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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NOLOGY/비즈니스

[트렌드 리포트] 반도체 업계, 위기 속 활로 찾아 분주

2020.02.28|by 강동철

 

코로나19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반도체 업계에도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폰 시장의 위축은 반도체 수요 감소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올해 들어 반등이 기대됐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역시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혹한기를 겪었던 반도체 시장이지만, M&A 건수는 역대 세 번째로 많았다. 어려울수록 새로운 기회를 찾는 반도체 업체들의 승부수가 연이어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 미칠까? 

지난달부터 중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이 멈췄다. 중국 공장의 가동 중단은 자동차, 스마트폰, PC 등 완제품 시장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지만, ‘산업의 쌀’ 반도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단 한국의 주력 반도체인 D램과 낸드플래시는 중장기적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이미 D램의 현물가격은 1개당 3.36달러(DDR4 8Gb 기준)로 지난 4일(3.487달러)에 비해 4%가량 하락했다. 중국의 춘절 연휴가 연장되고 코로나19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지속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것. 

실제로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공장을 비롯해 중국 내 주요 스마트폰, PC 업체들의 공장은 2월 중순까지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작년 내내 지속한 불황기를 딛고 다시 반등해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파운드리 업체들 역시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TSMC의 주요 고객사인 하이실리콘, 미디어텍 등은 중국 내 공장 가동 중단, 생산량 감소 등으로 TSMC에 맡기는 파운드리 물량을 크게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TSMC 역시 실적 악화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의 제조 공장이 언제 정상 가동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9일부터 공장을 정상 가동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각 지방 정부는 외부에서 복귀한 이들에 대해 자체 격리하는 등의 별도 조처를 하고 있다. 고향에서 돌아온 이들이 공장으로 제대로 복귀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하면서, 최소한 이번 달 말까지는 정상 가동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내 소식통들은 “2월 말이 되어도 근로자의 80~90% 정도만 복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반도체 수요에도 중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제조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전체 반도체 소비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인 중국의 내수 경기 악화는 이런 가능성을 더욱 뒷받침한다. 외출 자체를 하지 않을 정도로 위축된 중국 소비 시장에서 PC, 스마트폰 등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 글로벌 시장조사업체들은 올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최대 2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역시 5G의 본격 확산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역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 AP가 주요 수익원인 반도체 업체들은 코로나 사태에 최소 수개월 이상 영향받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사태에 직격탄 맞은 스마트폰 업체들…애플은 실적 하향 조정까지

코로나19 사태는 반도체보다 스마트폰 업계에 더욱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세계 5대 스마트폰 업체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업체가 모두 중국에 주력 생산 공장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올해 1분기(애플 회계연도 기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다음 분기 매출액을 630~670억 달러로 전망했으나, 최근 실적 가이던스를 조정하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실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자 가이던스를 하회하는 실적을 낼 것이라고 선제 발표한 것. 

애플의 실적 하향은 아이폰을 위탁 제조(OEM)하는 대만 폭스콘의 공장 가동 중단과 연관이 깊다. 아이폰은 주로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정저우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우한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데다, 외부 출신 근로자들이 많은 지역이다. 이에 폭스콘과 정저우 정부는 춘절 연휴가 끝난 9일 이후에도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 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 

급감하는 수요 역시 이런 우려를 증폭시킨다. 중국은 북미, 유럽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기 때문. 이미 애플은 중국 내 애플 스토어 영업을 중단한 상황이고, 아이폰을 판매 대행하는 매장 중 상당수도 영업 중단 또는 영업시간 단축에 나서고 있다.

애플뿐만 아니라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등 중국 대표 스마트폰 업체들의 타격도 상당하다. 화웨이의 주력 공장이 있는 광둥성은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에 이어 두 번째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타격이 큰 지역이다. 당초 중국 정부는 화웨이 공장에 대해 이례적으로 조기 가동을 승인했지만, 광둥성 정부가 외지에 다녀온 근로자들을 별도 자가 격리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공장 가동 시점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신제품 공개가 연기된 것 역시 시장 우려를 키운다. 당초 LG전자, 샤오미 등은 이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 2020에서 스마트폰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MWC 2020 행사 자체가 취소되면서 신제품 공개 마케팅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일부 업체들은 온라인 공개 등으로 선회하고 있지만, 시장 초기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은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위기는 기회? 지난해 불황으로 주춤했던 반도체 업계, M&A는 역대 3번째로 많아

지난해 세계 반도체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부진으로 인해 최악의 불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반도체 업체 간 인수합병(M&A)은 역대 3번째로 많았을 정도로 활발했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에서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반도체 업체 간 합종연횡 바람이 거셌던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반도체 시장 조사업체 IC인사이츠가 집계한 반도체 업계 M&A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단행된 M&A 규모는 총 317억 달러로 2015년 1,077억 달러, 2016년 598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이는 2018년과 비교하면 22%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가장 규모가 컸던 M&A는 독일의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이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 기업 사이프러스 반도체를 94억 달러에 인수한 것. 이는 반도체 업계 역사상 9번째로 큰 M&A였다. GPU 업체 엔비디아는 69억 달러에 네트워크 기술 기업인 멜라녹스를 인수했고, 인텔은 20억 달러에 이스라엘의 AI 반도체 기술 기업 하바나랩스를 인수했다. 또 퀄컴과의 합병이 무산된 NXP는 18억 달러에 마벨 테크놀로지의 와이파이 사업 부문을 인수했고, 애플도 10억 달러에 인텔의 스마트폰 모뎀 칩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단순히 기업 대 기업의 인수합병뿐만 아니라 특정 사업 부문을 쪼개 매각, 인수하는 구조조정 차원의 M&A도 활발히 벌어진 셈이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에서 M&A가 활발히 단행된 배경은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대기업들과 생존을 위해 매각을 선택한 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기술이 속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차세대 기술을 입도선매해 경쟁력을 키우려는 대기업들이 업황 악화를 틈타 빠르게 매물 인수에 나선 것. IC인사이츠는 “특히 머신러닝, AI, 자율주행차, 컴퓨터 비전, AR, VR 같은 첨단 기술 분야의 반도체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의 인수가 활발히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불화수소, PR 국산화 가속화…SK, 솔브레인 등 대∙중소기업 앞장서 기술력 향상

지난해 한국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었던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의 타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노력이 속속 성과로 가시화돼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상당수의 핵심 소재를 일본에 의존해왔던 관행에서 탈피해, 국내 자급이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 심지어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근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규제를 계기로 시작된 한국의 탈일본 움직임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중 가장 앞선 성과를 보이는 분야는 불화수소다. 일본의 양대 반도체 수출 규제품목 중 하나인 불화수소는 반도체의 식각, 세정 등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작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스텔라케미파 등이 한국에 대부분의 물량을 공급하고 있었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인해 불화수소 공급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의 대표적인 불화수소 생산 업체인 솔브레인이 제2공장 가동을 시작하면서 초고순도 불화수소 공급량을 대폭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솔브레인 측은 “현재 구체적인 생산 물량을 밝힐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한국에서 사용하는 불화수소는 자체 공급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이러한 국내 업체들의 불화수소를 조기 상용화하기 위해 시험 기간을 단축하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정부 역시 신규 공장 건립 시 규제를 완화해주는 등의 지원책을 내놨고, 그 결과 솔브레인의 불화수소 공급량이 당초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났다. 

대기업에서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이 SK그룹이다. SK그룹의 반도체 소재 업체인 SK머티리얼즈는 현재 경북 영주에 기체 불화수소 생산 공장을 짓고 올 상반기 중 양산을 시작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시제품은 각 기업 공장에서 공정 적용 여부를 테스트하고 있다. 솔브레인에 이어 SK머티리얼즈의 불화수소까지 안정적으로 공급될 경우 불산 공급난으로 공장이 멈출 것이라는 우려는 크게 덜게 된다.

여기에 SK머티리얼즈는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핵심 소재 공급 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다. 감광액은 반도체 노광 공정에서 회로를 그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소재다. 현재 국내 감광액 기술은 불화아르곤(ArF)용 공정에 쓰이는 수준으로 전해졌지만, 조만간 차세대 기술인 EUV(극자외선)용 공정에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역시 이번 M&A를 발판 삼아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도 빠르게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 본 기사는 기고자의 주관적 견해로, SK하이닉스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