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적인 노사관계는 기업의 성장을 위한 필수요건 중 하나다. 오랜 갈등과 대립으로 경직된 조직문화로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 이런 관점에서 동반자 정신에 기반한 SK하이닉스의 노사관계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구성원 화합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상생으로 이어지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가 30년간 지켜온 ‘무분규 사업장’ 타이틀 역시 주목할 만하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상생과 화합으로 상징되는 노사관계를 유지∙개선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 공동 상설 협의체 ‘노사불이신문화추진협의회(이하 노사불이)’가 있었기 때문. 뉴스룸은 노사불이(勞使不二) 운영을 담당하는 ER운영팀 이상민, 이미숙 TL을 만나 노사불이가 그간 해온 활동들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도 들어봤다.
SK하이닉스가 어려운 시기마다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극복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해외매각 시도, 금융위기 등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위기극복 DNA’로 불리는 하이지니어의 놀라운 단결력이 있었다.
이러한 노사화합의 역사는 노사불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노사불이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기업문화로 정착시키고자 1995년 SK하이닉스 노동조합과 사측이 함께 시작했다. 상당수의 한국 기업들이 노사분규로 시름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SK하이닉스가 대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이러한 노사 공동 상설 협의체를 만든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노사가 함께 만든 협의체인 만큼, 노사불이의 활동에 쓰이는 운영기금 또한 구성원의 끝돈(급여의 마지막 단위인 천원 미만의 금액) 기부와 회사의 후원이 함께 이뤄지는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 방식으로 조성된다. 이렇게 모인 기금은 각종 행사 비용으로도 쓰이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구성원과 가족들을 돕는 성금으로도 활용된다. 단순한 노사 협의체의 역할뿐만 아니라 일종의 두레 공동체와 같은 기능도 수행하고 있는 셈.
운영위원회와 노동조합원들이 직접 만나 함께 여러 행사를 기획하는 노사불이 활동은 그 자체로 회사와 구성원 커뮤니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노사가 정기적으로 만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함께 고민하는 아이디어 회의는 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기간 등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시기에도 노사를 단단히 이어주는 연대의 끈을 만들어 준다.
▲이상민 TL(왼쪽), 이미숙 TL(오른쪽)
노사불이는 단순히 협력적 노사 관계를 구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천캠퍼스 내 모든 구성원들의 행복 증진을 목표로 한다. 노사불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ER운영팀 소속 이상민 TL은 “어제 협상 테이블에서는 노사가 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더라도, 오늘 노사불이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할 때만큼은 한 곳을 바라보는 동료가 된다”며 “어떤 상황에도 대화가 끊기지 않는 소통 채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숙 TL은 “열심히 준비한 행사를 내부 구성원과 가족들이 좋아해 줄 때, 또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지역의 이웃들이 조금 더 행복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사불이의 사업 영역은 크게 구성원 행복 증진을 위한 내부 프로그램과 이천시 취약계층을 돕는 지역사회 공헌활동으로 나뉜다. 구성원 대상 내부 프로그램으로는 야간조 근무자를 위한 간식차 행사 ‘푸드트樂’, 구성원과 가족에게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는 ‘무비데이’, 1인 가구 구성원을 위한 ‘쿠킹클래스’ 등이 정기적으로 진행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역 농가에 방문해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기는 ‘일일 농가체험’ 행사는 자녀를 둔 구성원들 사이에 참여 경쟁이 치열한 대표적인 지역연계 프로그램.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한 노사불이 구성원들이 SK하이닉스의 병설 어린이집으로 찾아가 선물을 증정하는 ‘해피산타’ 이벤트도 진행된다.
풍성한 내부 행사 외에도 많은 SK하이닉스 구성원들이 노사불이를 후원하는 이유가 또 있다. 이천 지역의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노사불이가 정기적으로 추진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노사불이는 설립 직후부터 조손가정 자녀를 위한 교복 및 난방비 지원,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연탄 배달과 김장 행사 등 다양한 지역 밀착형 나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자원봉사 활동도 진행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료현장과 지역 농가를 돕기 위한 다양한 활동도 추진하고 있다. 얼마 전 적십자사와 함께 한 헌혈 캠페인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287명의 구성원이 동참했고, 판로를 잃은 지역 농가의 농산물을 직접 구입해 제작한 ‘집에서 하는 농가체험 키트’는 준비된 300명 분의 수량을 훨씬 웃도는 5,000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노사불이가 적극적으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민 TL은 “노사(勞使)이기 이전에 하나의 기업시민 공동체로서 SK하이닉스 구성원이 공유하는 책임감”을 첫손으로 꼽았다. ‘반도체는 이천의 특산품’이라는 SK하이닉스 광고 카피가 히트 될 정도로, 오늘날의 SK하이닉스가 있기까지 이천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회사가 주체가 되는 사회공헌 활동도 있지만, 모든 구성원이 ‘노사 화합’이라는 정체성 아래 참여하는 노사불이의 봉사활동은 그 의미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 이미숙 TL은 “노사가 함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봉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돈독한 동료애가 생기는 것 같다”며 구성원 사이에 형성되는 좋은 효과를 설명했다.
노사불이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구성원이 점점 늘고 있는 만큼, 운영에 있어 새롭게 고민해야 할 이슈들도 생기고 있다.
이상민 TL은 노사불이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다양한 구성원 간 입장 차이를 조율하는 소통 과정”을 꼽았다. 노사불이 활동에 대한 구성원의 관심이 커지면서 더 다양한 형태의 사업을 제안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늘었기 때문.
이와 관련해 이상민 TL은 “최대한 많은 구성원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고자 노력하지만, 정해진 예산과 인력 상황 때문에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가급적 더 많은 혜택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사회공헌 활동의 재개 방안을 찾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미숙 TL은 “단순한 성금 모금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노사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언택트 방식으로 농가를 도울 방법이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탄생한 ‘집에서 하는 농가체험 키트’처럼, 사회적 거리두기 방식에 걸맞은 노사불이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이상민, 이미숙 TL은 다른 기업들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별한 노사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노사불이가 단순히 기업 내 이해당사자들을 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주변으로 확산하는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노사불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노사불이가 ‘대립’과 ‘갈등’으로만 묘사돼 온 기업의 노사문화에 ‘상생’과 ‘협력’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부여하는 역할 모델로서 기능하길 바라고 있다.
“결국 노사는 한 배를 타고 있는 운명 공동체잖아요. SK하이닉스가 오랜 시간 꽃피워 온 ‘노사불이’ 문화가 하나의 불씨가 되어서 다른 기업들에도 퍼져 나가길 바랍니다. 그렇게 더 많은 노사가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며 시너지를 내는 ‘동반자’의 관계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