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대 SF라 불리는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공각기동대>, <아키라> 그리고 <총몽>입니다. <총몽>의 경우 ‘안드로이드(Android)’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안드로이드는 ‘인조인간’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로보캅>에서도 이와 같은 캐릭터가 종종 등장한 바 있죠. 그리고 오는 2월 5일,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아바타> 제작진과 함께 <총몽>을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이 개봉합니다. 배경은 26세기로, 이 곳에서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펼쳐집니다. 모든 이들이 동경하고 갈망하는 곳 ‘공중도시’, 그리고 착취와 약탈이 빗발치는 ‘고철도시’로 나뉜 세계에 주인공 알리타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두뇌를 가진 기계 소녀, 전형적인 사이보그의 등장입니다.
▲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 공식 포스터 (출처: NAVER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함께 ‘총몽’을 소재로 각본을 쓰고 다듬으며 ‘알리타’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그래픽을 입힌 알리타는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로 이질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성을 지닌 사이보그라고 하니 어느 정도 납득할만한 수준입니다. 사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아 제작하고자 했지만 <아바타> 후속작에 몰두하기 위해 로드리게즈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고 합니다.
▲ 영화 <알리타: 배틀엔젤> 스틸컷 (출처: NAVER 영화)
기본적으로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하는 캐릭터입니다.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사이보그 전문 의사인 ‘다이슨 이도(크리스토프 왈츠)’와 고철도시에 살고 있는 ‘휴고(키언 존슨)’를 만나면서 점차 회복해갑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인간인지 기계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잃어버린 기억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찾고 인류의 미래를 구하기 위한 여정이 영화의 플롯입니다.
알리타가 기억을 잃고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다는 것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그리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알리타를 구성하는 요소에 두뇌라는 생체가 있기 때문이죠. 위에서 언급했듯 알리타는 두뇌로부터 뻗어나가는 생체에 기계를 결합한 사이보그입니다. 휴고를 만나면서 인간의 감성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본질을 품고 있지만, 기계로 뒤덮인 자신의 육체가 강력한 ‘무기’로서 기능할 때마다 더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것이죠.
▲ 영화 <배틀쉽>에 등장했던 퇴역군인 게드슨 대령 (출처: NAVER 영화)
사람의 두뇌가 로봇으로 된 몸을 제어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두뇌’가 기능하는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영화 <배틀쉽>(2012)에서 두 다리에 보조장치를 하고서도 당당하게 외계인과 맞붙는 캐릭터를 기억하시나요? 주인공 역을 맡은 그래고리 디 게드슨은 실제 이라크전에 참전했으며, 이 전투에서 두 다리를 잃고 퇴역했다고 하죠. 그가 연기하는 게드슨은 군인의 희생정신과 강인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드슨과 같이 인간이 로봇의 팔이나 다리를 보조장치로 착용한다는 측면으로 본다면, 단순한 의수나 의족 이상의 기능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증강인간(Augmented Human)’의 신세계를 꿈꿔볼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기능에 기계공학이나 전자공학의 힘을 부여한 셈인데, 인간의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 ‘슈퍼 휴먼’이 곧 ‘혁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배틀쉽>의 게드슨과 같이 전쟁이나 사고로 인해 외형적인 핸디캡이 생겼을 때 이러한 기술들이 어쩌면 해결책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증강인간, 슈퍼휴먼과 더불어 알리타와 같은 사이보그나 <로보캅>의 캐릭터들을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바이오로보틱스(Biorobotics)’입니다. 생체의 근육과 같은 뛰어난 액추에이터(actuator), 오감(五感)에 상당하는 센서, 인간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바이오컴퓨터를 내장한 로봇으로 생산되었을 때 이들 로봇은 사이보그(cyborg)로 기능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죠. 물론 생체공학, 기계공학으로서 보완하고 연구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분야이며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 사이보그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이보그로서 기능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지금과 같이 과학 분야의 점진적인 연구 속도라면 100년 안에 이룩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 전기 없이 생체조직으로 움직이는 가오리 형태의 바이오 로봇 (출처: Karaghen Hudson)
이와 유사하게 생체조직과 결합된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Biohybrid Robot)’ 사례도 존재합니다. 바이오 하이브리드 로봇은 살아있는 생물의 세포와 같은 생체 부분과 기계가 결합된 로봇을 일컫는데요. 2016년, 하버드 질병 바이오물리 연구센터의 국제 공동연구진이 세계최초로 개발했습니다. 가오리 형태의 이 로봇은 기본적으로 동력기관이 없어도 물 속에서 유영이 가능하며, 빛 자극의 빈도를 조절해 방향 전환도 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로봇의 연구를 통해서 생체 조직과 기계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주고 사이보그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 토대를 마련한 셈입니다.
알리타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이보그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체성 혼란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리타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요?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 인류는 사이보그와 공존하며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가 도래한다면 인류는 또 다른 산업혁명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