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은 기업의 연구개발(R&D), 제조, 영업 등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를 이용한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제 기업이 사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경험과 역량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화된 정보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SK하이닉스의 핵심 사업영역 중 하나인 DRAM 분야에서는 높은 성능과 대용량을 원하는 고객의 요구 수준에 부응하기 위해 공정을 미세화하고 다양한 요소기술을 접목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문제는 이로 인해 제품 개발 난도와 복잡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인력과 개발 기간이 필요해져, 기존의 개발 체계로는 대응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하 일.방.혁) 없이는 가까운 미래에 제품 경쟁력 상실이라는 한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DRAM설계 담당에서는 발생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방.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방향성은 단순하고 반복해야 하는 일은 시스템이 처리하도록 하고 사람은 전략적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제품의 성능과 품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DRAM 설계 과정에서는 제품의 요구사항에 부합하는 회로 설계 등의 작업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는 검증 환경을 구축해 설계된 회로를 검증하고 이를 통해 스펙(Spec.)과 실제 사용환경을 기준으로 제품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검증 결과는 시스템상에서 Pass/Fail 여부를 명확히 판정할 수 있는 항목과 Pass/Fail 여부를 판정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해 시스템상에서는 판정이 불가능한 항목으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항목은 개인의 경험이나 역량을 통한 판단해야 하는 항목들로, 대표적인 예로는 신호 구동력, 신호 편차, 신호 간섭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항목들은 성능, 품질, 원가 등에서 트레이드 오프(Trade Off)1) 관계가 성립해, 엔지니어의 주관적 판단이 제품 품질 편차를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돼왔다.
1) Trade Off: 두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하려고 하면 다른 목표의 달성이 늦어지거나 희생되는 관계.
올해 DRAM설계 담당에서는 이처럼 판정 불가능한 항목의 최소 기준을 높이고 이를 사전에 관리하기 위해 일.방.혁의 일환으로 ‘품질 설계’를 추진했다. 품질 설계의 목표는 그동안 시스템상으로 판정이 불가능했던 항목들에 대해 세부적인 판정 기준(규약)을 전 구성원이 합의하고, 이를 명확화, 정량화함으로써 시스템상에서도 Pass/Fail 여부를 판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판정 불가능한 항목의 품질 규약을 도출하고, 도출된 품질 규약의 판정 기준을 정립했다. 이후 이렇게 합의된 규약을 시스템화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판정 불가능한 항목의 품질 규약은 세부적으로 △잠재 불량 제거 규약 △제품 성능 최적화 규약 △설계 품질 편차 제거 규약으로 구성돼 있다. DRAM설계 담당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총 80건의 품질 설계 규약 항목을 도출했고, 하반기에도 신규 규약을 지속적으로 도출하면서 DRAM설계 담당만의 품질 문화를 만들어갈 방침이다.
이렇게 도출된 품질 규약 80건에 대해서는 판정 기준이 되는 최소 기준, 적정 산포 기준2), 이상치 기준 등을 각각 정의하고, Pass/Fail 판정의 기준점을 정량화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경험적인 판단으로 이뤄졌던 업무들을 객관화했고, 정의된 최소 기준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면서 제품의 강건성(强健性)을 확보하는 작업도 수행할 예정이다.
2) 산포가 넓을수록 불량 가능성이 증가해, 산포가 적정 수준을 넘어서지 않도록 관리해야 함.
▲지난 24일 진행된 DRAM설계 DAM 준공식 모습.
아울러 올해 상반기에는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누적 저장하는 시스템인 ‘DAM’3)을 구축해, 개발에 참여하는 누구나 언제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제공 시스템’을 확보했다. 또한 앞서 정의한 규약의 판정 기준을 검증 시스템에 포함시켜 불량 검출, 신호 분석 등 개발 업무의 체질을 변화시키고, 이를 통해 설계 품질을 높여가고 있다.
3) DAM : 강에 설치된 댐(DAM)이 하천에서 모인 물줄기를 막아 모아두고 이를 활용해 전력 생산, 관광 등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처럼, 각각의 개발 파트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한 곳에 모아 보관/관리하면서 개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 저장 시스템(Data DAM)’.
하반기부터는 품질 규약의 자동화율을 관리하는 한편, ‘설계 완료 확인 절차(Sign Off)’ 항목에 규약 만족율을 추가해 관리할 예정이다. 이를 파일럿(Pilot) 제품에 먼저 적용한 뒤 보완 과정을 거쳐 제품 영역을 확대할 예정이며, 이런 과정을 충실히 수행하며 품질 설계의 실행력도 높여갈 계획이다.
품질 설계 체계가 구축되면 잠재 불량을 제거해 제품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계 품질의 편차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제품의 완성도와 개발 효율을 함께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품질 설계 체계 구축의 KFS(Key Factor for Success)는 ‘DAM’이다. DAM은 제품 개발에 필요한 설계의 모든 정보, 즉 회로, 배치, 신호 정보를 누적 저장하는 시스템으로, 이곳에 저장된 정보는 크게 △품질 설계 체계 구축과 △신호 품질 향상 및 다중 신호의 강건성 확보 등에 활용된다.
DRAM설계 담당에서는 DAM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 다차원 분석 등의 작업을 통해 신규 품질 규약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신호 품질 향상 및 다중 신호의 강건성 확보와 관련해서는 제품의 모든 신호 정보의 품질을 정량화하고 다중 신호 간의 내부 마진이나 특성들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 제품의 강건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DAM을 통해서는 크게 세 가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첫 번째는 기준점의 변화로, 품질 설계와 연계된 데이터가 축적되면 이를 활용해 판정 기준점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완성도 향상으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예측 범위(Coverage)를 확대하면 품질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개발 효율 향상으로, DS(Data Science)에 기반해 개발 난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그간 개발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DRAM설계 담당에서는 앞으로 DAM이 DRAM 개발 과정에 있어 핵심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NUDD4) 체계와 연계해, 변경 정보를 시스템상에 공유할 계획이다. 이후 Single 설계5)의 확산 전개를 통해 SK하이닉스 전 제품의 완성도를 향상시키는 동시에 개발 효율도 개선하고자 한다.
4) NUDD: New, Unique, Difficult, Different. 기존 제품 대비 신규 제품에서 변경되는 정보로 인한 신규 제품 위험 평가 방법론을 의미함.
5) Single 설계: SK하이닉스 각 사업부별 설계 조직 간 협업 체계. 벤치마킹, 지식재산권(IP) 및 방법론 횡전개 등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음.
제품 개발에 필요한 역량이 점점 고도화되고 개발 과정도 세분화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업화된 각 조직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이를 위한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조직처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구성을 바꾸거나 세부 조직을 하나로 묶어 규모를 키우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조직 간 정보를 통합하고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조직 간 활동을 조정하고 상호작용을 통합하는 실질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앞으로는 데이터 분석 역량이 제품의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제품 개발 체계가 변하고, 일하는 방식도 바뀔 것이다.
우리는 품질 설계를 통해 단순한 질문의 나열인 체크리스트(Checklist) 방식에서 개발에 참여하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고 개선 가능한 규약화로의 변화를 이뤄냈고, 이를 제품 개발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누적된 개인의 경험이 아닌 정량화된 객관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고, 개인의 필요나 역량에 따라 취득할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이 달랐던 양극화 현상도 완화해 개발에 참여하는 모두가 공평하게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단순히 Pass/Fail 판정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것을 넘어, 설계 품질을 내부적으로 규약화하고 이러한 규약을 시스템에 내재화해 제품의 강건성을 확보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품질 설계’이다. 또한 품질 설계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개발 초기 의사결정이 번복되는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고, 전체 최적화에 집중하면서 전사 이슈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조직으로 변모해 제품 개발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품질 설계를 통해 새로운 제품 개발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