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사고와 올해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사고, 두 번의 참사로 인해 우리는 80여명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제천 사건 당시 전 국민이 안타까워하고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듯 했으나, 불과 한 달 후 밀양에서 또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고야 말았죠. 이번에도 역시 미흡한 사전예방과 사후 대처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오늘은 평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주변에 모범이 되고 있는 한 분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이 분은 자칫 뉴스에서 볼 뻔한 사건을 동네 무용담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한번 들어볼까요?
운 좋은 화재 사건을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12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청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작은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3천 세대가 사는 대단지였으며 그 시간 그 주차장 안에는 오늘의 주인공 가족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소방차는 6대 출동했고 해당 차량 한대가 전소 되었지만, 그 외의 재산손실도 인명피해도 없었던 사건입니다. 주민들은 운이 좋았다 입을 모았지만, 담당 소방관은 초기대처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사건을 초기에 발견해 훌륭한 초기대처로 ‘운 좋게’ 만든 그 주인공은 바로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의 최영덕 기정!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오늘을 열심히 사는 직장인입니다.
“안녕하세요. P&T QC팀에 근무하는 최영덕 기정입니다. QC팀이라면 독자들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죠? 쉽게 이야기하면 품질관리를 하는 팀입니다. 제품의 불량은 물론 시스템 개선이나 유틸리티 관리까지 책임집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인데 생각보다 부각이 되어 당황스럽다는 최영덕 기정. 그는 인터뷰 내내 업무에 대한 자부심과 가정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는데요. 이런 그에게 그날의 화재 이야기를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저녁 약속이 있어 가족과 함께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제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가 왠지 모르게 이상했어요. 연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연기가 점점 많이 나더니 불똥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큰일이다 싶었죠. 평소 소화기와 소화전 위치를 알고 있어서 재빠르게 진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나 하나쯤이야 하고 그냥 지나가면 지나갈 수 있는 낌새였습니다. 이상한 낌새를 화재로 확신한 순간 최영덕 기정은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아이들은 관리사무소로 보냈고 큰 아들과 함께 진화를 시작합니다. 이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119에 신고전화를 겁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5분 안에 벌어진 일이랍니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해요. 다행히 제가 사내 ERT 현장감독자다 보니 위기 대응방법이 숙지되어 있었습니다. 119를 부른 후 차량 대피와 출입구 정리를 했는데요. 나중에 소방관이 초기 대처가 훌륭했다고 하셨어요.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본 우리 아이들은 절 영웅처럼 보는 것 같았어요. 비록 숯 검댕이가 되었지만 뿌듯했습니다.”
이 사건 후 지인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하며 한편으로는 ‘소방관에게도 손해배상을 하는데 겁도 없느냐’는 걱정과, ‘어떻게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때 최영덕 기정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앞 뒤 잴 사이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고요.”
최영덕 기정은 이 사건으로 ‘영웅 아빠’가 된 것뿐만 아니라 청주 소방서로부터 ‘2017 소방활동 공로상’을 받아 지역의 영웅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초·중·고 시절 안전대피훈련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책상 밑에 숨기도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기도 하죠. 하지만 남의 일이라는 생각에 대충 시간을 흘려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경우는 생산성과 직결되는 만큼 연습조차 허투루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SK하이닉스는 안전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신념으로 SHE(Safety, Health, Environment)라는 비상대응 시스템을 운영하며, 초기진압을 위해 ERT 요원을 팀마다 선정하여 교육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으로 현장감독자입니다. ERT 요원들은 위기 상황 발생 시 소방차가 오기 전 1차 초기 대응을 하고 대피 안내를 관리합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기업으로 다양한 화약물질을 사용하다 보니 화재사건 외에도 화학물질 누출사고, 질식사고 등 특성에 맞는 조치방법이 필요한데요. 공장마다 일년에 두 번씩 민·관·군과 함께 실제 사건을 방불케 하는 비상 대응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ERT요원은 비상대응 훈련을 위한 별도의 교육을 받고 있으며, 나머지 전 직원은 사고에 대한 대처를 시뮬레이션하며 실제 사고에 대비합니다.
“사실 사건을 마주하면 누구나 당황합니다. 머리에 있어도 아는 만큼 몸이 움직이지 않기 마련이죠. 저 역시 이전에는 실제 사건을 겪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하더라고요. 그 순간 제가 바로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꾸준한 교육과 훈련으로 사고에 대한 대응이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ERT요원과 현장감독자로의 오랜 활동은 저를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
특히 최영덕 기정과 같은 현장감독자들은 비상대응훈련 외에도 매년 16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받게 되는데, 여기엔 이론 뿐만 아니라 암흑 속에서 대피로를 찾는 방법, 심폐소생술 등이 실제 사건에서 필요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영덕 기정은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하는 세 아이를 둔 아빠이기 때문에 특히 아이들에 관련된 안전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요. 세월호 사건은 안전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도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때 제가 강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상황이 벌어진다면 빠르게 판단하고 주변에 알려야 한다. 그래서 생긴 문제는 아빠가 책임질 테니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라’입니다.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죠. 그러면서 소화기 사용법이나 간단한 심폐소생술 등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안전수칙이란 사용 안 할수록 좋지만 몰라서 못하는 일이 없도록 평소에도 몸에 익혀두기를 권합니다. 이미 완벽해 보이는 최영덕 기정도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다시금 그 중요성을 상기하기도 하는데요. 품질관리라는 업무적 특성으로 좀 더 세심하게 주변을 바라볼 뿐, 교육과 훈련 만 한 것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영덕 기정은 모든 안전 수칙을 익힐 수 없다면 최소한 '신고-전파-초기진화'를 기억하라고 전합니다.
“사건이라고 판단이 서면 일단 신고하세요. 그리고 주변에 알려 대피를 시키고 초기진화를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5분 이내에 완료될 수 있도록 하세요. 특히 화재사건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미미하기에 전문가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 전문가가 오기 전 초기 5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청주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사건의 발화 원인은 합선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해당 차량은 그날 오전 정비소에 다녀왔다고도 하고요. 이처럼 누구의 잘못도 없이 일어나는 사고에 우리는 무방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더욱 운이 좋은 사건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단 한 사람, 최영덕 기정의 안전에 대한 의식과 오랫동안 받은 교육과 훈련이 있었기에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