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공정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처리·분석 과정을 효율화하고, 이를 통해 현장의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상황. 이를 위해 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생산 현장의 데이터 관리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앞장서서 이런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원(이하 KAIST)과 손잡고 인공지능협력센터(AI Collaboration Center, 이하 AICC)를 구축한 데 이어, 최근 포항공과대학교(이하 포항공대), 서울대학교(이하 서울대)에 신규 AICC를 구축한 것.
뉴스룸은 지난달 23일 포항공대, 24일 서울대에서 각각 진행된 신규 AICC 개소식 현장을 찾아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SK하이닉스가 지금까지 얻은 성과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계획도 함께 들어봤다.
▲ 포항공과대학교 AICC 개소식
먼저 지난달 23일 포항공대 인공지능 대학원에서, AICC 개소식이 진행됐다. 이날 개소식에는 SK하이닉스 DT(Digital Transformation) 담당 구성원들과 포항공대 교수진이 한데 모여 공식적으로 AICC 개소를 알렸다. 서영주 포항공대 인공지능 대학원장은 “현장의 무수한 데이터를 교류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우수한 인재들이 반도체 산업의 트렌드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 서울대학교 AICC 개소식
다음날인 24일에는 서울대학교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에서 SK하이닉스와 서울대의 AI Open Collaboration 협약식과 AICC 개소식이 함께 진행됐다. 이날 SK하이닉스 구성원들과 교수진은 AICC를 둘러보며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공유했다. 차상균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장은 “이번 산학 협력은 기업이 현장의 실데이터를 대학과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의미가 깊다”며 “서울대에서 나온 연구 결과물이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번에 구축한 AICC가 대학과 SK하이닉스의 AI 기술 역량 강화에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대학에 제공한 현장의 데이터가 대학의 AI 기술 연구개발과 양질의 AI 인재 양성에 기여해, 궁극적으로는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기대다.
▲ 김성재 PL
SK하이닉스 김성재 PL은 “실데이터를 교류하는 일이 쉽지 않았었는데, 데이터를 제공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산학 협력의 형태를 갖출 수 있게 됐다”며 “회사 내부적으로도 AI 기술 역량 강화를 꾸준히 노력할 것이며,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함께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대학 간 AI Open Collaboration의 핵심은 현장의 실데이터를 대학과 공유하는 것. 하지만 실데이터를 외부에 공유하는 것은 보안 문제와 직결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이처럼 AI Open Collaboration 범위를 확대한 것은 기존 KAIST와의 AICC 공동 운영을 통해 AI 기술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산학협력 강화’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
▲ 홍남식 TL
특히 SK하이닉스는 지난 1년간 KAIST와의 협업을 통해 현장의 난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다수 확보했다. AI Open Collaboration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홍남식 TL은 “AI 전문가의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현장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며 “구성원들이 더 넓은 시야를 탑재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공동 연구 과제 수행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AICC가 AI 인재들을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도 KAIST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얻은 수확이다. KAIST 학생들이 AI Open Collaboration에 참여, 현장의 실데이터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한 결과, 그중 다수가 국제 논문 저널에 게재되는 성과를 이끌어낸 것.
이처럼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여러모로 긍정적인 방향을 엿본 SK하이닉스는 이번 포항공대, 서울대와의 AI Open Collaboration 과정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아쉬웠던 점을 보완해 신규 AICC에 적용했다.
먼저 연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AI 연구 산출물들을 관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AI 연구 산출물들은 구체적인 소스 코드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딥러닝(Deep Learning)처럼 명확한 아웃풋(Output)이 존재해, 연구가 진행될수록 산출물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서 이번 AICC를 구축할 때는 새롭게 소프트웨어를 개발, 탑재했으며, 연구의 첫 단계부터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연구 주제도 다양해졌다. 기존에는 데이터 사이언스 중심의 과제와 R&D(Research and Development) 성격의 연구를 수렴해, 연구 결과를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AI Open Collaboration에서는 수율 확보, 장비 이상징후 파악 등과 같은 현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 과제들이 새롭게 선정됐다. 과제 수도 기존 6개에서 총 22개로 늘었다.
마지막으로 실데이터 공유에 대한 보안 체계를 강화했다. 현장의 실데이터는 AI 클러스터를 통해 AICC에 전달되는데, AI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의 시스템과 분리돼 운영이 되고 있다. 이 시스템에 보안체계를 강화하는 요소를 탑재 시켜 데이터 유출의 작은 위험성조차 없앴다.
실제 연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포항공대 서영주 인공지능 대학원장과 서울대 차상균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포항공대 서영주 인공지능 대학원장
Q. SK하이닉스와 AI Open Collaboration을 체결하게 된 배경은?
AI Open Collaboration을 체결하기 전에도 포항공대는 SK하이닉스와 AI 분야에서 협력하는 관계였다. 구성원 대상 교육 프로그램인 ‘머신러닝 챔피언 양성과정’을 함께 만들었고, 지금도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번 AI Open Collaboration은 더 효과적으로 AI 인재 육성을 하기 위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실데이터를 활용해 더 수준 높은 연구를 해보자는 의지가 이끌어낸 결과물이다.
Q.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AI 알고리즘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라인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이미 학습된 불량 웨이퍼의 이미지를 AI가 미리 판별한다면, 테스트 공정이 들어가기 전부터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장비의 상태를 AI가 파악하고 있다면, 고장에 대한 예방이 가능하다. 앞으로도 AI가 반도체 생산성 향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Q. 포항공대 AICC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소개해달라.
포항공대 AICC에서는 반도체 산업 현장에 필요한 AI 기술에 대해 크게 여섯 가지의 과제를 선정해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는 결함 분석(Defect Analysis)을 통한 계측 데이터 예측, AI 기반 최적 공정 경로 탐색, 딥러닝 기반 FDC(반도체 빅데이터의 일환) 분석 후 패턴 확보 등 연구 과제가 있다. 연구성과를 현업에 바로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최적의 솔루션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Q.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포항공대는 어떠한 이점을 가질 수 있나?
데이터는 원유, 인공지능은 휘발유로 비유할 수 있다. 고품질의 휘발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순도 높은 원유가 필요하듯, 대학에서 효율적인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실제 현장에서 도출된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연구에 활용하기 힘들었던 실데이터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이점이다. 또한 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듯이, 데이터 연구를 통해 탄생한 인공지능은 제조 현장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대학과 SK하이닉스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된 것 역시 AI Open Collaboration으로 포항공대가 얻을 수 있는 큰 수확이다.
Q. AI Open Collaboration의 향후 계획은?
교수진은 SK하이닉스와 함께 꾸준한 피드백을 거쳐 여섯 가지의 연구에서 모두 굵직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한, 자체적으로도 반도체 산업 내에 필요한 연구 주제를 찾을 계획이다. SK하이닉스와 포항공대가 그간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공고히 다져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 서울대 차상균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장
Q. SK하이닉스와 AI Open Collaboration을 체결하게 된 배경은?
오래 전부터 AI 발전을 위해서는 산업 현장의 실데이터를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 기관과 기업을 만나며 이를 강조했지만, 보안상의 문제로 추진되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기업과 달리 SK하이닉스는 실데이터 기반 연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사안을 협의하는 것이 숙제였는데, 지난해 AI 국제 컨퍼런스에서 만나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AI Open Collaboration을 추진하게 됐다.
Q.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AI 알고리즘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반도체 생산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다. 반도체는 수많은 공정 끝에 탄생하며, 복잡한 시스템 안에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녹아 있다. 하지만 공정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AI가 생산 과정에 탑재된다면 사람들이 놓친 부분을 간파할 수 있고, 생산 환경 역시 지금보다 예측 가능한 환경으로 바꿀 수 있다.
Q. 서울대 AICC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소개해달라.
반도체 생산 과정의 근본적인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 가지의 과제를 선정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공정 장비(CD-SEM) 측정 환경 개선 알고리즘 개발, 딥러닝 기반 웨이퍼 이상 탐지 및 수율 향상 시스템 구축, 데이터 분류의 정확도 향상 등 연구가 수행될 예정이다. 양질의 결과물을 도출해내서, 반도체 산업에 혁신을 가져오기를 바라고 있다.
Q. AI Open Collaboration을 통해 서울대는 어떠한 이점을 가질 수 있나?
반도체 현장의 실데이터는 보안상의 문제로 쉽게 공유받을 수 없다. 하지만 실데이터를 통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기존 연구 결과물보다 더 유의미한 결과물을 낼 수 있다. 특히 실데이터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면 반도체 산업 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 연구를 바탕으로 서울대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교수진과 학생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Q. AI Open Collaboration의 향후 계획은?
단기적으로는 열 가지의 과제가 좋은 결과물이 낼 수 있도록 신경 쓸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AICC를 통해 서울대가 데이터 사이언스의 허브 역할을 하길 꿈꾸고 있다. 서울대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 유수 대학과의 네트워크를 SK하이닉스와 연결한다면 더 넓은 시야에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