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닮은 로봇과 특정 주제를 놓고 지적인 토론을 하고, 때론 소소한 대화를 통해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일상. 로봇이 공사장이나 재난 현장에서 위험한 일을 대신해줘 인간은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 사회. 집안일 같은 단순 반복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의 창의력과 사고 능력이 필요한 일만 하면 되는 세상. 로봇의 도움으로 우주를 개척해 인간의 활동 반경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세계. 머지않아 반도체가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다.

휴머노이드 기술의 현 주소는?

휴머노이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 ‘Human’과 ‘~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접미사 ‘oid’의 합성어로, ‘인간과 가까운 지능과 신체를 가진 로봇’을 의미한다. SF 영화에서나 나오던 상상 속의 존재였지만,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가까운 미래 인류의 일상에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휴머노이드가 일상이 되는 미래는 얼마나 가까이 와 있을까? 처음으로 이족(二足) 보행에 성공한 휴머노이드는 1973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가토 이치로 교수팀이 개발한 ‘와봇-1(WABOT-1)’으로 알려져 있다. 단 몇 걸음에 불과했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다. 이후 걸음마 수준이던 로봇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고, 최근에는 로봇이 알아서 장애물을 피해 움직이거나 달리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가 개발한 아틀라스(Atlas)의 경우 파쿠르(Parkour, 주위 지형이나 장애물을 활용해 이동하는 곡예)는 기본이고,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인간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도 계속 기능이 향상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Softbank)의 ‘페퍼(Pepper)’, 홍콩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의 ‘소피아(Sophia)’와 같은 최신 휴머노이드는 카메라와 오디오 인식 프로그램으로 대화 상대의 표정과 음성을 인식한 뒤 AI 알고리즘으로 이를 분석해, 인간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고 몇 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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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가 뉴스앵커로 등장해 뉴스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 제공: KAIST)

우리나라 기술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로는 한국과학기술원의 ‘휴보’ 시리즈가 첫손에 꼽힌다. 2015년 미국의 재난대응 로봇 경진대회인 ‘다르파 로봇 챌린지(DRC)’에서 세계 유수의 휴머노이드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세계에 한국의 높은 로봇 기술 수준을 과시한 바 있다. 이후 휴보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고, 올해는 TJB 대전방송에서 뉴스 앵커로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휴머노이드는 시장 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 ‘리포트앤리포트’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시장은 2023년 39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1) 시장조사기관 ‘모도 인텔리전스’도 관련 시장이 2024년 약 33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봤다.2)

1) 기획경제부 블로그(http://blog.naver.com/mosfnet/221971807614)
2) SAMJONG KPMG Newsletter 2019년 12월호(https://home.kpmg/kr/ko/home/newsletter-channel/201912/emerging-trends.html)

물론 휴머노이드가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산적해 있기 때문. 현재의 휴머노이드는 배터리 문제로 구동할 수 있는 시간과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며, 인공지능 수준도 사람과 비교하면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 외형 역시 대부분 사람보다는 기계에 가깝고, 데이터 저장/처리방식 역시 자체 저장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식이 아닌 외부 클라우드와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무수한 일상의 변수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미래형 휴머노이드의 외형 – 인간과 똑같은 촉감과 외형을 가진 ‘전자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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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상용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성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일상에서 접할 때 느끼게 될 위화감을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들은 금속으로 만든 뼈대 자체가 그대로 노출되는 형태로 ‘사람’이라기보다는 ‘로봇’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성능이 완성되지 않은 만큼, 외형보다는 기능 자체를 구현하는 데 더 집중해온 것. 

또한, 로봇을 사람과 비슷한 외형으로 꾸미기 위해서는 색상과 형태는 물론 촉감까지 모든 측면에서 사람의 피부를 모방한 ‘전자피부(Electronic skin)’가 필수적인데, 그간 전자피부 분야는 로봇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의학적인 목적으로 연구개발이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로봇 개발이 가시화되면서 최근 학계를 중심으로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에 조만간 사람 피부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의 전자피부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자피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실리콘에 센서를 넣는 형태의 전자피부가 주로 연구됐는데, 피부의 유연성을 재현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이후 그래핀과 같은 탄소화합물이 첨가된 유기재료가 개발되면서 연구에 탄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특히 그래핀의 경우 열전도율이 매우 높고 전자 이동성이 뛰어나면서도 투명하고 재질이 유연해, 전자피부에 가장 적합한 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세계 각국 연구진들의 노력이 이뤄졌고, 최근 3~4년간 관련 연구성과가 쏟아졌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 공과대 연구팀은 2017년 태양에너지와 그래핀을 활용해, 겉 표면은 부드러우면서도 내장된 전자 칩을 통해 외부 자극을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피부 촉각 수용체와 유사한 센서를 만들어 전자피부에 이식한 뒤, 태양에너지를 흡수해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작동방식을 구현했다. 

이듬해인 2018년부터는 감각을 감지하거나 스스로 자가 회복하는 등의 기능이 탑재된 전자피부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University of Colorado)의 지엔량 샤오(Jianliang Xiao) 교수 연구팀과 웨이 장(Wei Zhang) 교수 연구팀은 2018년 2월 손상이 발생해도 자가 회복이 가능한 전자피부를 공개했다. 연구팀은 탄소와 질소의 이중결합을 반복해 만들어 흠집이 나도 쉽게 회복되는 고분자 화합물인 ‘폴리이민(Polyimine)’을 주재료로 전자피부를 만들었다. 또한, 안정성과 강도를 위해 은 나노 입자도 첨가했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교(University of Connecticut)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공동연구팀은 2019년 2월 실제 피부에서 느끼는 것 이상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실리콘 튜브를 구리 선으로 감싸고 nm(나노미터) 크기의 산화철 입자 유체를 튜브에 채워, 주변의 전기 신호를 통해 환경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자기장과 음파를 감지해 특수한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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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각의 고통 신호 생성을 모방한 인공센서 및 신호처리 기반 인공 고통 신호 생성 모식도(이미지 출처: DGIST)

전자피부는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경쟁력이 우수한 분야이기도 하다. 장재은 DGIST 정보통신융합전공 교수팀은 지난해 7월 DGIST 뇌·인지과학전공 문제일 교수팀, 정보통신융합전공 최지웅 교수팀, 로봇공학전공 최홍수 교수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사람처럼 고통과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촉각 센서를 개발했다. 특히 고통을 느끼는 센서를 개발한 것은 휴머노이드 개발에 있어 걸림돌이자 위험요소인 로봇의 공격성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것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김도환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팀은 같은 해 9월 사람의 촉각세포를 모방해 미세한 압력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전자피부 소재를 개발했다. 기존 감지 방식은 물리적 자극을 받으면 소재 형태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전기적 신호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센서의 민감도가 떨어졌다. 김 교수팀은 사람의 피부를 구성하는 촉각세포의 세포막 구조와 외부 자극에 따라 나타나는 생체이온의 신호 전달 메커니즘을 모방한 인공 촉각 세포를 개발해, 민감도가 매우 높은 전자피부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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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보다 20배 높은 초고감도 투명 압력 디스플레이로 물체의 표면정보를 읽어내는 모습.(이미지 출처: ETRI 실감소자원천연구본부 플렉시블전자소자연구실)

올해도 국내 연구진의 관련 연구성과가 두드러졌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실감소자원천연구본부, 서울대학교 전자컴퓨터공학부, 소프트로보틱스연구센터(SRRC) 공동연구팀은 지난 2월 미세한 압력변화를 감지해 압력을 가한 물체의 3차원 표면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는 초고감도 투명압력센서를 개발했다. 지난 5월에는 박형순·김택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연구팀이 사람 손바닥 피부의 특성을 모방해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 정교하게 조작이 가능한 전자피부를 개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전자피부 분야는 최근에서야 학계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어서 기업이 상용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분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자피부 시장을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꼽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포트’는 관련 시장 규모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7.2%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3) 

3)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웹진 VOL. 158(https://www.etri.re.kr/webzine/20200814/sub01.html)

미래형 휴머노이드의 뇌 – 인간의 두뇌에 도전하는 ‘뉴로모픽 컴퓨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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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노이드 개발에 있어 핵심적인 기술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지만, 인공지능(AI) 기술을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외형뿐만 아니라 행동 측면에서 인간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처럼 인지하고,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 

하지만 현재의 폰 노이만 컴퓨팅 방식4)으로는 대형 슈퍼 컴퓨터의 구현은 가능할지 몰라도 인간과 유사한 외형의 소형 휴머노이드에 탑재되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의 ‘깊은 신경망(DNN: Deep Neural Networks)’5)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여러 복잡한 인지 과제에서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성능을 입증했지만, 이러한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컴퓨팅 시스템의 에너지 효율은 인간 뇌에 비해 아직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6)

4) CPU, 메모리, 프로그램 구조를 갖는 프로그램 내장 방식의 범용 컴퓨터 구조
5) 입력층(input layer)과 출력층(output layer) 사이에 여러 개의 은닉층(hidden layer)들로 이뤄진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ANN). 현재 가장 최신의 인공지능들은 DNN을 기반으로 구현되고 있다.
6) 인공지능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동향, 오광일·김성은·배영환·박경환·권영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2020)

또한, 폰 노이만 컴퓨팅 방식은 연산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로 구성돼 있는데, CPU와 메모리 간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머신러닝(machine learning)7) 효율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나, 무어의 법칙8)에 따른 반도체 기술 혁신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어 기존 방식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성능과 전력 효율은 크지 않다. 

7) 인공지능이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예측을 수행하도록 하는 기술 또는 시스템(프로그램)
8) 반도체 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2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

실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경우 구동을 위해 1,000개 이상의 CPU와 200개에 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00만 개 이상의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인간 몸 크기의 휴머노이드에 탑재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이다. 설사 탑재할 수 있다고 해도 이를 구동하기 위한 전력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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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사람 뇌의 정보 처리방식을 모방한 반도체를 개발해 이런 한계를 뛰어넘는 ‘뉴로모픽9) 컴퓨팅 방식’이 새롭게 연구되고 있다. 사람 뇌는 뉴런과 시냅스가 병렬 구조로 이뤄져 병목현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를 본 따 실리콘에 트랜지스터를 포함한 몇 가지 전자 소자와 메모리 등을 탑재한 여러 개의 ‘코어(Core)’ 로 구성된 뉴로모픽 반도체를 개발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 

9) Neuromorphic. ‘뉴런(Neuron)의 형태(Morphic)’라는 의미

코어 내 일부 소자는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의 역할을 담당하고 메모리 칩은 뉴런과 뉴런 사이를 이어주는 시냅스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를 사람의 뇌처럼 병렬로 구성하면 훨씬 적은 전력으로도 더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사람 뇌처럼 학습하고 연산할 수 있어 복잡한 계산이나 추론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스스로 학습능력을 갖추고 사고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인공지능 구현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셈. 

뉴로모픽 컴퓨팅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 등에서 원천기술 확보를 목적으로 국가 주도 R&D 사업들이 시작되며 본격화됐다.10)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시작돼 2023년까지 10년간 10억 유로가 투자되는 Human Brain Project(HBP)를 통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도 2013년 ‘BRAIN Initiative’ 정책을 수립해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10) 인공지능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동향, 오광일·김성은·배영환·박경환·권영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2020)

글로벌 IT 기업들도 뉴로모픽 컴퓨팅 구현을 위한 반도체와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IBM은 2008년부터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가 주도하는 시냅스(SyNAPSE) 프로젝트에 참여해, 2014년 ‘트루노스(TrueNorth)’라는 뉴로모픽 반도체를 완성했다. 4,096개의 뉴로 시냅틱 코어로 구성된 이 반도체에는 100만 개의 인공 뉴런과 2억5,000만 개의 인공 시냅스가 연결돼 있다. 

인텔은 뉴로모픽 반도체 개발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인텔은 지난해 자체 개발 뉴로모픽 반도체인 ‘로이히(LOIHI)’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이를 기반으로 구현된 최신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 ‘포호이키 스프링스(Pohoiki Springs)’를 공개했다. 로이히는 13만 개의 뉴런을 갖춰, 전통적인 방식 대비 처리속도가 최대 1,000배 빠르고, 작업 효율도 최대 1만 배까지 향상된 뉴로모픽 반도체다. 포호이키 스프링스는 이런 로이히 칩 768개를 합쳐 작은 포유류의 뇌 수준인 약 1억 개의 뉴런을 갖췄다. 

또한, 인텔은 미국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 연구팀과 함께 동물의 후각 체계를 구현한 수학 알고리즘을 개발해, 자체 컴퓨팅 시스템을 구축했다. 올해 7월에는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연구팀과 함께 뉴로모픽 컴퓨팅 방식으로 시각과 촉각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인공지능 시스템에 단순한 연산 기능을 탑재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의 오감을 하나씩 구현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연구가 계속 진전되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명실상부한 휴머노이드의 뇌가 되는 날도 더욱 가까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형 휴머노이드의 저장장치 – 1㎟에 10억 GB 저장 가능한 ‘DNA 메모리’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의 양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처럼, 휴머노이드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 양을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기술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 미래 기술이 집약된 기술인 만큼, 이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데 요구되는 데이터 양을 감안하면, 현재의 낸드플래시 기반 하드디스크(HDD, Hard Disk Drive)나 대용량 저장장치(SSD, Solid State Drive)만으로는 휴머노이드 구동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두 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별도의 데이터 센터나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방식이 유력하나,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힘든 재난상황 같은 변수를 고려하면 오작동 가능성이 있어서 안정성이 우려되는 상황. 이에 휴머노이드에는 현 시점의 저장장치보다는 혁신적인 미래 반도체 기술로 구현된 차세대 저장장치가 탑재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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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력한 후보는 ‘DNA 메모리’다. 차세대 메모리 기술 중 DNA 메모리가 주목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DNA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질보다 높은 데이터 저장 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DNA는 이론적으로 1㎟당 약 10억 GB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또한 DNA는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수단답게 저장기간 또한 반영구적이다. 

DNA 메모리 구현의 핵심은 기존 0과 1로 이뤄진 이진법에 기반한 데이터를 아데닌(Adenine, 이하 A), 구아닌(Guanine, 이하 G), 시토신(Cytosine, 이하 C), 티민(Thymine, 이하 T) 등 DNA의 네 가지 염기서열로 변환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네 종류의 염기서열 중 A는 T와, G는 C와 각각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구조를 가지므로 A와 T의 결합은 0으로, C와 G의 결합은 1로 설정해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DNA 염기 서열로 인코딩한다. 이렇게 인코딩된 DNA 염기 서열은 기계에서 DNA 합성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고, 캡슐화(Encapsulation)해 저장할 수 있다. 데이터를 읽는 과정은 이와 반대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먼저 캡슐을 제거(DNA release)하고 DNA 해독 장치로 DNA 염기 서열을 읽는다(Sequencing). 이렇게 읽은 염기 서열을 다시 0과 1로 번역하면 원래의 데이터와 동일하게 데이터를 복원할 수 있다.11)

11) DNA 응용 기술 동향, 이재호·김도영·박문호·최윤호·박윤옥, 전자통신동향분석 제32권 제2호(2017)

처음으로 생체 DNA 구조를 인공 DNA로 모사한 것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 조지 처치(George Church) 교수 연구팀이다. 교수팀은 2012년 화학중합체로 인공 DNA를 만들고, 이진법 기반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A와 C는 0으로, G와 T는 1로 나타내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이후 저장해야 할 데이터를 인공 DNA에 변환한 후 이를 마이크로 칩 위에 배열해, 최초의 DNA 메모리를 개발했다.

이후 이어진 연구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2016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in the City of New York) 야니브 에를리치(Yaniv Erlich) 교수와 뉴욕게놈센터(New York Genome Center)의 디나 지엘린스키(Dina Zielinski) 연구원으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의 연구 성과다. 이들은 기존 방식을 사용하면서 DNA의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 1개당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을 획기적으로 확대한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기업 중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이 선두 그룹에 속해 있다. 그 중에서 MS가 가장 앞서가고 있다. MS는 지난해 디지털 정보를 유전자 코드로 자동 번역하고 이를 다시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비록 5바이트 데이터를 저장하고 다시 읽어내는 데 21시간이나 걸리지만, DNA 반도체를 활용한 읽기/쓰기를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상용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글로벌 유수의 연구진들이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최근에는 국가 단위의 프로젝트도 하나둘 출범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은 미래에는 ‘DNA 메모리’가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DNA 메모리 개발’이 지난 7월 과기부의 ‘혁신도전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등 국가적인 추진과제로 선정됐다. 미국의 경우에도 정보고등연구계획청(IARPA) 주도로 DNA 메모리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이 구성돼 올해에만 590억 원이 투자됐다. 미래 메모리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이 빠르게 결실을 거둔다면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휴머노이드가 상용화될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휴머노이드 로봇의 해외 연구 동향, 이이수·김지섭·김상현·이지은·김민곤·박재홍, 한국로봇학회(2019) 
핸슨 로보틱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hansonrobotics.com)
보스턴 다이내믹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bostondynamics.com)
소프트뱅크 로보틱스 코리아 공식 홈페이지(https://softbankrobotics.com)
한국과학기술원 공식 홈페이지(https://www.kaist.ac.kr)
전자피부 기술 동향, 홍용택·변정환·오은호·이병문, 한국정보디스플레이학회(2016) 
콜로라도대학 홈페이지(https://www.colorado.edu)
코네티컷대학 홈페이지(https://today.uconn.edu)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홈페이지(https://www.dgist.ac.kr)
한양대학교 홈페이지(http://www.hanyang.ac.kr)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홈페이지(https://www.etri.re.kr)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https://www.nrf.re.kr)
인텔 공식 홈페이지(https://newsroom.intel.com/press-kits/intel-labs/)
인공지능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동향, 오광일·김성은·배영환·박경환·권영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2020)
뉴로모픽 소자의 현재와 미래, 박종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2017)
뉴로모픽 하드웨어 기술 동향, 정두석, 한국물리학회(2019)
콜롬비아대학 홈페이지(https://magazine.columbia.edu)
DNA 응용 기술 동향, 이재호·김도영·박문호·최윤호·박윤옥, 전자통신동향분석 제32권 제2호(2017)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홈페이지(https://www.msit.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