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반도체 칩. 여기에는 머리카락의 1/1000 크기의 수십억 개 트랜지스터가 손톱만 한 기판에 집적되어 있는 첨단 기술이 숨어 있는데요. 이렇듯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칩의 원가가 변화하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술의 혜택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반도체 기술이 발달할수록 전자기기 등의 원가도 낮아진다는 것인데요.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변화하는 반도체 원가가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편리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부터 영하이라이터와 함께 그 이유를 파헤쳐보겠습니다.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칩인만큼 초기 등장 시 그 원가도 비쌌는데요. 1990년대 초만 해도 반도체 칩의 가격은 같은 중량의 금 가격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D램의 가격은 이후부터 꾸준히 떨어지기 시작해 2004년에는 DDR 512MB이 11만 5천 원이었다가 12년이 지난 현재는 DDR3 2GB이 1만 원에 판매될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또, DDR2 2Gb의 현물 가격은 1천 원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 DDR3 2Gb 현물 가격 출처: 디램 익스체인지
사실 이러한 D램 원가의 변화는 2014년 말부터 급격하게 진행됐습니다. 장장 19개월 동안 연속적으로 이루어졌죠. 글로벌 D램 가격 동향 사이트인 ‘D램 익스체인지’에서는 지난 5월 기준 DDR3의 평균 판매 원가를 1.25달러(한화 약 1,500원), DDR4의 평균 판매 원가를 1.31달러(한화 약 1,600원)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D램의 가격이 변동했던 것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여기서 잠깐! GB(GIGA byte)와 Gb(GIGA bit)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메모리 반도체 칩은 bit가 아니라 Byte 단위로 되어 있는데, 8bit가 1Byte와 같습니다. 즉, 1bit의 반도체 칩이 8개 꽂혀 있는 D램이 1Byte가 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D램에는 1bit의 반도체 칩이 8개 꽂혀 있기 때문에 DDR 2GB의 가격이 DDR3 2Gb 칩의 8배 + α (기판 등 기타 가격)가 되는 것입니다.
반도체 칩의 원가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에는 반도체 칩 집적도와 공정 기술, 반도체 수율, 공정 시간, 생산 장비까지 총 4가지의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요인이 어떻게 반도체 원가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이 크기 2x2, 5x5, 10x10, 20x20
반도체를 만들 때 가장 흔히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는가’입니다. 이것이 바로 집적도인데요, 1개의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IC 칩이 100개라고 가정했을 때, 미세공정을 활용하면 200개를 만들 수 있으니 생산 원가가 절반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같은 가격으로 2배의 양을 생산했으니 반도체 가격도 그만큼 낮아질 수 있게 되죠, 이처럼 집적도는 반도체 생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지난 50여 년간 무어의 법칙을 따라 끊임없는 회로 선폭의 미세화가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반도체의 크기를 줄여 현재 생산되는 1g의 초소형 반도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집적도가 높아지니 같은 재료 비용으로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죠.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이 크기 2x2, 5x5, 10x10, 20x20
이처럼 반도체 생산에서의 집적도를 높이는 데에는 빠르게 발전한 공정 기술이 많은 기여를 했는데요, 특히 반도체 패턴의 미세화 기술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는 반도체 공정 기술 중 ‘노광 기술’에 사용되는 ‘광원’의 발달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정의 초기에는 300~500nm 파장 대의 수은 램프로 만들어진 레이저 광원 G, I, H 라인을 사용하다가 이후 반도체의 선폭을 더욱 미세화하기 위해 248nm의 KrF, 193nm의 ArF처럼 더 짧은 파장의 영역 대를 가지는 광원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13.5nm의 파장을 가진 EUV(Extreme Ultraviolet)를 광원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웨이퍼에 있는 IC 칩에 회로를 새기는 레이저의 파장 크기를 미세하게 만들면서 반도체를 더욱 잘게 쪼개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광 근접 보정(OPC, Optical Proximity Correction)’ 등 미세화 공정이 더욱 정밀화되면서 반도체의 집적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개의 웨이퍼에서 더욱 많은 양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반도체의 원가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의 반도체 공정 기술 혁신으로는 3D 낸드 플래시의 개발을 꼽을 수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자랑하는 3D 낸드 플래시는 TSV(Through Silicon Via, 실리콘 관통 전극, 메모리 칩을 적층해 대용량을 구현하는 기술)를 이용하여 평면 2차원 구조였던 반도체를 3차원 구조의 아파트처럼 쌓아 올린 메모리인데요, 이러한 구조적 혁신을 통해 반도체의 집적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술의 개발로 전력 소모가 효율적이고 발열량은 낮으며 용량은 몇십 배 높은 반도체 구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반도체의 원가는 또 한 번 낮아지게 됩니다.
반도체를 집적시키는 원판, 즉 실리콘 웨이퍼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공정도 반도체 원가를 낮추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웨이퍼가 커지면 같은 공정 횟수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양이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100nm였던 웨이퍼의 지름은 300nm까지 늘어났다가 현재는 450nm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150nm에서 200nm로 늘어났을 때, 또 200nm에서 300nm로 늘어났을 때 각각 25~30%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하네요.
★ 여기서 잠깐! 용어에 대해 알아볼까요?
1. 노광 기술 반도체 칩을 만들 때 기판 위에 회로의 패턴을 그리는 기술입니다. 이 노광 기술이 정밀해야 더욱 미세한 회로를 만들어 집적도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2. 광 근접 보정(OPC, Optical Proximity Correction) 웨이퍼에 회로를 그릴 때 실제 드로잉과 같은 패턴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설계 데이터 베이스에 보정하는 작업입니다. IC 칩에 회로를 그릴 때 정확도가 향상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반도체 수율이란 재료 투입량에 대비한 완성품의 비율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100개의 재료를 투입했을 때 80개의 양품(정상 제품)이 생산되었다면 수율은 80%, 불량률은 20%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공정 과정에서 불안정한 요소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좋은 기술을 사용해 수율(양품의 비율)을 높이면 자연히 생산량은 많아지고 원가는 줄어들게 됩니다.
▲ 반도체 수율 표기 출처: fool.com
수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반도체의 미세화 공정 발달과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면, 불안정한 결점인 defect가 생기는 위치와 개수는 똑같다 하더라도 미세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양품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재의 수십 nm의 초미세화 공정 기술은 수율을 많이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같은 공정 안에서 더 많은 제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되어 자연히 원가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알아볼 요인은 공정 시간입니다. 공정 시간 또한 반도체의 원가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공정 시간을 단축한다는 것은 동일한 시간 동안 더 많은 반도체 칩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반도체 원가도 그만큼 저렴해지겠지요?
반도체 회사가 많이 이야기하는 ‘TAT(Turn Around Time)’는 실리콘 웨이퍼가 공정 과정을 거쳐 반도체 칩의 형태로 나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데요, 이 TAT를 줄이는 것이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의 큰 목표 중 하나입니다. 반도체 생산 및 측정 과정 등을 빠르고 정밀하게 진행하기 위해 좋은 장비를 사용하며, 공정을 단순화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EUV 노광 장비 출처: DE INGENIEUR 홈페이지
반도체를 생산하는 장비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수백억 원을 호가한다고 하니,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최신 기술 중 하나인 EUV를 이용한 노광 장비는 무려 1~2천억 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반도체 생산 장비가 비싼데도 불구하고 생산 원가는 낮아진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규모의 경제’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큰 규모의 반도체 회사들은 최신 장비를 이용해 경쟁력 있는 반도체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싼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품질 높은 반도체를 대량 생산해낼 수 있으니, 원가를 낮춰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또, 수많은 반도체 칩을 한꺼번에 거래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경쟁력 높은 기업의 제품은 판매가 수월해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덕분에 최신 생산 장비에 고비용을 투자할 수 있게 되고 품질 좋은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반도체 칩의 원가가 변화한 또 다른 이유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1995년도에 등장한 PC 운영체제인 윈도우 95의 파급효과로 반도체의 수요 증가를 예측한 반도체 회사들이 엄청난 양의 반도체를 생산했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측과는 다르게 반도체의 수요는 크게 늘지 않았는데요, 이에 따라 반도체 원가 하락 현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요는 일정한데 공급이 과잉되는 경우에 물건의 가격이 내려가게 되는데요, 현재도 중국을 필두로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수요가 늘지 않아 원가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90년대 PC 광고
1990년대에는 PC의 가격이 2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노트북의 가격은 무려 350만 원을 훌쩍 넘었는데요. 2000년대 초반에는 64MB 용량의 MP3가 20만 원 대, 2백만 화소의 디지털카메라가 50만 원 대에 팔리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몇 백 배나 향상된 기능의 전자 제품을 1/3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전자제품 가격의 하락은 1인 1디바이스가 아니라 1인 멀티 디바이스가 가능한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 최근 보편화 된 대표적인 IT 기기들
이렇듯 1인 멀티 디바이스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다양한 IT 기기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는데요. 디지털카메라나 노트북,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편리하게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밴드, 실시간 도로 교통 상황에 따라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과 같은 제품들이 등장했습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기기들의 원가가 높아 일반인들이 쉽게 구매할 수 없었지만, 반도체 원가가 변화함에 따라 누구나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죠.
▲ 과거 128MB 용량으로 출시되었던 아이리버 MP3
지금은 MP3 기능은 물론 카메라와 인터넷 이용까지 하나의 디바이스로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예전 PC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최신 기술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게 된 데에는 반도체 원가 하락에 따른 전자제품의 원가 하락이 큰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반도체 생산 기술이 발달하면서 반도체는 작아지고, 그만큼 가격도 저렴해지면서 우리의 생활은 오늘도 조금씩 더 편리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도체 원가가 하락하면 우리의 생활도 점점 더 편리해진다는 사실, 이제 아시겠죠? 지금까지 수많은 반도체 연구 개발자와 엔지니어들의 노력 덕분에 이런 빠른 발전이 가능했는데요, 앞으로는 또 어떤 기술이 삶을 더 행복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줄지 궁금해지네요. 우리의 미래를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줄 작은 반도체 칩에 담긴 가치가 빛을 발하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