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생산직 출신 최초로 박사학위 취득, JLPT 1급, 한국품질명장 그리고 기술명장까지 한 개도 쉽지 않은 타이틀을 모두 가진 분의 첫 마디는 평범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하는 겸손과 그러면서도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고야 만다’는 강단 있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는데요. 끝없이 도전하는 이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었던 NAND PKG 팀 이광호 기정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이광호 기정을 만난 4월의 어느 날은 벚꽃이 SK하이닉스 이천 사업장을 덮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습니다. 근무지는 청주사업장이지만 함께 선정된 기술명장들과 워크숍이 있어 이천 사업장으로 출장 왔다던 이광호 기정은 자그마한 책가방을 둘러맨 영락없는 봄날의 대학생 모습이었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SK 하이닉스 전신인 LG 반도체에 입사를 했습니다. 한 오 년쯤 지났을까? 스스로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구미 전자고등학교 전자과 재학 시절 선생님이 보여준 웨이퍼(wafer 반도체 기판)를 보고 막연히 진로를 정했다는 이광호 기정은 입사 후 ‘모르는 것 투성이’인 환경을 극복하고자 무작정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 중 하나가 일본어 공부입니다. 대부분의 기계 매뉴얼이 일본어로 되어있기에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인데요. 일본어 공부는 JLPT 1급이 되고 나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일본어과로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좋아하기도 했고 환경적으로 일본어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교대 근무를 하면서 어린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수업시간에 졸지만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차에서 쪽잠을 자고 그렇게 회사와 학교를 오갔습니다. 노력의 성과인지 교수님께서 저를 잘 보셨는지 모르지만,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뿌듯했어요.”
사실 교대 근무를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도 아니고 일반대학을 다니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이광호 기정은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는데요. 이는 이광호 기정의 끈기와 열정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저는 항상 초심을 생각했어요. 내가 학교에 들어올 때의 그 절실함을 기억하며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수첩에는 ‘비전(vision), 미션(Mission), 골 (Goal)’이라는 세 단어를 적어놓고 힘들 때마다 보며 스스로를 격려했어요. 석사와 박사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일을 하면서 매주 논문 분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끼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결정했고 제가 정한 목표가 있었기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전(vision), 미션(Mission), 골 (Goal)은 지금도 흐트러지는 저를 잡고 다음을 도전하게 해주는 키워드입니다. “
"제가 지금 가졌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회사와 동료들 덕분입니다."
SK하이닉스는 직원의 자기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다고 근무시간을 입맛대로 바꿀 수 없으며, 피곤하다고 동료들에게 미룰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회사와 동료는 단호하게 이광호 기정을 대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사에서 저를 배려해서 근무를 바꿔주었다거나 동료들이 도와주었다면 오히려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회사나 동료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는 선에서 자기 개발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단기간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석사와 박사를 6년 반 만에 끝낸 이광호 기정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공정간 칩 패드의 산화와 접합력 영향성 확인’이라는 주제로 지난해 반도체 학술대회에 논문을 출품하기도 했는데요. 그의 빛나는 열정과 노력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이광호 기정의 학업, 논문은 항상 그가 일하는 현장과 맥이 통하는데요. 그는 단지 ‘당연히, 열심히 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의 의문이 학업으로 이어지고 문제의 해결 과정이 반도체 학술대회 논문으로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성과는 사내에서도 결실을 보았습니다. 올해 처음 선발된 SK하이닉스 기술명장 18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것이죠.
SK하이닉스는 생산현장의 마스터, 기술명장을 선발하며 SK하이닉스 생산직 직원의 전문성을 높게 인정하고 있는데요. 기술명장은 15년 이상 근속한 생산직 가운데 높은 기술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직원을 명장으로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반도체 관련 자격증, 특허・실용신안등록, 강의활동, 사회봉사 등 여러 분야를 고려하여 선발하는 만큼 기술명장에 선정되면 반도체 생산직 분야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는 인재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명장으로 선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얼떨떨하더라고요.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도 많이 계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도 받고 나니 제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고 ‘내가 일을 잘 해왔구나’라는 마음도 생깁니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물론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어야겠구나’하는 결심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기회로 업무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이광호 기정은 기술명장으로 선발되기까지 동료들의 도움도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가족처럼 팀원을 챙기며 함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 또한 노력하는 만큼 누구나 대우받을 수 있는 근무환경이라 더욱 열심히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런 기업 문화와 배려하는 구성원 덕분에 이광호 기정만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항상 제자리에서 제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와 함께한 지난 21년은 이광호 기정에게 역동적인 시간이었겠지만 회사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입사 후 지금까지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는 이광호 기정은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며 출근을 했고, 출근했음에 감사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 어쩌면 다름과 변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요즘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광호 기정이 가진 그런 마음가짐인 듯합니다.
“다 이루신 것 같은데 앞으로 목표가 남아있으세요?”하는 질문에 이광호 기정은 단호한 어조로 답을 이어나갔습니다. “아직 시작도 못 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늘 배워야 할 것이 있고 문제는 계속 발생합니다. 문제가 없더라도 조금 더 효율적인 것을 찾는 것도 숙제이고요. 현재 생산관리라는 전공을 살려 제 분야의 문제 해결방안을 다룬 책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저의 다음 목표는 바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 기술명장으로 선정되며 책임감이 더 커졌다는 이광호 기정의 꿈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내년에 나올 예정이라는 책을 통해 그의 도전이 또 한 번 멋지게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인터뷰 내내 겸손한 자세를 보였던 이광호 기정!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며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꾸준함과 열정이야말로 그가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SK하이닉스와 함께한 지난 21년보다 앞으로 걸어갈 이광호 기정의 21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