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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신용카드, 반도체가 편의와 보안을 책임진다

Written by 정우영 피처에디터 | 2016. 11. 2 오전 5:00:00

 

오늘 한번쯤 편의점에 들르셨겠죠? 여러분이 마신 그 음료수를 살 수 있었던 건 바코드 덕분입니다. 숫자를 굵기가 다른 수직 막대로 표현해 광학적 인식이 가능하도록 만든 코드죠. POS 컴퓨터가 바코드를 읽어 품목과 가격을 연산합니다. 숫자는 이름을 넘어서는 효율을 발휘합니다. 사회가 크고 복잡해질수록 숫자의 역할이 커지는 건 당연했죠. 지금은 두 자리 숫자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방대하게 숫자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번호, 만기일, CVC번호의 조합으로도 ‘보안에 취약하다’고 일컬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화폐경제가 발전하면서 진화한 신용카드에 대해 살펴보고, 보안을 책임지는 반도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마그네틱 카드에서 IC 카드로

대부분 계좌번호 정도는 외우실 겁니다. 숫자를 불러주거나 입력할 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외우는 경우죠. 신용카드 번호는 어떤가요? 따로 적어서 다니는 분은 있겠지만, 외우는 분은 드물 겁니다. 대개 신용카드는 단말기와 신용카드 마그네틱의 전기적 접촉을 통해 결제가 이루어져왔습니다. 하지만 2015년 7월 21부터 새로운 여신전문금융업법이 적용되었죠. 핵심은 업장에서 IC칩을 인식하는 단말기를 사용하는 겁니다. (2018년 7월 21일부터 의무 적용됩니다.)

마그네틱 카드는 간편했습니다. 입력장치에 마그네틱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 쉽게 데이터를 담을 수 있었죠. 신용카드, 공중전화카드, 각종 출입증에 빈번이 사용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위변조가 쉬웠어요. 용량이 약 72바이트에 불과했거든요. 그에 비하면 IC 카드는, 전자계산기에서 개인용 컴퓨터만큼의 진보를 이룩했달까요. 반도체 기반의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를 내장한 카드, 초소형 컴퓨터라고도 볼 수 있는 카드였습니다. 1메가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암호화 하거나 특정 규격의 컴퓨터와 호환되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서 보안성도 무척 높았죠. 2003년부터 거의 모든 신용카드가 IC 신용카드로 발급되어왔고, 이미 은행 자동입출금기는 IC 카드만 지원 중입니다. 이제 IC 카드가 없으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지요. 과장만은 아닙니다. 제가 해봤는데, 불가능하더라고요.

마그네틱 카드의 폐해

작년 말 태국 여행 후 귀국길이었습니다. 방콕 돈므앙 공항에 도착해서 알았습니다. 호텔 카운터에 지갑을 두고 왔다는 걸요. 당장 호텔에 돌아가 찾아오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무모해보였습니다. 다행히 친절한 호텔 직원이 지갑을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내일 EMS로 보내주겠다고 얘기해줘서 안심했죠. 동행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돈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갚겠다고 말하고 밥도 먹고 쇼핑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면서 친구가 돈을 빌려주겠다고 할 때는 거절했습니다. 더 이상 신세지는 것도 미안했고, 오래전에 함께 들고 다니며 번갈아 쓰던 신용카드가 집에 있었거든요. 그걸로 며칠쯤 지내면 되겠지 했습니다. 다음날 출근길부터 문제가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출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버스카드를 사기 위해서요. 이 신용카드에는 교통카드 기능이 없었죠. 교통카드 기능은 RFID 태그가 담당합니다. 신용카드에 IC 칩 말고, 아주 미세하게 돌출된 부분이죠. RFID 태그 역시 반도체로서 식별정보가 입력돼있습니다만, 안테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IC 칩과는 다르죠. 굳이 접촉하지 않더라도 단말기의 전파에 반응하며, RFID 태그의 정보를 송출할 수 있습니다. 다만 RFID 태그가 뭔지는 알아도, 버스카드를 현금으로만 살 수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현금카드 기능까지 합쳐진 신용카드를 사용 중이었죠. 즉, 제게 현금카드는 태국의 한 호텔에 놓고 온 신용카드뿐이었습니다. 통장에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신용카드만 가지고 며칠을 지내야겠구나 생각하면서 택시를 잡았습니다.

신세가 있는 회사 동료에게 치킨과 맥주를 사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5회말까지 프로야구를 보면서 마셨습니다. 여독이 안 풀렸는지 길게는 못 앉아있겠더군요.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카운터에 카드를 내밀었습니다. 제 카드를 인식하지 못했어요. 수차례 긁어도 안 됐죠. 아침에 택시에서 분명히 긁었는데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당황스러워서 신용카드를 받아들고 보니, 마그네틱이 붙였다 잘못 뗀 스티커 흔적만큼 남아있었습니다. 오히려 아침에 택시에서 결제가 된 게 기적이었죠. 천천히 한 번만 더 긁어보자는 모자란 말을 덧붙였습니다. 동료에게 갚을 빚은 두 배로 늘었습니다. 술값을 내고 나오는 동료에게 3만원을 빌렸습니다. 적어도 버스카드는 살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니 해외 온라인 숍에서 대금결제요청메일이 와있었습니다. 해외의 작은 온라인숍의 경우, 먼저 재고를 파악하고 정확한 금액을 메일로 보내주곤 합니다. 마그네틱 문제이니 온라인 결제는 문제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CVC 번호가 애매했죠. 서명란이 지워질 대로 지워져 숫자 두 개가 희미했습니다. 가운데 5는 확실했는데, 처음과 끝자리가 지팡이 모양만 남아있었거든요. 아라비아 숫자 가운데서는 8, 9, 3, 2에 지팡이 모양이 있습니다. 상당히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859, 858, 853, 852…’ 어떤 숫자도 승인되지 않았어요. 가운데 5가 설마 6인가, 라고 의심하고 나니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의욕이 사라진 자리에 부아가 치밀었습니다. 지갑이 도착하는 게 빠를지, 카드를 재발급 받는 게 빠를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가늠해보면서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NFC를 이용하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진작에 스마트폰 결제서비스를 이용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입니다. 2015년 여름 즈음부터 ‘애플 페이’, ‘안드로이드 페이’, ‘삼성 페이’등의 서비스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주로 NFC근거리무선통신을 활용했습니다. NFC 역시 반도체이자 안테나로서 RFID와 유사하지만, 양방향 통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NFC가 내장된 스마트폰은 단말기가 될 수도 태그가 될 수도 있죠. 예컨대 매장 결제 시에는 태그로서 기능하지만, 다른 교통카드의 잔액을 확인할 때는 단말기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스마트폰에서 자기장을 생성해 기존의 마그네틱 인식 단말기에서도 사용가능한 MST자기보안통신 방식도 있긴 합니다만, 당분간 모바일 페이에서 NFC 만큼 뜨거운 화두는 없을 듯합니다.

 

바코드든, IC 카드든, NFC든 지금까지 사용자는 여기에 대해서 굳이 세세하게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숫자를 사용하지만 숫자가 드러나지 않은 채 사람들의 편의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척 좋은 기술이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공대생은 아니거든요. 또한 세상은 공대생의 눈으로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반도체는 청소부, 소방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