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한국 반도체를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내우외환이 늘면서 중국 반도체 굴기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추격속도가 늦어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을 거치며 반도체 국산화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 반도체 양산의 현주소를 점검하여 경쟁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를 알고 나를 안다는 뜻이죠. 흔히 따라붙는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단어까지 더해져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 상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담아 국내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2019년 7월 현재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상황을 짚어봅니다.
▲ SMIC 사옥 전경 (출처: https://www.smics.com/)
우선 중국 내 반도체 제조업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의미 있는 매출을 내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제조업체) SMIC를 살펴보겠습니다. SMIC는 현재 웨이퍼 기준 월 66만6,000장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12인치 웨이퍼가 19만6,000장, 8인치 웨이퍼가 47만 장입니다. 선전과 텐진, 닝보에 8인치 공장이 있으며 베이징 공장에서는 12인치를 생산합니다. 본사가 있는 상하이에선 8인치 22만 장, 12인치 9만 장의 생산능력을 갖췄습니다.
생산능력만 놓고 보면 주목할만하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좀 뒤떨어져 있습니다. 50나노 이상이 74%, 40~45나노가 20%를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28나노 공정을 최근에야 시작했습니다. 전체 생산에서 28나노가 차지하는 비중은 6%입니다.
이는 삼성전자와 TSMC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들에 비해 뒤떨어진 것입니다. 대만 TSMC는 7나노가 전체의 9%이며 10나노 11%, 16~17나노 23% 등의 비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28나노는 20%로 전체의 생산량의 63%가 28나노 이상입니다. SMIC보다 4세대 이상 앞서 있는 것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국내 생산 비중 확대가 절실해진 상황에도 화웨이 등 중국 전자업체들이 TSMC 등 해외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매달리는 이유입니다.
▲ 칭화유니 (출처: http://www.unigroup.com.cn/)
메모리 제조업체 중에 가장 상업 생산에 가까운 업체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칭화유니입니다. 지난해 32단 3D 낸드를 생산하는 데 성공해 곧 상업 생산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칭화유니의 낸드 양산은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뤄질 전망입니다. 3D 낸드의 대세가 64단 이상으로 바뀐 가운데 32단 낸드의 시장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칭화유니의 32단 3D 낸드 라인의 생산능력은 월 5,000장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32단 3D 낸드를 양산해 돈을 벌기보다는 보다 높은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포석 정도의 전략을 세웠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에 따라 칭화유니는 올해 5월 64단 3D 낸드 생산장비를 들여왔습니다. 생산 능력은 월 2만 장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64단 3D 낸드는 중국이 시장에 내놓는 첫 메모리 반도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시기입니다. 양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업체도 장비 설치에 2~3개월, 안정화와 시험생산에 6~8개월이 걸립니다. 칭화유니가 64단 3D 낸드에 처음 도전하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생산 시점은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입니다.
▲ 허페이창신 (출처: https://www.cxmt.com/)
D램에서는 허페이창신이 사실상 유일한 업체로 남았습니다. 양대 D램 업체로 꼽히던 푸젠진화가 마이크론 기술 도용과 관련된 미국의 장비 수출 제한으로 지난해 말부터 제품 개발과 조업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푸젠진화는 파운드리로 전환, 마이크론으로 매각 등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허페이창신 역시 푸젠진화가 직면했던 마이크론 기술 도용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대만 반도체업체 이노테라의 인력 400여 명을 고용해 개발에 나섰던 23나노 D램이 마이크론의 공정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허페이창신은 기술 도용 문제를 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생산라인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확보한 이노테라 인력은 공정 개발 경험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허페이창신은 다음 달 월 1만 장 생산량 규모의 D램 생산설비를 들여올 예정입니다. 새로운 라인이 개발되지 않은 가운데 설비부터 갖추는 셈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설비를 들여올 기회를 잡았기 때문으로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려면 많은 난관이 남아 있습니다. 생산 예상 시점은 빨라야 2021년입니다.
이같은 내용만 놓고 보면 중국 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으로 지리멸렬해 보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국 업체들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가 SK하이닉스의 경쟁상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 그런 미래 자체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생산은 그 자체로 한국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을 떨어뜨릴 것입니다. 그에 따라 수익률도 점차 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중국의 동향을 계속 주시하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