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부진을 겪던 국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감지되고 있다. 12월 D램 가격이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일부 완화한 것. 글로벌 시장에서는 인텔의 활약이 눈에 띈다. 업계 최초로 1.4나노 공정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을 발표했고, AI 반도체 시장 공략을 위해 스타트업과 손을 맞잡았다. 한편 미•중무역 전쟁의 여파로 미국 팹리스 기업들이 줄줄이 실적 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월에 포착된 D램가 상승곡선, 메모리 시장의 반등 시그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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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들어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현물가(DDR4 8Gb 기준)는 지난 4일 최저점인 2.000(확인) 달러를 기록한 이후, 줄곧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23일 기준 3.027달러까지 올랐다. 약 2주 만에 50% 이상 뛴 것. 현물가격은 일반 소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D램 가격을 기준으로 집계하는데, 이는 기업 간 대량 거래에 쓰이는 고정거래가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한다. 지난 7월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당시 수급 우려로 잠시 현물가가 올랐던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외부 요인 없이 가격이 상승한 것인 만큼 내년 초 반도체 경기 반등의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현물가 상승의 배경으로 수요 증가를 꼽고 있다. 올해 들어 주문량을 급격히 줄였던 서버 업체들이 최근 들어 다시 D램 주문을 시작했다는 것. 여기에 내년부터 5G(5세대) 이동통신의 글로벌 상용화가 본격화됨에 따라 스마트폰 업체들이 5G용 고성능 대용량 스마트폰을 대거 출시할 것으로 예상돼, 모바일용 D램 수요도 폭증할 전망이다. 이에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실적발표를 통해 “이번 분기가 재무적인 실적 바닥”이라며 내년 이후 실적 상승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올 초 저점 대비 주가가 각각 50%, 60% 이상 상승한 상황으로 전고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투자자들이 일찌감치 반도체 업황 반전을 예상하고 자금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

하지만 2018년 수준의 초호황기 실적을 재연하기는 힘들 전망이다. 2018년 하반기 D램 가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가격이 최소 3배는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도체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연중 가격이 지속 상승하는 랠리를 기록할 것”이라며 “2021년 이후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회복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日 정부, 반도체 수출규제 일부 완화… 포토레지스트 특정포괄허가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3종(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을 한국에 수출할 때 실시했던 수출규제 강화 조치 중, 포토레지스트(반도체 회로를 그릴 때 사용하는 감광액)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수출규제 이전처럼 일본 수출기업이 건별로 수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됐던 ‘일반 포괄허가’로 완전히 되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가 일정 조건을 충족한 자국 기업에 한해 수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특정포괄허가’로 강도를 낮춘 것.

일본 경제산업성은 20일 한국에 수출되는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를 특정포괄허가 대상으로 변경하는 일부 개정령을 공시했다. 개정령은 공시와 함께 시행된다. 원래 일본 기업은 3년에 한 번씩 허가를 받으면 반도체 소재 3종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이 같은 포괄 허가를 건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식으로 규제를 강화한 상태였다. 

이번 수출 규제 완화가 한국 반도체 업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아직 사용량이 많지 않았던 데다, 벨기에 등 해외 공장을 통해 들여올 수 있어 당초 우려한 만큼 타격이 크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향후 불화수소 등 다른 규제 품목의 규제 완화까지 이어질 경우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는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인텔, 2029년까지 1.4나노 공정 개발 완료한다는 로드맵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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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이 업계 최초로 1.4나노까지 이어지는 공정 기술 로드맵을 구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 삼성전자, TSMC 등 파운드리 업체들이 3나노 공정 기술 개발까지는 공개한 적 있었지만, 그 이하 수준으로 미세공정 로드맵이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SML이 최근 IEEE IEDM(IEEE International Electron Devices Meeting)에서 공개한 발표 자료에 따르면 인텔은 2021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활용한 7나노 공정을 상용화하고, 2023년에는 새로운 기술을 통한 5나노 상용화, 2025년에는 3나노, 2027년에는 2나노, 2029년에는 1.4나노까지 미세 공정 수준을 줄여나갈 계획으로 전해졌다.

당초 인텔이 해당 행사에서 공개한 자료에는 연간 로드맵만 있었을 뿐 공정 기술 수준을 엿볼 순 없었다. 하지만 미세공정의 핵심 장비인 노광장비를 개발하는 ASML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인텔의 미래 기술 준비 내역이 나타난 것이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인텔이 이번 기술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IN MOORE WE TRUST(무어의 법칙을 여전히 신뢰한다)’고 쓴 점이다. 당초 미세공정 기술의 한계로 인해 무어의 법칙은 생명력을 잃은 것으로 판명됐으나 장비, 재료 기술 개발 등을 통해 다시 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

세계는 지금 AI 반도체 열풍… 인텔, 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 20억 달러에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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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 이스라엘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하바나랩스를 20억 달러에 최근 인수했다. 인텔은 이에 앞서 2016년에도 이스라엘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된 AI 반도체 기술 기업 너바나를 인수했다. 연이어 이스라엘산 AI 반도체 기술을 사들이면서 차세대 먹거리로 AI를 정조준한 것. 이번에 인텔이 인수한 하바나는 2016년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미국 새너제이, 중국 베이징, 폴란드 등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하바나랩스는 지난 6월 ‘가우디 AI 트레이닝 프로세서’를 내놓으면서 기존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같은 제품보다 훨씬 연산속도가 빠른 제품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이번 인수에 대해 “데이터센터용 AI 제품을 강화해 AI 환경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AI 반도체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는 대기업도 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에 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래프코어의 전용 반도체를 도입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지난 2년간 공동 연구를 한 끝에 AI 학습, 추론 능력을 데이터센터에 도입할 수 있는 반도체를 개발, 운영한다고 밝혔다. 안면인식, 자율주행 등 AI 기능을 클라우드 상에서 빠르게 인식,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AI 반도체 육성을 추진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인공지능 국가전략 발표를 통해 2029년까지 1조 원 이상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에 기반한 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고 밝혔다.

화웨이 제재에 美 팹리스 최대 타격… 브로드컴, 퀄컴 등 줄줄이 실적 악화

미•중 무역전쟁 속 화웨이에 대한 거래 제한 조치 등이 올 하반기 반도체 시장을 강타하면서 미국 팹리스 업체들의 실적이 줄줄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퀄컴, 브로드컴 등 미국 팹리스 업체들은 물량의 상당수를 화웨이에 납품해왔으나, 미국의 제재로 인해 화웨이발 물량 수주가 줄어들고, 시장 침체 우려로 전반적인 주문 건수가 줄어든 탓이 크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글로벌 팹리스 시장에서 1위인 브로드컴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12.3% 줄어든 41억8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브로드컴은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와의 거래 제한 조치로 인해 막대한 실적 하락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3개 분기 연속 매출이 줄어드는 추세다.

2위인 퀄컴 역시 1년 전보다 22.3% 떨어진 36억1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퀄컴 역시 화웨이에 AP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게다가 다른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에 납품하는 과정에서도 중국, 대만 현지의 미디어텍, 유니soc 등과 치열한 경쟁에 직면한 상황. 고성능 AP에서는 여전히 퀄컴의 지위가 압도적이지만, 저성능, 저가 제품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이미 따라왔기 때문이다. 3위인 엔비디아 역시 가상화폐 시장 위축 등으로 인해 매출이 같은 기간 9.5% 줄어든 27억3700만 달러에 그쳤다.

반면 실적이 급상승한 업체도 있었다. 미국의 CPU 팹리스 업체 AMD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9% 늘어나면서 성장세를 기록했다. AMD는 올 한해 지속됐던 인텔의 CPU 공급 부족 사태를 틈타 시장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실적 상승세를 기록했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테크 칼럼니스트 / 전 조선일보 기자

강동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