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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하자드 RE:3 북미 버전 게임 포스터(왼쪽)와 레지던트이블 영화 포스터(오른쪽)(사진제공 : 게임피아, 네이버 영화)

최근 게임 화제작 중에는 유독 리메이크나 속편이 많다. 일본 게임개발사 캡콤이 지난 4월 3일 출시한 ‘바이오하자드 RE:3’도 그중 하나다. 바이오하자드 RE:3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레지던트 이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캡콤의 대표 프랜차이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중 ‘바이오하자드 3’를 리메이크한 작품. 특히 개발 과정에 ‘RE 엔진’이 활용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출시 전부터 게임 팬 사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RE 엔진은 바이오하자드 7부터 적용돼 지난해 GOTY(Game of the year)를 휩쓴 바이오하자드 RE:2로 이름을 널리 알린 캡콤의 자체 게임 개발 엔진. 후속작인 바이오하자드 RE:3 역시 RE 엔진의 특징인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과 디테일한 인물 표현으로 20년 전의 원작 바이오하자드 3와는 또 다른 질감의 공포와 흥분의 연속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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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하자드 RE:3 등장인물인 카를로스 올리베이라(왼쪽)와 최종 보스 네메시스(오른쪽)(사진제공 : 게임피아)

특히 배우의 얼굴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등장인물들의 외모와 더욱더 기괴하고 징그럽게 바뀐 생체 병기(Bio Organic Weapon)로 몰입감을 높였고,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영화 같은 스토리 영상 연출 역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스케일도 커졌다. 실내가 주전장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라쿤 시티 곳곳을 배경으로 사투가 벌어진다. 조작 방식을 개선하고 특히 전작의 회피 시스템을 계승한 ‘긴급회피’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액션 게임으로도 손색이 없다. 다소 분량이 짧아 가성비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게임 완성도 측면에서는 바이오하자드 7 이후 다시 돌아온 캡콤 전성기를 이어가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바이오하자드 RE:3로 엿본 캡콤의 저력 : 제2의 전성기 연 ‘RE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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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캡콤의 대표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인게임 화면(사진제공 : 게임피아)

캡콤은 ‘1942’, ‘스트리트 파이터’ 등 고전 게임에서부터 ‘바이오하자드’나 ‘몬스터헌터’ 등 대작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히트작을 배출해온 대표적인 게임 명가다. 캡콤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지에 따라 그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게임 팬 입장에서는 일본 게임 업계의 전반적인 부진 속에 한동안 명맥만 이어오던 캡콤이 다시 화려하게 부활을 알린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 

돌이켜 볼 때 일본 게임의 부진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좋았던 시절의 성공에 지나치게 탐닉해, 성의 없고 안이한 자기 복제의 매너리즘에 빠진 것. 세계관의 확장 없이 그저 타성에 젖은 속편으로 우려먹으려 했다. 

또 하나는 자국 콘솔 플랫폼이나 아케이드를 우선시한 나머지, 게임 트렌드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한 것. 지나치게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PS)에 치중하고, XBox와 PC와 같은 플랫폼을 등한시했다. 

달리 말하면 이 두 실수를 만회해, 속편의 기대치에 맞는 품질을 다양한 플랫폼에서 효과적으로 뽑아내면 반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캡콤이 다시 전성기를 찾은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리메이크를 통해 인기 프랜차이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이를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 것. 특히 핵심인 ‘속편의 기대치에 맞는 품질’을 구현해준 일등 공신이 바로 캡콤 부활의 Key로 꼽히는 ‘RE 엔진’이다. 

RE 엔진에 담긴 캡콤의 ‘성공방정식’ : 상대가 가지지 못한 기술로 공략하면 승리한다

현대 게임들은 대부분 ‘게임 엔진’을 쓰고 있다. 고해상도 그래픽과 사운드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래밍을 쉽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개발 환경을 말한다. 게임 엔진이 필요한 이유는 최종적 품질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물론, 한번 만들어서 다양한 플랫폼용 코드를 생성하는 일까지 엔진이 맡고 있기 때문. 때로는 게임 엔진이 게임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채택한 엔진의 종류는 게임의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게임은 유니티와 언리얼이라는 양대 게임 엔진을 가져다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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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 엔진 공식 로고(사진제공 : 게임피아)

독자적 엔진으로 게임의 퀄리티를 차별화한 사례도 없지 않다. 밸브의 소스 2 엔진, 데스 스트렌딩의 데시마 엔진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 이 리스트엔 캡콤의 RE 엔진도 빠질 수 없다. RE 엔진은 바이오하자드 7과 병행해 2014년부터 개발된 독자적인 엔진으로 현재 엔진 개발에만 50명 규모가 투입되고 있다.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일은 ‘문제를 스스로 풀겠다’는 용기와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락실 게임을 만들던 시절 비슷한 기판으로는 다른 회사와 비슷한 게임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달은 캡콤은 일본 전자기기 제조업체 리코(RICOH)에 칩 개발을 의뢰해 독자적 기판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MT프레임워크라는 자체 개발 엔진을 개발할 정도로 게임을 스스로 만들어 보려는 기개가 있었다.

캡콤은 MT프레임워크를 개발한 이후 15년간 잘 활용해왔다. 하지만 같은 엔진을 오랫동안 쓰다 보니 나중에는 각각의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엔진에 조금씩 손을 대기 시작했고, 결국 공통 엔진으로서 MT프레임워크의 위상은 무너졌다. 이에 지친 캡콤은 MT프레임워크를 포기하고 월드 엔진이란 별도 엔진으로 계승해, ‘몬스터 헌터’라는 특정 대작을 만드는 게임 엔진으로만 한정하기에 이른다. 대신 ‘AAA 타이틀(대작을 의미하는 업계 용어, 영화의 블록버스터에 해당)을 위한 범용 엔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바로 RE 엔진이었다. 

RE 엔진이 남긴 교훈 하나 : 쉽고 유연한 체계를 갖춰라

캡콤은 엔진 개발 단계에서부터 RE 엔진을 쉽고 유연한 개발 툴로 구현하는 데 주력해 생산성을 극대화했다. 또한, 이를 통해 경쟁사 대비 적은 자원으로 AAA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게 됐고, 변화하는 게임 개발 트렌드에도 한 발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캡콤은 우선 게임 로직(logic)으로 C++(대규모 응용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되는 프로그래밍 언어) 보다 쉽고 체계적인 C#(C++에서 파생된 프로그래밍 언어)을 선택했다. 또한, 캡콤은 C++보다 속도가 느린 C#의 구조적 한계를 회피하기 위해 독자적 가상머신 RE 엔진을 만들었고, 그 결과 C#으로도 C++로 짠 것 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또한, 변경한 코드의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개발은 PC에서, 실행은 콘솔에서 바로 해볼 수 있는 개발 툴(Tool)을 구현했다.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 나중에는 PC에서 원격으로 제어해 콘솔에서 바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개발 툴도 완성했다. 

이와 함께 캡콤은 RE 엔진의 각 기능을 조각내 조립 가능한 모듈로 구성했다. 하나의 툴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일체형 엔진이 아니라, 기능별로 엔진을 구분해 이를 선택해 조합하도록 한 것. 이처럼 모듈화할 경우, 필요에 따라 널리 쓰이는 외부 부품을 더할 수 있어 트렌드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사양 변경도 모듈 분리로 해결할 수 있어 하위 호환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엔진의 사양이 완전히 바뀌어도 예전 기능을 모듈로 남겨놓을 수 있기 때문. 

이처럼 코어를 분리해 내면 그 핵심 엔진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는 전사적인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각 게임의 유지보수도 엔진만 치환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게임들을 테스트용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게임 개발자도 코드, 즉 게임 로직을 짜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다. 한 번 짜놓은 코드는 세월과 함께 새롭게 개선된 RE 엔진에 의해 최신 기술로 최적화되고 마이너 업그레이드돼, 추가적인 작업이 소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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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엔진이 남긴 교훈 둘 : 빠른 이터레이션 속도를 구현하라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 프레임워크는 차별점이 있어야 자리를 잡는다. 개발자의 생산성을 높이든 유저의 사용성을 높이든,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한다. 이는 게임의 문법으로 이야기하자면 각각 생산성과 표현력이라는 과제인데, 캡콤은 이 중에서도 개발 퍼포먼스가 체험의 퍼포먼스도 만든다고 생각했다. 생산성이 좋다면 다양한 표현을 편하게 테스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캡콤은 게임의 규모가 양과 질에서 비대해진 실사형 게임을 간이 게임 만들듯이 신속하게 점진적으로 반복해 개발한다면, 즉 ‘이터레이션(iteration, 점진적 반복)’이 가능해지면, 도출되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마침내 그때그때 컴파일(개발용 언어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일반 컴퓨터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과정)돼, 개발 단계에서 수십만 줄의 코드, 십수만 개의 애셋(게임을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요소)을 지닌 대작도 10초 미만으로 풀빌드(Full-build)할 수 있는 RE 엔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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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레이션의 속도는 곧 경영의 속도다.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은 업무 환경을 갖추면 변화에 대한 심리적 허들도 낮아진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디테일한 표현력, 생동감 있는 플레이 모두 부담 없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발 환경에서 나온다. 

멀리 보고 게임 엔진과 같은 공통 기반을 자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한 캡콤의 부상은 많은 콘텐츠 기업에 생각할 거리를 남겨준다. 블리자드로 대표되는 서양 세력이 이렇게 힘이 빠져 버리게 될 줄 몰랐듯이, 게임의 이야기란 그 프로그램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던 체제와 문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에디토이

김국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