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감염 우려가 높은 외부 활동 대신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를 필두로 다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Over the Top)’1)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방송사가 내보내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즐기고 있다. 뉴스룸은 이처럼 TV의 대체재로 급부상한 OTT 서비스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IT 기반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짚어봤다. 

- 편집자 주

1) ‘OTT(Over the Top)’ :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

도비라.jpg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OTT’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각종 애니메이션과 마블 히어로 무비를 소유한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 공룡 디즈니는 ‘디즈니 플러스’를 론칭했고, 아마존은 자신들의 무료 배송 서비스에 영화와 전자책 서비스를 결합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출시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의 최대 통신사인 AT&T는 ‘HBO Max’를, 애플은 ‘애플tv+’를 발표하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OTT가 TV를 완전히 대체하는 날이 올까?

미국의 작은 DVD 대여점,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은 ‘콘텐츠 강자’로 성장하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OTT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OTT(Over the Top)’는 TV 셋톱박스(Top)를 넘어서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다. 케이블TV 선을 자른다는 의미로 코드 커터(Code Cutter)라고도 부른다. 사실 이 ‘OTT’라는 단어는 넷플릭스로 바꿔 사용해도 무방하다. 넷플릭스의 역사가 곧 OTT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1997년 미국의 작은 DVD 대여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로 거듭났다. 넷플릭스가 폭발력 있는 서비스가 된 것은 2010년 스마트폰을 비롯한 다양한 기기를 지원하기로 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 당시 무제한 요금제가 이미 보편적이었던 미국 사용자들은 데이터 걱정 없이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사용하게 된다.

옥자.jpg▲넷플릭스가 한국 진출 이후 최초로 선보인 오리지널 로컬 콘텐츠 <옥자>. (출처:네이버 영화)

미국 현지 사용자를 충분히 확보한 넷플릭스는 2011년 남미, 2012년 유럽에 진출한 데 이어 2015년 한국에 진출했고,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를 오리지널 콘텐츠(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해 IP를 보유하는 콘텐츠)선보이며 존재감을 알렸다. 이후 넷플릭스는 <킹덤> 시리즈 등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와 함께 각종 국내 인기 드라마와 예능, 한국 영화를 수급하며 성공적으로 국내 가입자를 유치해가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와 ‘사용자 중심 알고리즘’,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

이처럼 OTT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넷플릭스의 인기 요인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우스오브카드.jpg▲전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출처: 네이버 영화)

넷플릭스가 OTT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 데에는 자체 제작 콘텐츠인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공이 크다. 초기 넷플릭스는 소비자에게 영화나 TV 드라마 ‘다시보기’를 제공하는 VOD 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넷플릭스는 이런 인식을 바꾸고자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2013년 방영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주축으로 여러 시리즈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유통 플랫폼인 동시에 제작사로 거듭나게 됐다. 작품 방영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도입한 ‘몰아보기’, 즉 한 시즌을 한 번에 공개하는 전략 또한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 VOD 서비스라는 편견은 옅어졌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양질의 콘텐츠를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라는 인식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시대 변화에 발맞춘 사용성의 혁신도 눈여겨볼 만한 지점이다. 넷플릭스는 2010년 스마트폰을 지원하기 이전부터 이미 다양한 기기에 자사의 콘텐츠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이크로소프트 XboX, 소니 PlayStation 3 등의 게임 콘솔은 물론 인터넷이 연결된 케이블 TV 등 경쟁 매체로 불리는 기기에서도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지금은 자체 OS를 사용하는 삼성부터 LG TV, IPTV나 국내 케이블 TV에서도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PC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 간 호환성도 뛰어나 친구나 가족 간 영상 링크를 공유하기도 쉽다. 이렇게 거의 모든 환경에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N스크린’ 환경은 스마트폰 위주로 서비스하는 대부분의 업체들과 넷플릭스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인포01.jpg
▲사용자의 시청 내역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 콘텐츠를 추천하는 OTT 서비스의 알고리즘.

영상 스트리밍 기술도 독보적이다. 로딩이 끝나야 재생이 시작되는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넷플릭스는 화질이 좋지 않더라도 최대한 빨리 시작하고 그 뒤 화질을 올려 나가는 어댑티브 비트레이트(adaptive bit-rate) 기술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 사용자의 기기와 통신 환경에 맞춰 화질을 조절해가며 영상을 플레이하는 이 기술은 어디서나 끊김 현상, 즉 ‘버퍼링’ 없이 드라마나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히는 건 소위 ‘도플갱어식 알고리즘’이라 불리는 넷플릭스만의 개인화 추천 기술. 인구통계 기반이 아닌 콘텐츠 간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와 유사한 연결고리를 가진 사람이 시청한 영상을 추천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한국인이 좋아하는 콘텐츠 추천’이 아니라, 스릴러를 좋아하는 성향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역과 상관없이 같은 장르의 영상을 추천해주는 식. 이렇게 쌓인 대량의 데이터는 다른 업체들과 넷플릭스를 구분하는 강점이 되고 있다.

‘포스트 넷플릭스’, OTT 산업의 과제와 TV의 미래

하지만 이런 넷플릭스에도 한계는 있다. 가격이다. 처음에는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 케이블 TV를 설치하고 유료 채널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디즈니 플러스의 월 가격은 6.99달러로 넷플릭스의 가장 저렴한 요금제보다 저렴하고, 애플tv+는 4.99달러로 그보다 더 저렴하다.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기 어려운 처지가 된 것. 실제 디즈니+는 미국에 이어 유럽에 론칭돼 5개월 만에 넷플릭스 가입자(2020년 3월 31일 기준 1억8290만 명 추정)의 1/4 수준에 달하는 5,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디즈니 경영 악화 문제로 한국 진출은 미뤄지고 있지만 무서운 성장세인 것만은 사실이다.

인포03-1.jpg

국내 OTT 역시 매력적인 한류 콘텐츠를 중심으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사실 한국은 OTT 시장에서 후발주자가 아니다. 넷플릭스보다 5년이나 앞선 2002년 피처폰 시절에도 통신망을 통해 뮤직비디오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다. SKT와 KT에서 출시했던 준(June)과 핌(fimm)이 대표적인 서비스. 심지어 2011년에는 SK플래닛의 호핀(Hoppin) 등 스마트폰 기반의 OTT도 나왔고, 넷플릭스의 등장 이후엔 무제한 서비스도 발 빠르게 선보였다. 

하지만 해당 서비스들은 모두 OTT에 대한 인식 부족과 데이터 사용량 문제로 사라졌다. 최근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는 서비스들은 대부분 과거의 영화 플랫폼이 아닌 무제한 월정액 서비스로 탈바꿈했다. 즉, ‘넷플릭스형’ OTT로 변신했다. 대표적으로는 지상파 3사와 SKT가 함께 서비스하는 웨이브(wavve), KT의 시즌, JTBC와 CJ ENM의 합작법인이 서비스하는 티빙(TVING) 등이 있다. 

이처럼 OTT 산업에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면서, 업체 간 출혈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너도나도 매력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를 쏟아내는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은 사용자 확보를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 실제로 2019년 넷플릭스가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월 결제 금액을 10.99달러에서 12.99달러로 올리자, 미국 내에서 수십만 명 규모의 사용자 이탈이 발생한 바 있다. 다른 업체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가장 저렴한 요금제를 고수해야 한다는 딜레마는 앞으로 OTT 서비스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포02수정.jpg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OTT는 이미 TV와 방송사 위주의 전통적인 영상 플랫폼을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래 세대의 성향을 보여주는 통계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0대와 20대가 전체 OTT 사용자의 절반 정도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 여기에 30대를 포함한 오픈서베이의 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전체 유료 가입자의 약 70%가 젊은 세대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에게 TV는 이미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다를 것 없는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 중 하나’가 된 것. 

이제 방송사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서 독과점의 지위를 포기하고 온라인 퍼블리셔(Online Publisher)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종편 채널인 JTBC는 ‘와썹맨’, ‘워크맨’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룰루랄라’를 운영한다. MBC나 SBS 등 지상파 방송사도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 전용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성공적인 ‘온라인화’를 위해 방송사들은 핵심 타깃을 정하고, 이들을 기본으로 전체 타깃에 소구하는 ‘타깃 최적화’를 거쳐야 한다. 이 타깃 최적화를 통해 2차 콘텐츠가 양산되고, 이것이 2차 수익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가장 가까운 모범 사례는 최근 종영한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이다. 미스터트롯의 저작권과 광고는 1차 수익, 기획사와의 계약을 통한 수익과 콘서트, 굿즈 등이 2차 수익에 해당한다. 이처럼 2차 수익을 내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방송사는 또 다른 형태의 연예기획사가 될 것이고, 2차 수익을 낼 수 없다면 OTT 퍼블리셔(OTT Publisher)가 될 것이다. 방송사의 ‘넷플릭스’화다. 

이미 ‘OTT가 TV를 대체할까’ 같은 방송사 중심적인 질문은 무의미해졌다. TV와 방송사도 OTT 중 하나가 된 세상, 곧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바이라인 네트워크

이종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