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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명사전] 컴퓨터 마우스의 개발자 더글러스 엥겔바트

Written by SK하이닉스 | 2016. 1. 13 오전 5:00:00

 

1968년 12월 9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브룩스 홀에서는 가히 혁신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대 위 대형화면에 안에 등장한 남자와 멘로파크에 있는 그의 동료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컴퓨터 화면의 모습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입니다. 화면의 글자는 조악했으나, 하이퍼텍스트 링크까지 포함된 이 날 시연은 다음 해 시작될 인터넷 혁명의 예고편이라 하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마우스의 발명가로도 유명한 더글러스 엥겔바트입니다. 마우스로 스크린 상에서 텍스트를 하이퍼텍스트로 링크하고 화면을 여러 개의 창으로 나눠 쓰거나 관련 문서를 빠르게 보여주는 하이퍼텍스트 기능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는데요. 그가 발명한 것은 단순한 마우스가 아닌, 대화형 컴퓨터를 향한 하이퍼텍스트의 구현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마치 ‘마법’과도 같았던 이 날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엥겔바트에 대해 함께 살펴볼까요?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1925년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포틀랜드의 시골 지역에서 자란 그는 오리건주립대학에 입학하는데요.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에 미국 해군에 입대해 2년간 필리핀 전선에서 레이더 기술자로 복무했습니다. 그는 군대에 있는 동안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 기고문을 하나 읽게 되는데요. 그것이 베니바르 부시의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As We May Think)"입니다. 그는 메멕스라는 개념을 퍼뜨린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가 생각하는대로"에서는 하이퍼텍스트와 컴퓨터 네트워크의 출현을 예견했죠.

 

★ 베니바르 부시의 ‘메멕스’란?

 

지금까지 과학은 전쟁 무기 등 파괴적인 일에 쓰였지만, 이제는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집단 지성이 필요하며, '메멕스(Memex)' 같은 장치가 여기에 도움을 줄 것이다' - 기고문 중

 

버네바 부시가 고안한 메멕스는 하이퍼텍스트와 유사한 개념의 기계로, 기억 확장 장치(Memory Extender)의 약자입니다. 마이크로필름 형태의 정보를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해당 마이크로필름을 불러와 정보를 획득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장치인데요. 물론 이 장치가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지만, 훗날 인터넷과 하이퍼텍스트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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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문을 통해 큰 영감을 얻은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을 개선하면 인류의 삶을 더 윤택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이에 관한 기술 개발에 매진하게 됩니다.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졸업 후 NASA의 전신인 NACA에서 1951년까지 근무하는데요. 하지만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UC버클리에서 전자공학 박사 과정을 수료합니다.

 

UC버클리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때 창업을 했던 엥겔바트는 1957년부터 오랜 기간 연구자로 활동하며 스탠퍼드 연구소(SRI International)에 몸담게 됩니다. 그의 본격적인 행보 역시 이때부터 시작되었는데요. 당시 엥겔바트가 관심을 가진 연구 분야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였습니다. 비트맵 화면을 비롯해 마우스, 하이퍼텍스트, 협업 툴 같은 것들은 전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탐구했던 엥겔바트가 동료들과 함께 만든 작품들이죠. 엥겔바트가 그래픽 이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선구자로 꼽히는 것도 이런 작업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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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그는 여기서 전자기기 소형화, 마그네틱 디바이스 등 12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1962년 그가 쓴 논문 '인간 지능 증강: 개념 틀(Augmenting Human Intellect: A Conceptual Framework)'에서는 네트워크 기반의 정보 저장소(일종의 온라인 도서관)와 전자 문서 저장∙검색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자 할 때 관련 정보를 찾고 전달하는 단순한 과정은 컴퓨터에 맡기고, 사유와 통찰이 필요한 부분은 사람이 담당하자는 내용이었죠.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미 국방부 고등연구 계획국(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이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개발한 것은 온라인 시스템(NLS, oN Line System)이었는데요. NLS는 오늘날 PC 사용자에게 당연하다고 느끼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환경(GUI, Graphic User Interface), 하이퍼텍스트를 통한 문서 이동, 네트워크를 통한 화상 회의 등이 포함된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환경을 조금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도 함께 만들어졌는데요. 이 장치는 가로와 세로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각종 인터페이스를 선택하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의 ‘마우스’입니다.


▲ 엥겔바트가 처음 선보인 마우스 / 출처 : 위키디피아

 

NLS는 1968년 더글러스 엥겔버트의 시연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이와 함께 최초의 컴퓨터 마우스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했죠. 무대 위의 카메라 한 대는 엥겔바트의 얼굴을, 또 한대는 그가 마우스와 키보드 다루는 모습을 잡았습니다. 대형화면에는 엥겔바트와 멘로파크에 있는 그의 동료모습이 번갈아 비쳐졌으며 메시지를 주고받는 컴퓨터 화면의 모습도 나타났고요. 이 모든 것은 멘로파크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이뤄졌습니다. 컴퓨터 메모리의 용량은 고작 192kB에 불과했지만, 하이퍼텍스트 링크까지 포함된 이 날 시연은 인터넷 혁명을 이끌 핵심 기술임에는 분명해 보였습니다. 90분 동안의 시연이 끝나자 긴 충격에서 깨어난 관객들은 엥겔바트의 발표 마감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 NLS를 통해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 출처: http://www.dougengelbart.org/

 

반면 이날 시연에 등장했던 마우스는 한동안 널리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 장치의 가치를 몰라봤다기보다는,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은 만큼 수요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듯 그의 연구성과는 대형컴퓨터 시대에 만들어졌기에 당시에는 지나치게 미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1970년대 이후 PC의 시대가 열리고도 한참이 지난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야 매킨토시와 윈도를 통해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NLS는 오늘날 인터넷의 원형인 ARPANET의 기초가 되고, 하이퍼텍스트의 기반 기술이 되며, 원격 회의라는 새로운 방식을 제한하고 있죠. 마우스의 경우 1967년에 특허를 출원했는데, SRI가 해당 특허에 대한 가치를 거의 몰랐다고 하죠. 그래서 마우스 특허는 그 가치를 알아본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사들이게 되는데, 이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4만 달러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마우스와 함께 엥겔바트 최대의 업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은 1968년에 일어났습니다. 그는 스튜어트 브랜드, 제록스 파크 연구소와 역사적인 이벤트를 계획하게 되는데요. 컴퓨터와 대화를 주고받거나 컴퓨터를 이용해서 여러 사람이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여 이를 원격으로 시연하기로 한 것입니다. 스튜어트 브랜드와 엥겔바트가 연출한 이 시연은 미디어를 이용한 현대식 프리젠테이션의 시초가 되었는데요. 엥겔바트는 청중 앞에 거대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컴퓨터로 정보를 투사시켜 발표하는 방식을 처음 선보였고 스튜어트 브랜드는 이 데모를 총지휘했죠. 스튜어트 브랜드는 대항문화의 중심인물이었던 작가인 켄 키지와 함께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LSD 페스티벌을 기획한 경험을 엥겔바트의 시연에 십분 발휘했습니다.

엥겔바트는 이후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의 탄생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지만, 그의 말년의 연구는 그다지 순조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가 너무 먼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협업과 네트워크, 시분할 컴퓨팅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지만, PC가 대중화되면서 그의 젊은 제자들은 그와 다른 입장을 취하며 의견충돌도 많았다고 하죠.

 


▲ 엥겔바트와 그가 처음으로 고안했던 초창기의 마우스

 

그러나 그가 생각했던 미래의 모습은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클라우드의 시대가 오면서 실체화되고 있습니다. 50년 전에 그가 꾸었던 꿈이 현재에 구현되고 있는 것인데요. 그런 측면에서 엥겔바트는 진정한 미래학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일상에 있어 당연하게 생각되는 PC와 이를 이용하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 마우스는 엥겔바트가 꿈꾸던 미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허황된 미래의 모습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린 미래를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들을 만드는 데 인생을 바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개념과 기술의 유산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죠. 아무도 낙관하지 않았던 첨단기술의 밑그림을 그리고 일을 실행에 옮긴 엥겔바트의 일생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는데요. 어떤 것을 꿈꾸는 것에 있어 중요한 것은 계획뿐만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려는 도전정신과 실행력이라는 것을 그는 현대의 ‘마우스’를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