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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라이프

영화 <기생충>에 숨어 있는 기술 ‘반도체’

2020.03.20|by 자그니

 

2019년 개봉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수작. 상류층과 하류층 가족이 만나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가족 희비극. 이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이런 수식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숨어 있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애칭을 지닌 감독의 작품답게 <기생충>은 알려진 줄거리 말고도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관객 스스로가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재미. 따라서 이 작품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도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사람과 삶을 보여주고, 엮기 위한 ‘장치’로 쓰이기 때문. 지금부터 ‘기생충’ 속 반도체를 찾아가보자.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는 기택 가족

▲ 영화 <기생충>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은 반지하에 사는 김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와이파이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윗집 사람이 와이파이 공유기에 비밀번호를 걸어버리는 바람에 더는 무료로 인터넷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 기택의 집은 통신 요금도 제대로 못 낼 만큼 가난하다. 수신료를 내지 않기 위해 집에 TV는 물론 PC도 두지 않아 성적증명서 위조 작업도 피시방에서 할 정도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저렇게까지 하느니 그냥 없는 대로 맞춰 살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인터넷은 생명줄과 같다. 당장 다른 와이파이가 잡힌다고 하자마자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 분)이 달려와 아들 기우(최우식 분)에게 메신저 좀 확인해 달라고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친구한테 온 메시지를 확인하려는 게 아니다. 피자 상자 접는 일을 받기 위해서다. 이처럼 전화와 인터넷이 안 되면 세상과 연결되는 줄이 끊긴다. 일전에 누군가가 휴대폰 요금을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다. 

이들의 기생 생활을 돕는 핵심 반도체는 와이파이 칩셋. 스마트폰에 탑재되어 와이파이 신호를 잡아주는 부품으로, 정확한 표현은 ‘무선 랜 칩셋'이 맞다. 우리가 흔히 무선 인터넷이라고만 알고 있는 와이파이는 원래 제품 간 호환성을 보장하는 마크를 의미한다. 정말이다. 오래전에는 같은 무선 랜 장비끼리도 서로 호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호환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와이파이라는 인증 제도인 것. 예전부터 쓰이긴 했지만 와이파이의 본격적인 보급은 스마트폰과 함께 이루어졌다. 

지금은 다들 암호를 걸어놓고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암호를 건 무선 와이파이 공유기가 별로 없었다. 공유기를 만들 때 따로 암호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암호를 걸지 않은 개방형 와이파이를 사용하는 카페를 발견한다면, 오래된 공유기를 쓰고 있거나 매번 암호를 가르쳐주는 일이 귀찮아서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보안상 절대 권하지 않는 방법이다. 카페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암호가 없는 무선 공유기에 연결하는 일 역시 권장되지 않는다. 내 정보가 탈탈 털리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이니까.

하지만 기택의 가족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휴대폰도 다 끊긴 마당에 암호 없는 무선 공유기는 목마른 사람에게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참고로 와이파이 최신 규격(와이파이 6)은 최대 10Gbps의 속도를 지원한다. 더 많은 기기를, 유선 랜에 버금가는 속도로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기택 가족은 이 와이파이를 쓸 수 없다. 와이파이 6을 쓰려면 최신 스마트폰이 필요한데, 기택 가족이 쓰는 스마트폰은 구형, 즉 휴대폰 대리점에 가면 ‘0원 폰’이라고 불리며 판매되는 기종이기 때문이다. 

 

박 사장 가족은 디지털 기기를 쓰지 않는다

▲ 영화 <기생충>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기택 가족의 맏아들 기우(최우식 분)는 가짜 이력서를 통해 부잣집 과외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과외비를 선급으로 받자마자 휴대폰 요금제부터 바꿨을 것이다. 와이파이 걱정도 할 필요 없고, 무엇보다 과외 학생과 메신저로 소통을 해야 하니까. 가만 보면 영화 속에서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박동익 사장(이선균 분) 가족이 아니라 기택 가족이다. 영화 초반 이들이 ‘유튜브’를 활용해 피자 상자를 빨리 접는 방법을 배우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위장 취업에 성공한 다음 축하주를 마시는 자리에선 노상 방뇨하는 취객을 슬로우 모션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박 사장 가족의 가정부였던 국문광(이정은 분) 역시 마찬가지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지하에 몰래 숨겨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그녀는, 기택 가족의 약점을 잡자마자 동영상을 찍어 협박용으로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이런 식으로 쓰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채업자가 찾아와 협박할 때, 평범한 사람들이 영상을 찍어 기록하는 것 말고 자신을 지킬 마땅할 방법이 있을까? 우리에게 스마트폰 카메라는 가장 가까운 보디가드다. 

반면 글로벌 IT 기업 대표라는 박 사장 가족은 스마트 기기를 별로 쓰지 않는다. 기택이 면접을 보기 위해 회사에 찾아갔을 때, 박 사장이 만지작거리던 가상현실 헤드셋 장비 정도가 유일할 정도다. 박 사장 아내인 최연교(조여정 분)는 백만 원이 훨씬 넘는 최신 스마트폰을 쓰지만, 그것의 용도는 전화와 문자가 전부다. 박 사장은 아예 스마트폰이나 PC를 쓰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다. 종이에 인쇄된 보고서는 검토하면서도 말이다. 

박 사장 가족 중 그나마 스마트 폰을 잘 쓰는 사람은 박 사장의 자녀인 박다혜(정지소 분)나 박다송(정현준 분) 정도인데, 이들도 카톡이나 문자를 주고받는 정도가 전부다. 교육에 나쁘다고 생각했는지 TV도 없다. 왜일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디지털 미니멀리즘 운동이 비판 받는 이유가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중산층 이상, 즉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과 같다.

 

반도체가 삶을 지킨다

영화 <기생충> 속 박 사장 가족은 디지털 기기를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다. 교육이 필요하다면? 개인 가정 교사를 고용하면 된다. 다송이를 위한 미술 선생님과 다혜를 위한 영어 선생님을 따로 고용했던 것처럼 말이다. 전용 운전기사가 있으므로 우버나 타다도 필요 없다. 가사를 담당하는 가정부가 따로 있기에 쿠팡이나 마켓컬리를 이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외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인 경비 출동 서비스 정도를 꼽을 수 있을까. 하지만 CCTV 회선이 잘렸는데도 아무도 출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 영화 <기생충>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꼼꼼한 봉준호 감독은 2층 양옥과 반지하 방의 대비처럼 디지털 기기 사용법 하나를 가지고도 양쪽 계급의 습속을 드러내 보여준다. 비싼 기기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아니 사용할 필요가 없는 사람과 싼 기기를 가지고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 디지털로 돈을 벌면서 디지털을 멀리하는 사람과, 디지털로 돈을 벌고 싶으면서도 디지털 기기를 살 돈이 없는 사람으로. 

끝내 갈등은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어진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사이, 서로가 가진 비밀을 들킨 두 가족이 서로 기생할 권리(?)를 가지기 위해 싸우다가 파멸적 결과를 낳고 마니까. 하지만 우리는 원래 서로에게 조금씩 기생하며 살고 있다. 박 사장이 버는 그 많은 돈은 누구에게서 왔을까. 문광을 괴롭히던 사채업자도 돈을 빌린 사람들에게 기생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 사채업자가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말이다.)

▲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IT 기기 속 반도체

가진 것에 따라 교육, 소통, 더 나은 삶으로 갈 기회가 다르게 주어지는 사회다. 이런 세상에서 반도체와 이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기기와 서비스는 분명히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윤택하게 만든다. 기술을 똑똑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활용할 수만 있다면 영화 <기생충> 속 기택과 그의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영역에 기생하지 않아도 다른 차원의 삶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그것을 '나쁘게' 쓸 때 발생한다. 만약 기택과 가족들이 조금 더 다른 방법으로 스마트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박 사장 가족에게 기생하는 것만큼 쉽게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도 영화 속 결말과 같은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배우지 못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닌 격차를 비극 없이 메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기술은 항상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다.

※ 본 기사는 기고자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