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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라이프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 반도체가 구현한 또 하나의 역작

2020.12.16|by 김국현

 

▲ 사진제공: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뉴욕 맨해튼 마천루를 종횡무진 경쾌하게 뛰어노니는 박진감, 거미줄을 그네 삼아 노을 진 창공 속으로 치솟는 상쾌함, 생체 전기 베놈 펀치로 공간을 응축한 듯 휘날리는 공격의 타격감까지. 뉴욕 전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액션 게임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Marvel’s Spider-Man: Miles Morales)’는 과연 명불허전이다.

2018년 출시된 전작 ‘마블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이 슈퍼 히어로 게임 역사상 최대 기록인 2,000만 본의 판매고를 기록한 만큼, 이번 작품 역시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 5 개막을 함께한 독점 타이틀 중에서도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전작의 개발사인 인썸니악 게임즈(Insomniac Games)는 2019년 2억 2,900만 달러에 소니에 인수된다. 스파이더맨의 반짝 성공 덕분에 소니가 사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향후 소니의 최신 하드웨어를 가장 잘 활용해 줄 소프트웨어를 확보하고 싶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PS5와 스파이더맨의 만남…디테일과 속도감, 두 마리 토끼 모두 잡다

게임 콘솔 시장에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은 소프트웨어의 승리였다. 너티독의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처럼 작품성으로 하드웨어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전용 타이틀을 확보한 덕이었다. (연관기사 몰입감의 차원이 다른 ‘실리콘 시네마틱’의 새로운 예술 형태, The Last of Us Part II) 그 성과는 지난 PS4 시대 XBox에 대한 지속적 우위의 비결이 됐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튜디오’라고 총칭되는 콘텐츠 군단의 14번째 '퍼스트 파티 스튜디오’가 된 인썸니악은 하드웨어 활용의 예술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의 달인 집단이었다. 이미 오큘러스를 위한 독점 VR 타이틀을 3편이나 만들어냈을 정도로 신기술 흡수와 트렌드에 능했다. 특히 독자적 자체 엔진에 녹아 있는 인썸니악의 기술은 SIMD1)와 스레드(Thread)2)를 잘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 Single Instruction Multiple Data. 하나의 CPU 명령어를 동시에 여러 데이터에 적용해 병렬로 처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파를 여러 줄 손에 쥐고 채썰기를 하는 식이다
2) 동시 병렬 처리를 위해 처리를 분할하는 단위. 하나의 프로세스 내에서 여러 스레드가 각각의 실행 맥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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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인썸니악 게임의 움직임에는 생동감이 있다. ‘라쳇 앤 클랭크(Ratchet & Clank)’처럼 쏜살같이 3차원 공간을 내달리는 느낌은 압권이다. 이는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파이더맨이 돼 광활한 뉴욕시 어디로 뛰어들든 디테일이 살아 있다. 손에서 거미줄을 놓고 어느 위치에 내려앉아도 순간적으로 데이터를 빨아들여 주변 풍경을 준비해 놓기 때문이다. 기술력의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코드로 차별화를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처음에 준비해야 할 기본 데이터의 양이다. 하드디스크가 달린 PS4에서는 대작 게임일수록 처음 시작할 때 한참을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PS5의 초고속 SSD는 무려 초당 5.5GB의 전송 속도를 자랑한다. 이는 현재 시판 PC용 양산품으로는 흉내 내기 힘든 특별한 제작·설계 사양이다. 어지간한 준비는 1초 만에 끝낼 수 있다. 

지금까지는 플레이어가 게임 로딩 시간을 지루하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로딩하는 동안 게임 팁을 알려주거나 해 주의를 분산하는 것이 상례였다. 특히 게임 중 죽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때 그 좌절감에 로딩 시간은 더 길어 보일 때도 있는데, 그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전체 체험이 한층 쾌적해졌다.

PS5에서는 특히 초반 로딩 시간이 매우 짧아 마치 동영상이라도 튼 듯 바로 게임 플레이를 시작할 수 있다. PS5의 로딩 속도는 PS4의 몇 배 수준이 아니라 최소 10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반사되는 빛 하나하나까지 구현한 그래픽, 이를 가능케 한 첨단 반도체 기술 

PS5 런칭 타이틀이 되는 것은 나름의 영예지만 마블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도 아직 PS5 전용 게임은 아니다. 시기상 시장을 지배 중인 구기종 PS4를 함께 지원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그 덕분에 두 기종에서의 성능 차이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영상미다. PS5에는 피델리티(Fidelity) 모드가 마련되어 있는데, 레이 트레이싱(Ray Tracing)3)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통유리가 많은 모던한 고층 빌딩, 특히 겨울 뉴욕의 젖은 노면에 비치는 도심의 풍경은 석양의 빛과 어우러져 빛의 향연을 펼친다. 게임 속 세상의 다양한 광원이 직간접적으로 뿌리는 빛의 입자 수를 생각해 보면 엄청난 양의 컴퓨팅 자원을 빠르게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게임 속 세상의 빛의 움직임, 그중에서도 반사를 광선(Ray) 하나하나 계산하듯이 현실적으로 재현하는 기술. 시각적 렌더링이란 결국 모두 빛의 효과이므로, 극도로 사실적인 재현이 가능하다. 

오픈 월드4)의 자유도 높은 게임으로 대도시 뉴욕을 여행하는 기분은 색다르다. BLM5) 벽화 등이 특히 눈에 띈다. 흑인 문화의 심장이 된 이스트 할렘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히스패닉도 많이 거주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주인공을 흑인과 히스패닉의 혼혈로 설정한 것부터 의미심장하다. 이런 주인공이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가족이란 소재로 잘 풀어냈다. 스토리만 놓고 평가해도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스토리텔링에 잘 녹여낸 수작이라 할 만하다. 

4) 동선이 제한되는 스토리 중심 게임과 달리 비선형 스토리와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게임 방식.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플레이의 제약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5)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뜻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잔인하고 폭력적인 대처에 대항하는 인권운동.

‘시스템 셀러(System Seller)’라는 말이 있다. 특정 게임이 정말 하고 싶어서 그 시스템까지 사게 만드는 게임을 말한다. PS4와의 격차는 두드러지지만, PS4로도 즐길 수 있기에 과연 시스템 셀러의 역할을 해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겨우 PS5가 출시된 시점일 뿐. 인썸니악은 “아직은 모두 PS5의 겉만 긁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초당 5.5GB의 SSD, 초당 450GB의 GDDR6 메모리의 위력은 이제부터다.

 

※ 본 기사는 기고자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