초로 AWS 플래티넘(Platinum) 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1) AWS: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으로 책임 있는 물 사용을 장려하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주요 기업, 비영리단체, 공공부문 기관 및 학술기관으로 구성된 단체
김형수 담당은 “기업의 ESG 활동을 평가하는 투자기관은 무려 300곳이 넘으며, 모든 기관은 각각 고유의 평가 기준과 지표를 갖고 있다”며 “기업들이 ESG 활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가기관들도 기준의 일관성을 높여나가면 기업의 ESG 경영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SK하이닉스는 그간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대응해 왔고, 전담 조직과 R&R이 분산돼 있었다”며, “ESG 경영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CEO 의사결정으로 전사를 종횡으로 연결하는 TF를 구성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경우 CEO의 주도로 ESG 추진 의지를 직접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 김 담당은 “아마존(Amazon)의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Carbon neutral)² 달성 목표를 선언하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앞장서는 과학자, 환경운동가, 비영리단체 등을 지원하는 ‘베이조스 지구 펀드(Bezos Earth Fund)’를 조성하기 위해 사재도 출연했다”며 “글로벌 기업에 있어 ESG는 이미 CEO 레벨의 어젠더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2) 탄소중립: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 온실가스 감축 및 흡수 활동을 통해 상쇄하여, 실질적인 순(Net) 배출 총량을 ‘0(zero)’로 만드는 것
새롭게 꾸려진 ESG TF는 실질적인 전사 ‘ESG 컨트롤타워(Control Tower)’의 기능을 하게 된다. 김 담당은 “우선 전략적인 관점에서 ‘One Body Single Voice(단일 창구로 일관된 메시지로 대내외 소통)’로 외부에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먼저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활동현황과 평가결과의 차이점을 분석해 전략과제를 도출하고 선제적으로 실행하며 사업조직과의 시너지를 높일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TF는 내년부터 정규조직으로 전환돼 한층 체계적으로 ESG 관련 과제들을 수행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형수 담당은 “아직 ESG라는 개념이 생경한 구성원들이 많다”며 “ESG TF는 앞으로 SK하이닉스가 존경받는 회사, 일하고 싶은 회사가 자리매김하도록 해서 구성원의 행복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ESG는 현시대 경영의 중요한 어젠다인 만큼,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오는 21~23일에는 SK그룹 주요 관계사 CEO들이 모여 경영전략을 논의하는 ‘CEO 세미나’가 열린다. 최태원 회장은 이 자리에서 ESG 가치를 포함한 새로운 경영철학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³’ 방법론을 강조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한 SK그룹 전 관계사는 파이낸셜 스토리 방법론을 바탕으로 ESG 경영을 가속할 예정이다.
3) 파이낸셜 스토리: 회사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DBL 관점에서 풀어낸 회사의 미래 성장 스토리이며, 회사의 지향점을 ESG 전략 방향과 연계하여 재무적 투자자들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방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