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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DO/인사이드

[띵작은 회로를 타고] 럼블피쉬 ‘비와 당신’, 그래픽 D램 1등을 향한 DNA를 깨우다(세계 최초 40나노급 2Gb 그래픽 DDR5 개발)

2020.07.27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이 된다. 바쁜 일상이 고될 때 추억을 꺼내 다시 힘을 얻기도 한다. 때론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띵작은 회로를 타고시리즈를 통해 추억의 명곡과 함께 SK하이닉스의 그 시절 그 반도체를 함께 추억해보자.

 

Oldies but Goodies, 우리가 옛 노래를 찾는 이유

실종된 90년대 감성의 여름 노래를 찾아 나선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유재석, 이효리, )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이들이 리메이크한 듀스의 ‘여름안에서(1994)’ 90년대 감수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시 여기 바닷가(2020)’는 최근 각종 음원차트를 휩쓸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싹쓰리의 음악은 2014<토토가> 열풍 이후 또다시 90년대 음악 감성을 소환해 많은 사람을 추억에 젖게 했다.

옛 음악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강력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매회 추억의 노래로 시청자에게 소소한 힐링을 선사했다. 주인공들이 모여서 만든 5인조 밴드 ‘미도와 파라솔’이 들려준 ‘내 눈물 모아(서지원, 1996)’,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베이시스, 1995)’, ‘아로하(쿨, 2001)’ 등 옛 노래는 주인공의 과거 서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어줬다. 이후 발매된 이들의 리메이크곡은 시청자의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며 드라마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라디오스타>(2006) 역시 우리에게 음악으로 기억되는 작품 중 하나다. 영화의 OST ‘비와 당신’은 주인공 최곤(박중훈 분)을 1988년 가수왕으로 만들어준 그 시대 최고의 명곡이다. 각종 사건·사고로 퇴물 가수로 전락한 최곤 곁에는, 늘 오랜 시간 함께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분)가 있다. 이들의 진한 우정은 ‘비와 당신’이라는 OST와 함께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비와 당신’은 <라디오스타>의 음악감독 방준석이 영화 제작 당시 만든 노래다. 오래된 음악은 아니지만, 스토리와 어우러지며 관객을 극의 배경인 1980~1990년대 시절로 소환했다. 이후 이 곡은 영화보다 더 유명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008년 가을에는 밴드 럼블피쉬가 동명의 리메이크곡을 발표하며 또 한 번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반도체 개발에도 때로는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하다

2008년 어느 날,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반도체) 설계분석실에서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이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이곳에선 새로 개발 중인 그래픽 D램의 성능 테스트가 한창이다. 음악을 틀어놓고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연구에 매진 중이던 조주환 담당(DRAM PE)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늘 최첨단 기술의 끝에서 속도를 좇는 개발자이지만 그에게는 ‘느린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사진’이다.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를 선호하는 그는 암실까지 장만해 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할 정도로 열성이다. 빠른 템포의 음악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옛 음악을 좋아하는 조주환 담당의 이 같은 아날로그 감성 역시 더 빨리 나아가기 위한 그만의 비법이자 원동력이다. 그에게 ‘비와 당신’은 12년 전 기술개발을 위해 열정을 쏟던 당시의 노동요이며, 동시에 그래픽 DDR5(이하 GDDR5)를 추억하게 만드는 매개체다.

“그래픽 D램은 빠른 데이터 처리가 미덕인 만큼 ‘속도’에 특화된 제품입니다. 그래픽 D램을 통해 고속 동작을 구현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향후 메인 메모리 D램이나 모바일 D램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어 경쟁사보다 고성능의 제품을 적기에 출시할 수 있죠. SK하이닉스도 당시 7Gbps(초당 7기가비트 데이터 처리) 속도를 목표로 새로운 그래픽 D램인 GDDR5를 준비 중이었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느린 속도지만, 그 당시에는 SUPEX(Super Excellent, 인간이 도달 가능한 최고의 수준을 뜻하는 SK그룹 경영 핵심 개념)였죠. 처음부터 이렇게 높은 타깃을 설정한 건 바로 D램 시장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습니다”

‘7Gbps’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설계를 모조리 바꿔야만 했다. 이에 당시 설계팀은 D램 업계 최초로 ‘2-Phase Clocking’ 설계 기술을 적용하는 시도를 했다. 클로킹(Clocking)은 데이터 전송 시 보내고 받는 송수신 데이터를 동기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2-Phase’는 주기를 이등분해 클록(Clock)신호를 늘려 동작의 여유 시간을 확보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기존에는 하나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물을 흘려보냈다면, 이를 두 개의 파이프라인으로 나누어 물을 흘려보낸 뒤 합치는 개념이다.

사실 조주환 담당은 전 세대인 GDDR4에도 ‘2-Phase Clocking’ 기술을 시도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다. 그에게 GDDR4는 아픔이자 값진 교훈이었다. 따라서 성공하고 싶은, 성공해야만 했던 제품인 GDDR5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당시 연차에 비해 일찍 프로젝트 리더를 맡은 만큼 책임감과 절실함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경쟁사보다 빨리 기술을 개발해내야 한다는 마음에, 가끔은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저 자신을 너무 해치는 것 같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한 템포 쉬어가는 시간을 종종 가지려고 합니다. GDDR5 개발 당시에도 음악을 틀어놓고 분석 업무를 하곤 했죠. ‘비와 당신’은 개발 당시 즐겨 듣던 노래 중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 노래를 듣게 되면 당시 생각이 나 웃음 짓곤 합니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장점유율로 증명한 ‘클라스’, 세계 최초 40나노급 2기가비트 그래픽 DDR5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제품이 바로 세계 최초로 40나노급 공정을 적용한 2기가비트(Gb) GDDR5다. 7Gbps의 처리속도로 32개의 정보입출구(I/O)를 통해 초당 28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용량 또한 기존 50나노급 1Gb 제품보다 2배 증가해 고용량 제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1.35V의 저전력 동작으로 에너지 소모를 기존 대비 20% 줄였다.

▲하이닉스반도체(SK하이닉스 전신)가 개발한 40나노급 2기가비트(Gb) 그래픽 DDR5 제품

그래픽 D램은 범용 D램 대비 많은 용량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처리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GDDR5는 고화질 고속동작이 요구되는 고급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에 최적화된 제품이었다.

“그 당시에도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제품이 출시될 때 남들보다 먼저 구입해 사용하는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그래픽 카드가 출시되면 각종 프로그램을 이용해 성능을 측정해 공유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SK하이닉스의 그래픽 D램은 오버클로킹(Overclocking, 칩의 성능을 인위적으로 실제보다 빠르게 조작하는 것)이 잘 되는 제품이라는 반응이 많았고, 성능 면에서 소비자의 선호도도 매우 높았죠. 그만큼 경쟁력이 높았던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하이닉스반도체는 세계 최초로 60나노급 1Gb GDDR5(2007)과 50나노급 1Gb GDDR5(2008) 개발에 성공하며 그래픽 D램 시장의 50% 정도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이어 GDDR5 제품 개발로 70%에 육박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게 됐고, 고성능 그래픽 D램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며 시장을 선도할 수 있게 됐다. 

27년간 D램 설계 업무를 맡아 SK하이닉스의 발전에 기여해온 조주환 담당은 대내외에서 여러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그동안 사내 연말종합포상, 38nm 그래픽스 특별포상, SKMS실천상 등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30mm급 GDDR5 설계기술 확보로 기술 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반도체의 날’ 장관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화려한 이력만큼 조주환 담당을 거쳐 간 제품도 많지만, 40나노급 2Gb GDDR5는 그에게 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에게도 1등 DNA가 있고, 이를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각인시킬 수 있었던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느꼈던 성취감은 지금까지도 큰 원동력이 됐죠. D램 시장의 전체 규모로 보았을 때 아직 우리가 1등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분야 한 분야에서 1등을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전체 시장에서도 1등을 하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우리 후배들도 GDDR5와 같은 좋은 선례들을 기억하며 자신감을 갖고 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