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집에 콕 박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의 신조어)’ 시대가 열린 2020년에는 다양한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재택근무나 원격학습이 보편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
지난해에는 특히 ‘넥슨’, GTA 제작사인 ‘락스타 게임즈’, 사명과 게임명이 동일한 ‘펍지(PUBG)’ 등 대형 제작사가 만든 게임들이 집콕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다. 그 틈바구니에서 놀랍게도 그동안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한 소형 제작사가 만든 모바일 게임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이너슬로스(InnerSloth)가 만든 ‘어몽 어스(Among Us)’가 바로 그 주인공.
그래픽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대형 지식재산권(IP)에 기반한 대작도 아닌데, 어몽 어스는 지난 한 해 어떻게 인기 게임 리스트 상위권에 오래도록 위치할 수 있었을까?
흔히 게임은 하드코어 게임(Hard-core Game)1)과 캐주얼 게임(Casual Game)2)으로 나눈다. 게임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장르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3), 스포츠 게임 등 대부분 하드코어 게임이다. 모바일 게임의 경우 최근에는 하드코어 게임의 비중이 느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는 퍼즐 게임4)과 같은 캐주얼 게임 비중이 높다.
1) 한 번 플레이를 시작하면 게임을 클리어하기까지 복잡한 과정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임
2) 쉽고 간단한 게임 방식과 짧은 플레이 타임으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가볍게 즐기는 게임
3) ‘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약자. 유저가 가상의 세계관 속 캐릭터가 돼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의 게임인 RPG(Role Playing Game)의 일종으로,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플레이어가 동시에 같은 가상의 세계에 참여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4) 테트리스와 같이 간단한 룰과 논리 구조를 가지고 주어진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의 게임
어몽 어스는 하드코어 게임의 동시접속성을 캐주얼 게임에 이식한 게임으로, 그 기저에는 ‘마피아 게임’이라는 훌륭하고 재미있는 오프라인 파티 게임5)이 있다. 특히 단순히 게임 형식을 가져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게임의 인기 요소를 온라인 게임에 이식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다.
5) 끝말잇기나 이미지 게임과 같이, 오프라인에서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즐기는 게임.
어몽 어스의 배경은 우주선이지만, 게임 방법은 기본적으로 마피아 게임과 비슷하다. 어몽 어스에서는 마피아 게임에서 시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크루원(crewmate), 마피아 역할을 하는 사람을 임포스터(impostor)라고 부르지만, 그 개념은 동일하다. 투표로 임포스터를 색출하는 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몽 어스에서는 비디오 게임에서만 구현이 가능한 다양한 효과가 추가돼 크루원들에게 제한을 주고, 임포스터에게는 단순하지만 효과가 큰 능력이 부여된다. 예를 들어 ‘사보타주(Sabotage)’6) 능력으로 지도 안의 문을 닫아버리거나, 원자로에 문제가 생기게 할 수 있다. 산소공급실을 고장 내거나 직접 찔러 크루원을 죽일 수도 있다. 위급할 때는 환기구(Vent)를 타고 도망가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6) 2차 세계 대전 중 점령군의 시설에 대한 파괴 활동에 대해서 붙여진 명칭으로, 일반적으로 전선(戰線)의 배후 또는 점령지역에서 적의 시설에 피해를 주거나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그 효과를 갖는 행위를 가리킨다.
임포스터는 사용자 수에 따라 적정한 비율로 지정되는데, 6명이 게임을 한다면 1명이, 7명 이상이면 2명이 지정되는 식이다. 크루원들의 무기는 머릿수와 투표권이다. 게임 도중 임포스터가 죽인 시체가 발견되면 회의를 소집해, 의심되는 한 명을 지정해 우주선밖으로 던질 수 있다. 올바르게 추측했다면 크루원이 승리하지만, 만약 계속 잘못 추측해 임포스터와 크루원 수가 같아지면 임포스터가 승리한다.
어몽 어스는 인디 게임7)으로 시작해 엄청난 인기를 끈 지금까지도 인디 게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특이한 게임이다. 안드로이드나 iOS용으로 제작되는 모바일 게임은 그 특성상 퍼블리셔(Publisher)8)가 없어도 게임을 발매할 수 있어, 인디 게임사도 비교적 쉽게 게임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
7) 주로 대형 기획사나 게임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제작하고 펀딩하는 게임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
8) 게임 개발사에게서 게임을 받아 게임을 발매하고 유통하는 기업. 통상 게임 업계에서는 게임 개발과 업데이트는 개발사가 맡고 제외한 시장 분석, 게임 홍보, 서버 관리, 유저 관리 등 게임 서비스에 관련된 사항은 퍼블리셔가 맡는 형태로 비즈니스가 이뤄지고, 수익은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나눠 갖는다. 국내에서는 카카오 게임즈, 해외에서는 텐센트 등이 대표적인 퍼블리셔로 꼽힌다.
▲ ‘어몽 어스’ 개발사 이너슬로스(Innersloth) 공식 홈페이지(http://innersloth.com/) 메인 화면 캡처
어몽 어스의 제작사인 이너슬로스는 인디 게임사로 시작해 2015년부터 지금까지 총 3개 게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운영하는 게임 수도 적지만 회사 규모는 깜짝 놀랄만한 수준이다. 워싱턴 D.C. 레드먼드에 위치한 이너슬로스의 인원은 2018년 어몽 어스 출시 시점에 단 세 명에 불과했다. 이중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는 단 한 명뿐이며, 나머지 두 명은 게임 디자이너와 아트워크(Art Work)를 담당한다. 대형 제작사에서는 프로그래머만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이 근무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인원이다.9)
9) 이너슬로스는 어몽 어스가 인기를 얻은 뒤인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겨우 인력 한 명을 더 추가했다. 새로 추가된 인원의 역할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게임이 단 세 명만으로 운영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게임을 쉽고 단순한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밸런스,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모두 흥미롭게 가다듬었다. 우선 임포스터나 크루원이 너무 압도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승패의 밸런스를 잘 맞춰 놓았다. 또한, 개발과 운영이 쉽도록 심플한 그래픽으로 처리했고, 인터페이스도 단순하게 처리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게임의 형식 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3D 그래픽으로 만들면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입력마다 서버에 정보가 전송돼 서버에 부하를 줄 수 있는데, 최대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단순화해 서버와 엣지 디바이스(사용자의 스마트폰)를 오가는 데이터 역시 다른 게임보다 적다.
퍼블리셔를 활용하지 않는 선택도 세 명만으로 게임을 운영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너슬로스는 안드로이드, iOS, PC, 스위치 콘솔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별도의 퍼블리셔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스팀, 닌텐도e스토어 등 이미 알려진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 명이 운영할 수 있는 것과 이 게임의 인기 비결은 별도의 이야기다. 이 게임이 인기를 끈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영향이 적용했다.
어몽 어스는 2018년 출시해 2020년 히트한 중고 신인 게임이다. 출시 초기에도 조금씩 주목을 받았는데, 이유는 게임 스트리머들이 스팀에서 게임을 발굴해내 방송하기 좋은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Steam)은 인기 게임 외에도 다양한 인디 게임을 발행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스트리머들은 스팀 안에서 인디 게임을 발굴해 자신의 유튜브나 트위치에서 방송을 하고, 이를 통해 인디 게임이 인기 게임이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어몽 어스는 스트리머들이 상대와 소통하며 방송하기에 적합한 소통형 파티 게임이었다. 출시 초반에는 게임 크리에이터의 방송 시청자들에게 반응을 얻었고, 점차 인기를 늘려가다 코로나 19가 창궐한 이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초창기 인기 게임 스트리머들이 주로 모장 스튜디오(Mojang Studio)의 ‘마인크래프트’를 했던 것처럼, 사용자끼리 소통하며 게임하는 것은 좋은 스트리밍 주제 중 하나다.
모바일 게임 대부분은 전투 방식의 핵앤슬래시(Hack and Slash)10) 혹은 퍼즐 게임이다. 게임을 가볍게 즐기는 사람들이 접근하기엔 어렵거나 지루한 게임이 많았다. MMORPG나 AOS11) 게임은 조금 어렵고, 퍼즐 게임은 모바일에 적합하지만 혼자 해야 할 뿐 아니라 현금 결제 유도가 많은 단점도 있다. 이런 모바일 게임 시장의 특성을 읽고, 기존에는 없던 게임 방식으로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준 게임이 어몽 어스였다.
10) RPG의 하위 장르로, 디아블로 시리즈와 같이 스토리보다는 다수의 적과 싸우는 전투에 집중하는 게임 장르를 말한다.
11) ‘Aeon of Strife’의 약자. 유저 제작 변형(Game Modification) 방식을 통해 RPG,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대표적인 게임으로 꼽힌다) 등의 요소를 복합적으로 결합한 온라인 게임을 말한다.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의 ‘리그 오브 레전드(LoL)’가 대표적인 게임으로 꼽힌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에는 많은 사용자들이 집콕 시대에 접어들며 게임을 친구를 만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몽 어스는 금방 배울 수 있고 접속도 쉬운데 재미도 있다. 게임을 많이 조작하지 않아도 속고 속이는 심리전을 하다 보면 손에서 땀이 흐른다. 임포스터에게 죽은 이후에도 미니 게임과 미션을 수행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한글 서비스를 지원해 언어 문제도 없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의 안부를 물으며 게임하기에도 좋다. 익숙한 마피아 게임의 룰을 따르기 때문에 게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여러모로 따져봤을 때 온라인 파티 게임으로 적합하다.
게임의 가격이 매우 저렴한 것도 강점이다. 스마트폰에서는 무료로 즐길 수 있으며, PC용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이나 콘솔 게임 플랫폼인 닌텐도 스위치 등에서는 구매 시 5,500원을 받고 있다. PC에서도 무료로 즐기고 싶다면 블루스택12)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즉, 원한다면 얼마든지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12) 모바일 앱을 PC에서도 최적화된 형태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클라우드 기반 앱 플레이 플랫폼 서비스
유일하게 어려운 점이라면, 타이핑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이 자신을 변론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지인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때는 주로 디스코드(Discord)13) 등 음성 채팅 앱을 동시에 실행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게임을 플레이하기도 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스마트폰의 램 소모가 심한 문제가 있으나 게임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어몽 어스 내에서 자체 음성 채팅 기능이 실행된다면 더 좋겠지만, 이너슬로스에게 그럴 여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13) 앱을 실행해 채팅 채널을 만들고, 그 채널에 접속하면 마이크와 헤드셋을 이용해 음성으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음성 채팅 앱. MMORPG나 AOS와 같은 게임 장르에서 게이머들끼리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서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마침내 어몽 어스는 2020년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로 등극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말 게임 시상식인 ‘더 게임 어워드 2020(The Game Awards 2020)’에서 어몽 어스는 ‘베스트 멀티플레이어 게임’과 ‘베스트 모바일 게임’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14) 다른 게임 부문들의 수상작이 대부분 대형 기획사나 제작사의 게임임을 감안하면 큰 성과다.
14) http://gamefocus.co.kr/detail.php?number=112500
또한, 어몽 어스는 전 세계에서 1억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했고 현재도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일간 사용자 수는 50만 명 이상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15) 시간당 접속자 수는 7만 명~11만 명을 기록 중이다.16) 사용자 분포도 역시 주목할 만하다. 빅데이터 조사기관 ‘모바일 인덱스’ 자료에 따르면, 10대에서 30대까지의 사용자 비율은 비슷하고 40대 사용자가 가장 많다. 또한, 이용자 성비도 남성 48.01% 여성 51.99%로 균형 있는 편이다.17)
15) http://www.news2day.co.kr/161768
16)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3259.html
17) http://www.news2day.co.kr/161768
또한, 유명인들도 활발하게 어몽 어스를 활용하고 있다. ‘인싸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 미국 연방하원의원은 지난해 10월 투표 독려 차원에서 유저들과 함께 어몽 어스를 플레이했으며, 트위치에서 진행된 라이브 스트리밍은 최대 43만 9,000명의 시청자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트위치 최대 기록(약 63만 명)에 근접하는 수치다.
국내에서는 tvN ‘유퀴즈 온더 블록’ 프로그램에서 전 세계를 대표하는 프로게이머 ‘페이커’ 이상혁 씨가 어몽 어스를 즐긴다고 이야기해 화제가 된 바 있다.18) SKT T1 소속인 이상혁 씨는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신으로 불리지만 어몽 어스는 잘 못 하는 편이라고 한다.
18) enews.imbc.com/News/RetrieveNewsInfo/293837
어몽 어스는 진입 장벽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고 조작의 숙련도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한, 대화가 중요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집콕 시대에 가장 적합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서비스 업데이트 역시 매우 빠르고 적절하다. 사용자 피드백에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다. 사용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낸 술래잡기 콘텐츠가 어몽 어스 내에서 유행하자, 이를 정식 기능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피드백 반영을 통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너슬로스와 비슷한 소규모 개발사들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도 남겨져 있다. 음성 채팅을 별개의 서비스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인디 게임에서 공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한계점. 이는 어몽 어스에서조차 유저 유입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드코어 게임을 주로 즐기는 사람들은 별도의 음성 채팅 앱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만, 음성 채팅 앱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
보안 문제와 서버 문제도 주기적으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어몽 어스도 최근 스팸 메시지 공격에 시달린 바 있으며, 접속이 느린 문제로 인해 캐릭터가 순간이동하는 등의 이슈도 있었다. 이에 이너슬로스는 서버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소규모 제작사가 여러 변수에 적절하게 대처하며 인기 게임의 위상을 지켜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너슬로스는 비교적 큰 실수 없이 해나가고 있지만, 이는 이너슬로스를 포함한 소규모 제작사들이 앞으로도 계속 풀어야 나가야 할 숙제인 것은 분명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