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에서 인텔과 AMD의 희비가 갈렸다. 인텔은 당초 올해 CES에서 공개될 것으로 기대됐던 차세대 CPU를 선보이지 못해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AMD는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를 공개하며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냈다. 지난해 혹한기를 겪었던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낸드플래시, 자동차용 반도체, D램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지난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IT전시회 CES 2020에서 인공지능(AI)용 CPU ‘타이거 레이크’를 공개했다. 10나노+ 공정을 활용해 개발한 이 제품은 인공지능(AI)과 그래픽 처리 기술에 집중한 제품. 또한, 인텔은 폴더블 노트북 같은 차세대 노트북 시장에 대해서도 기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텔이 이번 행사에서 공개한 콘셉트 폴더블 노트북 ‘호스슈 밴드’는 접이식 터치스크린을 장착해 12인치에서 17인치 이상의 화면을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IT업계에서는 이번 인텔의 발표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많다. 당초 기대했던 차세대 CPU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고, 외부 업체들과의 협업 위주로만 발표했다는 게 그 이유.
이에 더해 인텔은 작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CPU 공급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인텔의 CPU 공급 부족 현상은 올해도 지속돼, 올 2분기에 피크를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의 14나노 공정 생산 효율이 개선되지 못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텔은 CPU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작년 3분기까지 레노버, HP, 델 등 주력 PC 업체들에게는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해왔지만, 에이서, 아수스텍 등 중소 업체들에게는 물량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부 노트북 업체들은 인텔 대신 AMD의 CPU를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크롬북 등 저가형 제품들은 올해부터 AMD의 제품을 탑재해 출시 물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인텔의 후광에 가려져 있던 반도체 기업 AMD가 올 들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AMD는 올해 CES 2020를 통해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을 활용한 울트라북용 프로세서 신제품 ‘라이젠4000’ 시리즈를 공개했다. 인텔보다 한 발 앞서서 초미세공정을 활용한 고성능 반도체를 내놓은 것.
또한, AMD는 초고성능 제품군인 라이젠 스레드리퍼 3990X도 공개했다. 이 제품은 총 64개의 코어를 탑재해 속도를 대폭 끌어올린 제품. 인텔의 초고성능 프로세서가 코어를 최대 18개 가량 탑재한 것과 비교해보면 코어 수에서는 압도하는 추세다. AMD는 이번 CES에서 “스레드리퍼 3990X 제품은 인텔의 제온 플래티넘 8280을 2개 붙인 것보다도 렌더링 속도가 30% 빠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AMD가 인텔이 수십년간 지켜왔던 왕좌 자리를 빼앗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인텔이 CPU 물량 부족 사태에 계속 허우적대는 사이에 AMD는 빠르게 기술력을 끌어올리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기 때문. AMD의 주가 역시 지난 3년 사이 4배 이상 올라 시장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극심한 실적 부진과 시장 규모 축소로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조사한 작년 세계 10대 반도체 업체(파운드리 업체 제외)들의 매출 순위를 보면 인텔이 작년 657억 9,3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텔도 2018년과 비교해보면 매출이 0.7% 줄어들었다. 인텔의 매출 감소는 CPU 공급난으로 인한 물량 감소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를 주도했던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나란히 실적이 두 자릿수 이상 줄었다. SK하이닉스는 224억 7,8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2018년 대비 매출이 38% 감소했고, 삼성전자는 522억 1,4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매출이 29.1% 감소했다. 미국 마이크론은 200억 5,600만 달러를 기록해 32.6% 줄었다. D램, 낸드플래시 등 주력 반도체 품목의 공급 과잉과 재고 증가, 주요 수요처인 서버 업체들의 주문량 급감,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시장 위축 등이 겹치며 메모리 수요가 급락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비메모리 업체들의 부진도 이어졌다. 세계 5위 자리를 지킨 브로드컴은 152억 9,3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매출이 전년 대비 6% 줄었고, 퀄컴도 135억 3,7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쳐 매출이 전년 대비 12%나 감소했다. 퀄컴의 경우 미국의 화웨이 수출 규제로 인해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AP 공급량이 급감한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메모리, 비메모리 할 것 없이 업체들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매출 규모는 작년 4,183억200만 달러 수준으로 1년 전보다 무려 11.9%나 감소했다고 가트너는 밝혔다. 지난 3~4년간 지속돼왔던 반도체 호황이 작년 완전히 꺾여버린 것.
작년 부진한 한 해를 보냈던 반도체 업계에 올해는 초반부터 긍정적인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주요 33개 품목 중 26개 품목에서 작년보다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분석됐다. 작년의 경우 불과 6개 품목만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사실상 대부분 품목의 시장이 커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큰 성장세가 기대되는 품목은 낸드플래시다. IC인사이츠는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이 올해 작년 대비 19%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5G 스마트폰의 급증으로 인해 고용량 낸드플래시 탑재량이 늘어나고, 서버와 PC 시장에서도 HDD(Hard Disk Drive)를 대체하는 낸드플래시 기반 SSD(Solid State Drive)가 급증하는 추세이기 때문.
두 번째로 성장할 품목으로는 자동차용 반도체가 지목됐다.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은 전년 대비 13%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8년에 23% 성장했고, 전반적인 반도체 시장이 침체됐던 작년에도 17% 늘어나는 등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품목.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자동차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탑재되는 센서, 프로세서의 수요가 계속 폭증하는 추세고, 향후 완전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시장은 더욱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의 주력 품목인 D램 시장 규모 역시 올해는 1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D램은 작년 시장 위축세가 워낙 거센 탓에 기저효과로 상승하는 측면이 크다. 하지만 그동안 주문 물량을 줄였던 서버 업체들이 대량 D램 주문에 나선 데다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이 다시 불붙을 경우 훨씬 더 많은 D램 수요가 나타나 올해는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디스플레이 드라이버와 임베디드 MPU(Micro Processor)가 각각 10%씩 성장하는 등 올해는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분야별로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