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감상 해보셨나요? 그림 못지않게 교양이 쌓여요. 아~ 오늘은 쭉쭉이를 못봤네요."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대화가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나무를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하다는 이 남자, 나무에 대한 애정이 보통이 아닌듯 합니다. 그리고 또 '쭉쭉이'는 누구인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오늘은 조경에 푹~ 빠졌다는 이준호 선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마트 워크팀 이준호 선임입니다. 7년 전 SK하이닉스 조경관리 업무로 입사했어요. 최근 스마트워크팀으로 자리를 옮겨 공유좌석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첫인상과는 달리 너무나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 이준호 선임은 취미도 특기도 ‘나무 사랑’입니다. 사내 전체의 조경을 책임진 유일한 직원이었던 그는 조경 업무를 만나면서 나무에 대한 ‘덕질’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맡은 첫 업무는 ‘운동장 주변 조경’ 이었습니다. 인테리어를 전공하면서 배운 조경 지식으로 SK하이닉스 전체를 관리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관찰하고 무조건 공부하며 맡은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는데요.
“운동장 조경이라면 간단해 보이지만 잘 다져진 운동장 토질에는 나무가 살 수 없어요. 나무도 숨을 쉬어야 하는데 운동장은 그렇지 않잖아요. 처음엔 나무가 죽어나가도 그 이유를 몰라 온갖 영양제도 주고 전문가도 모셨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죠.”
현재의 운동장 조경이 완성되기까지, 4~5번의 나무 교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 나무들이 늘 거기에 있었고, 그 나무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애증의 첫 프로젝트가 끝나고, 유난히 마음에 들었던 나무에게 ‘쭉쭉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병들지 않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죠.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제 나무사랑이요. 처음엔 일을 잘 해보고자 시작된 관심이 아침, 점심, 저녁 휴일까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같이 있을수록 건강해 지니 이보다 더 좋은 취미가 있을까요?”
나무에 이름 붙이는 정도로는 ‘나무 덕후’가 되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준호 선임의 하루일과를 살펴보면 나무에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인터뷰 대화 역시 삼천포가 아닌 나무늪으로 빠져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근처 사는데, 출퇴근길엔 되도록 길을 따라 쭉~ 산책하듯 걸어와요. 예전엔 여기 이천 캠퍼스를 크게 한 바퀴 매일 돌았어요. 아, 그거 아세요? 여기 길 양쪽에 왜 이렇게 쭉쭉 뻗은 나무를 심어 놨는지? 늘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라도 건물을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어요.”
그와의 대화에 주변인들은 ‘정상이 아니다’ 손사래를 치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때 비올 때 어느 나무라고? 느티나무였나?’ ‘어떤 나무가 피톤치드가 많다고 했지?’ 등 이준호 선임에 동화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이렇듯 끊임없이 나무사랑을 전파하는 이준호 선임은 그동안 업무와 관심사가 같아 ‘덕후’임을 잘 숨기고 살았는데요. 최근 스마트워크팀으로 옮기면서 그의 덕력은 소문이 났고, 이렇게 SK하이라이트에 제보까지 들어왔습니다.
"제가요. 이 선임님이 싫어서 제보한 건 아닌데요.. 아니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 사람을 가만히 안 둬요. 본인이 나무를 좋아하고 끌어안고 뽀뽀도 하고 그런 건 좋은데요. 저한테까지 그걸 시킬 필요가 없잖아요. 근데 이게 중독인지 어느새 저도 그러고 있어요."
_ 제보자 김모양
근무시간에 당당히 나무 옆을 지킬 수 있었던 조경 업무를 떠날 땐 무척 슬펐다는 이준호 선임. 지금도 그는 짬이 나면 마음 닿는 나무 옆으로 달려가거나, 조경도면을 그리고 3D작업을 하면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시작은 일이었지만 건전한 설렘을 갖게 되었고, 스트레스 해소도 힐링도 나무와 함께하는 그는 ‘덥업일치’를 이룬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이였습니다.
*덕업일치: 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다. 덕후 중에서도 관심사를 자신의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편집자 주
안동, 그중에서도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준호 선임은 정서상 빌딩숲보단 녹색숲이 당겼습니다. 학창시절에도 도시녹화사업등 푸르름을 만드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전공도 그렇지만 지금의 아내도 저와 같은 성향인 것도, 제가 SK하이닉스에 입사해서 조경 업무를 만난 것 모두 다요. 이렇게 푹~ 빠진 걸 보면 이건 운명이 틀림없어요.”
얌전한 성격의 이준호 선임은 활동적인 취미는 없습니다. 그저 조용히 앉아 업무를 마치고,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나무 아래를 퇴근길로 선택하면 그저 미소가 나와버린다고 합니다. 유일한 취미이자 유일한 특기인 나무사랑은 빡빡한 일상 속에서 웃음 짓게 하는 활력소입니다.
“나무는 저의 힐링템입니다. 그래서 언젠간 은퇴해서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면 자연을 벗 삼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마당 있는 주택에서 나무를 키우고 나눠주는 일도 하고 싶어요.”
이준호 선임은 꿈을 꿉니다. 만물 숲 박사님이라 불려도 좋고, 에코 커뮤니케이터로 불려도 좋습니다. 그저 오늘의 벅찬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 행복함을 말입니다.
‘나무 보고 있는 게 무슨 취미야’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죠. 그런 분께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을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존재는 무엇인지’, ‘당신을 힐링시켜주는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흔한 취미는 아니지만 충분히 나무에게서 위로받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으니, 그에게는 최고의 취미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의 이준호 선임도 그의 내일도 언제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