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민 기정(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 R&D장비기술 White팀)은 공정상 꼭 필요하지만 사고 위험이 높은 Diffusion 장비를 안전하게 유지∙관리하는 중임을 맡고 있다. 장비 엔지니어로서 수많은 장비의 성능을 개선해, SK하이닉스 기술명장 1기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능력자이기도 하다.
그의 책상 위 줄자는 서성민 기정이 업무시간 중에는 한 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 그의 분신. SK하이닉스 뉴스룸은 오랜 세월 서성민 기정의 곁을 지킨 그의 애장품 ‘줄자’를 통해 그가 SK하이닉스와 함께한 23년과 그 기간 동안 이뤄낸 성과를 살펴보고, 기술명장으로서 앞으로 그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성민 기정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장비 전문가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장비만 17종, 100여 대에 달한다. 그는 이 장비들이 제 성능을 낼 수 있도록 관리하는 한편, 보다 효율적으로 구동하게 개선하기 위한 연구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 같은 그의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업무용품이 바로 ‘줄자’다.
“하나의 장비는 수많은 부품으로 구성돼 있고, 그 부품들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만 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장비관리 담당자가 장비를 구성하는 각 부품의 치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장비 개선을 위해 새로운 부품을 도입하거나 내부 구조를 바꿀 때도 먼저 부품 크기와 들어갈 공간의 치수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 부품 제작을 의뢰할 때도 설계도를 직접 그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일할 때는 반드시 줄자를 챙겨야만 마음이 놓입니다”
늘 줄자를 곁에 두고 이것저것 재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않고 바로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 이런 습관은 서성민 기정이 SK하이닉스 기술명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전문성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호기심이 강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현장에 직접 적용해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입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때그때 전문가들한테 물어보는 편이죠. 지금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다른 산업 분야의 현장을 찾아 다니며, 맡고 있는 업무에 적용할 부분이 있는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질이 현장에서는 다양한 장비 개선 성과로 이어져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서성민 기정이 기술명장이 되기까지 걸어온 여정 역시 줄자와 많이 닮아 있다. 그는 늘리면 일반 자의 몇 배까지 길이가 늘어나는 줄자처럼, 스스로 한계를 정하기보다 끊임없이 노력하며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SK하이닉스 기술직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기술명장’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묵묵히 노력한 결과물.
그 덕분에 지난 20여년 간 설계상 결함으로 작업자들의 불편함을 야기하거나 높은 불량률로 작업효율을 떨어뜨리던 수많은 ‘애물단지’들도 서성민 기정의 손을 거쳐 ‘A급’ 장비로 새롭게 탄생할 수 있었다. 그가 개선한 장비 숫자를 일일이 새기조차 어려울 정도. 때론 막힐 때도 있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런 노력은 D램 제조공정 핵심장비의 국산화로 이어져 그와 SK하이닉스에 의미 있는 결실을 선물하기도 했다.
“국산화에 성공한 장비는 D램 제조공정 중 게이트 제조에 활용되는 장비입니다. 기존에는 비싼 외산 장비를 들여와야 했는데, 국산화에 성공해 수백억원 가량의 투자비용 절감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죠. 이 성과는 기술명장 심사를 통과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기술명장은 현장에서 오래 근무한 직원들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기존 명장 제도와 달리, 15년 차 이상의 젊은 현장 기술 인재에게 더 큰 성장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 그런 만큼 기술명장으로 선발되면 기존 업무를 넘어 현장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서성민 기정 역시 기술명장 선정에 그치지 않고, 하루하루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절차탁마하고 있다.
“기술명장이 되고 나서 책임감이 더욱 커졌어요. 기술명장으로서 보여지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죠. 말과 행동에 더 무게가 실리는 걸 매일 체감합니다. 기술직 근무자들의 경우 기술명장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동기부여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금은 후배들도 목표를 갖고 더 많이 노력하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기술명장으로서 언제나 후배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선배로 남고 싶습니다.”
줄자는 평소 유연하게 말려들어가 주머니에 쉽게 보관할 수 있지만, 치수를 재야 할 때는 빳빳하게 고정돼 제 역할을 한다. 서성민 기정 역시 장비 연구개발 업무 중에는 유연한 사고로 아이디어를 내는 ‘장비 엔지니어’지만, 장비 유지관리 업무 중에는 깐깐하고 융통성 없는 ‘관리자’로 변신한다.
“기계를 다루고 관리하는 분야에선 단 1mm의 오차도 가볍게 여겨선 안 됩니다. 기계는 조립이 잘못되면 아예 작동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특히 일부 장비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누출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전한 상태로 관리되고 있는지 항상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장비 엔지니어로 활약할 때도 서성민 기정에게 있어 ‘안전’은 최우선 가치. 늘 장비가 더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최근엔 장비에 부착된 밸브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진단장치’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현재 진단기능까지 탑재한 밸브가 개발돼 있지만 너무 비싸 모든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밸브의 안전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장비 개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현장 근무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편한 환경에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선배들이 앞장 서서 근무환경을 바꿔 놓으면 후배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거든요. 조금씩 불편한 걸 개선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큽니다. 앞으로도 동료들이 더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이런 서성민 기정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그는 얼마 전 화학안전 분야 이론적인 역량을 더 키우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올해 수료, 내년 학위 취득을 목표로 산업경영공학과 박사과정을 수강하고 있다. 서성민 기정의 이름 앞에 ‘기술명장’과 ‘안전지킴이’에 더해 ‘박사’ 타이틀이 붙을 날도 머지 않았다.
서성민 기정은 인터뷰 내내 ‘현장’과 ‘동료’들을 향한 애정을 수 차례 표현했다. 현장 근무자의 애환을 담담히 늘어놓기도 하고, 때론 옛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현장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도 노력했다. 그가 현장과 함께한 23년 세월의 깊이가 새삼 느껴지는 대목. 그가 앞으로도 SK하이닉스의 당당한 기술명장으로서 ‘현장’에서 ‘동료’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