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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수업> 캐릭터 포스터(사진제공 : 넷플릭스)

<인간수업>은 2020년 4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10부작 드라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자극적인 소재로 입소문을 탔다. 미성년자가 알선하는 미성년자의 성매매. 사회면 뉴스에서는 가끔 보여도,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쓰기엔 너무 자극적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청소년 관람 불가 딱지를 달았다.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인간수업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갖춰진 세상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매개되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은 때때로 반대로 이용된다

주인공 오지수(김동희 분)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학교에서는 조용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지만, 알고 보면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조건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잘 진행되던 사업에 지수가 짝사랑하던 배규리(박주현 분)가 끼어든다. 부자지만 자신을 숨 막히게 옭아매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규리는 지수의 사업을 확장해 돈을 더 벌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깡패들과 엮이게 되고, 갖은 위기를 겪으며 이야기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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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수업> 메인 예고편 영상 캡처.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를 통해 사용자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

지수가 조건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쓰는 것은 강아지가 그려진 채팅 앱이다. 중학생 때, 그의 양친이 집을 나간 이후 유튜브로 코딩하는 법을 독학해 직접 앱을 만들었다. 앱으로 요청이 들어오면 젊은 여성과 매칭을 해주고, 만약 그 여성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위치 추적 기능을 이용해 경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수가 이런 앱을 만든 이유와 손님을 모으는 모습은 상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이미 시청자들이 알고 있듯이,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사업은 콘텐츠만 다를 뿐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형적인 플랫폼 서비스다. 

플랫폼 서비스는 초기 온라인 상거래 모델인 오픈마켓이 성공하면서 자리 잡은 비즈니스 모델. 서비스 업체는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거래가 성사될 경우 판매자, 또는 양쪽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나 숙소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은 공유 경제 사업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인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좋은 콘텐츠만을 위해 사용되면 좋겠지만, 때때로 기술은 반대로 이용당한다.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위해 지켜냈던 인터넷 익명성은, 악행을 숨기는 도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누구나 쉽게 코딩을 배워 앱을 만드는 유튜브 무료 강의는, 범죄의 매개체가 되는 앱을 만드는 교과서가 된다. 음성 인식 및 음성 합성 기술은 범인이 숨기 좋은 가면으로 사용된다. 지리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 개방된 위치 정보는 누군가를 추적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기술은 사람이 쓰는 도구일 뿐, 사람이 악의를 위해 쓰겠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기술은 사람이 움직이는 모습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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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수업> 메인 예고편 영상 캡처

인터넷 초창기 시절엔 이런 플랫폼 서비스의 장점이 더 부각됐다. 시공간의 제약을 없앤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해, 생산자와 소비자간 직거래가 가능해졌기 때문. 오픈마켓 서비스도 처음엔 경매를 통한 개인 중고 물건 판매 서비스로 시작해,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자 신뢰 문제가 불거졌고, 사기를 치는 사람이 많아졌다. 결국 플랫폼 업체는 거래대금을 임시 보관하는 기능을 만들었고, 소비자를 위해 리뷰와 별점을 매기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지수도 거래자들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지수가 고용한 이 실장(최민수 분)은 전직 군인이자 노숙자이고, 실제 종사자들을 경호를 제공하는 사람이자 조건 만남을 뛰는 사람들의 보험이다. 사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존재로 마치 플랫폼의 고객 서비스인 에스크로서비스(escrow service, 구매자의 결제대금을 제 3자에게 예치하고 있다가 배송이 정상적으로 완료된 후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하는 거래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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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인터넷 상거래는 신뢰 문제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플랫폼 서비스는 별점 시스템을 도입해 소비자들을 안심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익명성 뒤에 숨은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는 한다. 가면을 벗기 위해 가면을 쓰는 셈이다. 그렇기에 신뢰가 없는 사이에서 이뤄지는 거래일수록 항상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리뷰나 별점이 바로 그 근거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아도 구매자가 조건 만남 대상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처럼 기술을 이용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수업>에서는 기술로 매개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야기 중간에 지수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자, 일하던 여성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나간다. 채팅방에 들어오면 관계가 형성되고, 나가면 끊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메신저 하나로 사람과 관계를 맺기도 하고 왕따를 시킬 수도 있다.

기술이 우리를 나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기술이 우리를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최근 불거진 N번방 사건에서 놀랐던 것은, 많은 사람이 채팅창이나 동영상 너머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돈을 주고 콘텐츠를 사고 있다고 여겼고, 무료로 콘텐츠를 얻기 위해 방장이 원하는 작업을 했다. 

많은 사람이 분노했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은 기존 아프리카 TV BJ(Broadcasting Jockey)나 유튜버를 대하는 시청자의 행동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주고, 카메라 너머 저편에 있는 어떤 이의 행동을 후원 제도를 통해 ‘산다’. 또한 그러한 행동에 리뷰와 별점을 매기며 우월한 지위에 있는 기분도 맛볼 수 있다. 그들에게 후원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실제 관계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관계가 달라지지만, 거래 관계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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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이 우리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다

지수는 이 사업이 들킬까 계속 불안감에 시달린다. 중간에 멈출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명문대에 가 좋은 직장을 얻고 따뜻한 가족을 만드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수의 꿈 속에는 계속 아버지나 선생님 같은 어른이 나타나고, 지수는 그들에게 ‘이것이 수행평가에 반영되느냐’고 묻는다. 이는 지수 역시 리뷰, 별점이나 다름없는 수행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수도 자신들이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사회에서 살아남고 싶다는 삐뚤어진 간절함이 도덕적인 경계선을 넘도록 부추겼고, 그 부추김에 넘어갔을 뿐이다. 지수처럼 우리는 기술을 알고 쓴다. 해도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도 생각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술이 우리를 나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면 핑계다. 알면서 나쁜 짓을 했으니,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기술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생각의 방향에 따라 기술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언제나 양날의 칼이다. 뭔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만, 어떻게 기술을 쓰며 살지는 스스로 택해야 한다. 지수처럼 특정 앱을 쉽게 만들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당장은 큰돈을 못 벌어도 더 밝은 미래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술을 사용하는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 다른 미래가 찾아온다. 그렇기에 기술은 차려놓은 밥상이 아니라, 다른 미래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반도체도, 컴퓨터도, 인터넷도, 로봇도 모두 그런 길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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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수업> 보도스틸컷(사진제공 : 넷플릭스)

만약 지수가 자신의 실력으로 다른 것을 중계했었다면 어땠을까? 초능력자를 중계했다면 SF 액션 드라마가, 과외선생님을 중계했다면 SKY캐슬이, 고등학생 프로그래머를 모았다면 벤처 성공 드라마가 됐을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드라마 속 어른들은 그러지 못했지만, <인간수업>의 제목처럼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윤리 수업’을 해줄 어른이 필요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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