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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전작 발매 이후 7년 만에 공개된 The Last of Us Part II는 뜨거운 논란을 불러왔다. 세계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 게임에 대한 평은 극렬하게 양분돼 플레이어를 논란으로 초대한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플레이어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긴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 때로는 불쾌하기도, 누군가에게는 쓰라리기도 한 뒷맛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 화제의 신작이 어떠한 생각거리를 건네주고 있는지 일체의 스포일러 없이 살펴보자.

The Last of Us Part II, ‘뜨거운 감자가 되다

The Last of Us Part II 개발사인 너티독(Naughty Dog)싱글 플레이어 단일 줄거리 게임이라는 전통적 어드벤처 게임 문법에 충실한, 요즘은 보기 드문 정통파 게임 회사다.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게임의 영속적이고 짭짤한 과금(서비스를 제공한 측에서 서비스를 사용한 사람에게 사용료를 받는 것) 모델 대신, 작품 판매고에 의존해야 하니 쉽지 않은 비즈니스다. 블록버스터처럼 개봉과 동시에 확실한 대히트를 터뜨리지 않으면 투자금을 회수하기 힘든 모험적인 사업 방식이다. 하지만 그저 모험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정통 어드벤처 게임은 언제나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이기 때문.

1984년 미국에서 창업한 노포(老鋪,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너티독은 2001년 소니(SONY)에 합병된다. 이후 노선을 바꾸기보다 오히려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이하 PS) 전용 독점 타이틀과 함께 전용 게임 엔진 및 툴을 제작·제공하는 팀을 함께 꾸린다. 양질의 명작 타이틀을 독점하는 것은 PS 생태계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에 모회사 소니도 밀어줬다.

잘 만들어진 싱글 플레이어 단일 줄거리 게임은 영화, 소설과 같은 종합예술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수동적으로 쳐다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영화에 비해 게임은 스스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플레이를 하든 엔딩은 같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지만, 플레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게임은 영화와 다른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운다.

게임 속 행동이 모두 시나리오 속에 운명처럼 정해져 피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플레이어는 조이스틱이나 마우스, 키보드로 그 순간 버튼을 눌러 스스로 상황을 만들며 그 속에 더 몰입한다. 엔딩까지 수십 시간에 이르는 플레이 타임이 쌓여 종반으로 갈수록 플레이어는 가상의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어간다. 이를 통해 전통적 예술 형태로는 경험할 수 없는 수준의 장기적이고 깊은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만약 각각의 플레이어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거북한 감정이 플레이 중 발생한다면 이는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불편한 장면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특히 전작을 통해 나름의 기대를 형성해 버린 속편의 경우에는 리스크가 더 크다.

06.png▲ 평론가(왼쪽, 94 Metascore)와 일반 플레이어(오른쪽, 5.5 User Score) 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출처 : 메타크리틱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이러한 이유로 평론가와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 이례적인 별점 차이가 났다. 이용자들이 별점 테러를 하기에 이른 것. 하지만 성인 대상 게임에서 윤리관이나 성 지향성과 같은 플레이어의 가치관을 직접 묻는 콘텐츠는 늘 있었다. 왜 유독 이 게임이 유난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을까? 그 해답은 The Last of Us Part II만의 남다른 몰입감에 있다.

모던 게임의 강력한 감정적 연결 기법 컷신’, 현실을 게임 속으로 가져오다

The Last of Us Part II의 그래픽은 유려하다. 이 현실감 넘치는 충실한 재현은 감정 조작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특히 컷신(Cut-scene, 게임 플레이 도중에 컷으로 삽입되는 스토리 영상)은 캐릭터들의 감정을 섬세히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컷신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비디오 게임 팩맨(Pac-Man)이다. 그냥 퍼즐을 풀거나 적을 무찌르는 오락을 넘어 주인공의 처지와 사연을 공감하게 해 플레이어를 게임의 세계에 감정적으로 연결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스토리로 동기부여하고 정서적 준비를 시키는 장치로서 컷신의 전통은 유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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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컷신은 게임 스토리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The Last of Us Part II 등장인물인 조엘 밀러(왼쪽)와 엘리(오른쪽)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컷신을 만들기 위해 제작사는 프로 영화배우의 연기를 모션 캡처(Motion Capture, 실물의 움직임을 디지털로 기록하는 일)하고 동시 녹음도 한다. 몸짓은 물론 표정과 리액션(Reaction), 애드리브(Ad-lib)까지 모두 캡처해 디지털화하고, 이를 게임 속에 복제하는 것.

때때로 컷신은 영화 이상의 완성도를 가지기도 한다. 특정 연기 장면이 동영상으로 고정돼 새로운 연기를 담기 위해서는 재촬영이 필요한 영화와 달리 모션 캡처된 데이터는 반도체 위에 살아있다. 컷 앤 페이스트(Cut and Paste, 잘라 붙이기)를 통해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연기 순서나 연기 상대, 배경도 바꿀 수 있으며 재활용도 가능하다.

결국은 3D 폴리곤(Polygon, 3D 컴퓨터 그래픽에서 면의 조합으로 물체를 표현할 때의 각 요소)의 조합이기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행동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후처리에 따라 그 생동감과 생명력이 오히려 이 세상 것이 아닌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관록 있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 데이터, 그리고 목소리는 하나하나의 재활용 가능한 어셋(Asset, 3D 모델이나 풍경화, 사운드 효과나 음악 등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으로 만들어진다. 가장 완벽한 감정적 동요를 선사하기 위해 배우의 연기마저 편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 속 캐릭터의 연기가 저장된 데이터에 카메라 시점을 새롭게 추가해 가며 다양하게 만들어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거쳐 플레이어들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최적의 타이밍을 맞추면 컷신이 완성된다. 납득될 때까지 개선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실리콘 시네마틱의 위력이다.

게임은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참여형 실시간 연극’, 몰입감의 차원이 다르다

상업 영화의 CG(Computer Graphics, 컴퓨터로 만들어진 화상이나 영상) 제작 방법은프리(pre)’ 렌더링¹(Rendering, 2차원 혹은 3차원 데이터를 사람이 인지 가능한 영상으로 변환하는 과정)이다. 필름, 즉 영상 파일이라는 최종 결과물을 뽑아내기 전에 렌더링이 먼저 완료된다. 하지만 현대 AAA 게임²의 삽입 영상, 즉 컷신은 영화처럼 단순히 비디오 파일을 만들어 때가 되면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게임 진행 도중에리얼타임 렌더링’, 즉 실시간으로 그 위에 그려낸다.

1) 프리 렌더링(Pre-Rendering) : 영상이 실시간으로 렌더링되는 리얼타임 렌더링과는 달리, 사전에 렌더링이 완료돼 영상 기기에서는 출력 또는 재생만 가능한 방식.

2) AAA 게임(Triple-A Game) : 대형 게임사가 대량의 자본을 투자해 주로 멀티플랫폼으로 발매하고, 수백만의 판매량을 기본으로 기대하는 게임을 일컫는 말

이처럼 게임에서는 능동적 영화 체험(Active Cinematic Experience)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The Last of Us Part II는 현존하는 게임기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그래픽 시스템을 완성했다. 인체의 움직임 및 표현은 물론, 물이나 불과 같은 어려운 물질을 그려내는 일에도 위화감이 적다. 폐허가 돼 녹지로 뒤덮인 시애틀 도심의 디테일, 빛과 바람을 따라 흔들리는 잎사귀들을 보면 감탄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프리렌더링된 CG가 아니라 지금 실시간으로 계산돼 반도체 위에 그려지고 있는 살아 있는 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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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게임은 반도체라는 무대 장치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필름과 종이 위에서 재생되는 스토리와 달리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실시간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The Last of Us Part II버디 다이얼로그(Buddy Dialog, 게임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의사소통)’ 기능이 대표적인 사례. 이를 통해 내가 조작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컴퓨터가 조작해주는 파트너 캐릭터와의 일상적 회화가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이어진다.

마치 라디오나 팟캐스트(Podcast, 신문을 구독하듯이 인터넷을 통해 특정 콘텐츠를 구독하는 서비스)처럼 등장인물 사이에 끊임없는 대화와 추임새가 이어지는데, 캐릭터들의 개성에 빠져들다 보면 스스로 주인공이 된 듯 착각하게 된다. 이 대화는 스토리를 전개하고 게임의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 그러나 이조차도 시간순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시공간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합돼 실연(實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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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of Us Part II의 ‘버디 다이얼로그(Buddy Dialog)’ 기능. 플레이어가 주인공 캐릭터를 조작하고 있으면 상황에 맞게 주변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간다.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이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즉흥 발언들이 반도체 속에 충분히 저장돼 플레이어 상황에 맞게 취사 선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임 진행을 서두르거나, 모든 오브젝트를 꼼꼼히 다 즐겨보거나 게임 플레이어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무엇이 빠지고 빠지지 않아야 할지 그리고 빠지더라도 위화감 없이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갈지는 반도체에서 실시간으로 계산된다. 즉 모든 스토리와 캐릭터는 저마다의 메모리 공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 위의 게임 체험, 예술이라는 새로운 도달점에 이르다

게임 표현의 사실성이 높아진 시대. 대작 게임은 대작 영화보다 완성까지 몇 배나 오랜시간이 걸린다. The Last of Us Part II 6년의 제작 기간이 걸렸다. , 대개의 대작 영화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다. 이 게임의 엔딩을 보기까지 드는 시간은 평균 25시간. 드라마 1~2시즌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게임 내 상황에서도 예외는 없다. The Last of Us Part II는 곧 쓰러질 적, 스쳐 지나갈 NPC(Non-Player Character, 유저가 아닌 게임 속 등장인물)라고 하더라도 모두 메모리 용량과 연산 프로세스를 부여받고, 그들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대화한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인기척을 느꼈을 때 그들의 대화에서 당황함과 두려움이 전해진다. NPC마다 감정과 연결된 대사가 생성되는 셈이다. 플레이어가 적을 쓰러뜨리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동료들이 뛰어온다.

문제는 플레이어 입장에서 좀처럼 공감되지 않는 악역을 상당 기간 플레이해야 하는 경우다. 상대의 시점을 화자로 삼는 일은 영화와 소설에서도 이미 있었던 일이다. 모두 같은 인간, 저마다의 사정이 있음을 이해하게 하는 장치이지만, 게임에서는 그 불편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그를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말 돼야 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순간 마주하는 상대들과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감정을 행동으로 확인한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그냥 눈물을 흘리거나 눈을 질끈 감아버릴 수도 없다. 정의와 윤리를 되묻는 듯한 결정적 컷신에서도 버튼을 누르라는 아이콘이 깜빡인다. 현실의 플레이어들은 주저하고 머뭇거리면서도 게임 진행을 위해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다. 선택에 이어 게임이 진행되면 당황할 새도 없이 캐릭터가 쥐고 있는 칼날이 적에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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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ast of Us Part II는 인간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사진제공 : 소니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코리아)

게임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윤리적인 인사이트(Insight)를 선사할 수 있다. 게임을 통해 불편한 입장과 상황에 놓이고 직접 움직여 불편한 테마에 다가갈수록, 그 과정에서 숨겨져 있는 감정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믿어온 정의와 윤리도 결국은 제각각의 처지에 의해 만들어진 상대적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소한 느낌에 젖기도 한다.

게임을 궁극의 종합예술 또는 최종적 예술 형태라고도 말하는 연유도 이 거북함에 있다. 예술은 우리의 평온한 마음을 흔들어 깨우고, 질타하며, 괴롭힌다. The Last of Us Part II는 플레이어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여러 해석을 내놓게 하지만, 결국 플레이한 모두의 마음을 거칠고 아프게 한다. 반도체라는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게임이라는 낯설고 새로운 형태의 실연은 그렇기에 2020년 현재 이미 어엿한 예술 형태가 됐음을 이 게임은 알려주고 있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에디토이

김국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