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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 팹리스 산업의 괄목상대(刮目相對)

Written by 노경목 기자 | 2018. 6. 19 오전 12:00:00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대한다는 뜻으로, 상대의 학식이나 재주가 갑자기 몰라볼 정도로 나아졌음을 의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지난달 칼럼에서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 역량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된 부분을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한 중국 반도체 산업 분야를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Fabless) 산업’입니다.

中, 세계 팹리스 시장 점유율 11% 달성

팹리스는 말 그대로 공장(Fab)이 없는 반도체 산업 영역으로, 설계된 반도체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파운드리에 위탁해 제품을 생산합니다. 공장 설비도 없는 산업이니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져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통신용 칩을 장악하고 있는 퀄컴, 아이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만드는 애플도 팹리스 산업의 일부입니다.

이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의 성장이 눈부십니다. 한국 업체들은 따돌린 지 오래입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1%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5%에서 2배 이상 성장한 것입니다. 세계 50대 팹리스에도 하이실리콘, 스프레드트럼 등 11개 중국 업체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한국 팹리스의 비중은 1% 미만, 50대 팹리스에 이름을 올린 곳도 LG그룹 계열인 실리콘웍스가 유일합니다. 실리콘웍스의 지난해 매출은 6927억 원. 중국 1위 하이실리콘의 매출이 3조 원, 2위 스프레드트럼이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적습니다. 뿐만 아니라 1300개를 돌파한 중국 팹리스 업체 숫자는 한국의 10배에 달합니다.

中 팹리스 산업의 빠른 성장세, 과연 그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이 팹리스에서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파운드리 등 다른 반도체 산업은 생산역량이 중요한데 반해, 팹리스는 설계자의 역량이 중요한 사업입니다. 즉 다른 반도체 산업은 설비를 갖추는데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은 물론, 각 생산 단계마다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반면 팹리스는 우수한 인재와 시스템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빛을 볼 수 있습니다.

2016년 창업한 중국 캄브리콘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기업 이력이나 규모로는 아직 스타트업에 불과하지만 ‘1조 원 이상의 기업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중국의 엔비디아 (세계 최대 인공지능(AI)용 프로세서 업체)’로 불리고 있습니다. 성능이 좋으면서도 사용전력은 적은 AI 칩을 내놓은 데 따른 결과입니다. 여기서 개발한 AI 칩은 이미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캄브리콘의 성장에는 공동 창업자인 천윈지(35), 천텐스(33) 형제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중국과학기술대학교 소년반에 입학해 중국과학원에 들어간 수재입니다. 팹리스는 능력 있는 기술자나 학자가 빠르게 실적을 거둘 수 있는 분야임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팹리스 역량 확대에 집중하는 중국 정부와 기업들

팹리스 성장에 고무된 중국 정부도 관련 지원을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부터 중국 정부가 팹리스 육성에 대한 정책자금 집행을 한층 더 늘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미국의 견제로 해외 반도체 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이 어려워지면서 관련 금액을 팹리스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3년여 동안 전체 반도체 투자에서 17%를 차지했던 중국 정부의 팹리스 관련 투자는 앞으로 25%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중국 주요 기업들의 팹리스 역량 확대도 주목할 만합니다. 스마트폰에 자체 모바일 AP ‘기린’을 탑재하고 있는 화웨이는 관련 기술력을 계속 높이고 있습니다. 샤오미 역시 최근 리드코어테크놀로지를 인수해 자체 AP 개발에 나섰습니다. 전자제품 사업이 거의 없는 알리바바도 중텐마이크로시스템을 인수하며 AI 전용칩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 쌓아온 AI 관련 기술력을 칩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입니다. 세계 최대 전기차업체인 비야디(BYD) 역시 배터리 등의 제어와 관련된 전력반도체 설계 팹리스 역량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전력반도체는 수입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팹리스 산업은 영세한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다양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하면 적극적인 분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