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반도체 시장의 침체가 끝을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에 들어서며 반도체 재고량이 소폭 하락한 것. 고성능, 고가 제품군의 등장으로 메모리 수요가 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향후 실적 반등이 기대되는 분위기. 글로벌 반도체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인텔은 삼성에 내줬던 업계 1위 자리를 올해 다시 되찾아올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의 YMTC는 최근 낸드플래시 출하량을 늘리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 양대 메모리 업체들, 3분기에도 실적 주춤…‘내년부터 반등’ 전망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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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를 이끄는 양대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에서 나란히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업계선 이 같은 하락세가 조만간 끝나고 내년부터는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반도체 사업에서 매출 17조5,900억원, 영업이익 3조5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매출은 28.9%, 영업이익은 77.6% 줄어든 수치다. SK하이닉스 역시 3분기 매출 6조8,388억원, 영업이익 4726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0%, 영업이익은 93% 줄었다. 양사 반도체 사업의 영업이익률도 한때 50%를 넘나들었지만, 올해는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이러한 실적의 배경은 멈추지 않는 메모리 가격 하락세다. D램익스체인지는 양사의 주력 제품인 D램의 고정거래가가 10월에도 전월 대비 4.42% 줄었다고 밝혔다. 지난 8, 9월에는 가격 변동이 없었던 것에 반해, 10월에 한 차례 더 떨어진 것이다. 판가가 계속 하락하다 보니 수익성이 악화됐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같은 하락세가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그간 급증 추세를 보여왔던 양사의 반도체 재고량이 올 3분기 들어 소폭 하락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재고 주수가 2분기 7주에서 3분기 5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또 5G(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 폴더블폰 보급 등 모바일 시장에서 고성능, 고가 제품군이 등장하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메모리 수량이 늘어나고, 지난 1년여간 재고 조정을 위해 주문량을 대폭 줄였던 서버 업체들이 다시 하반기 들어 주문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실적이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3분기 D램 선주문량이 늘어나면서 D램 매출이 4% 늘었다”고도 밝혔다.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늦어도 내년 2분기에는 다시 실적 반등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수출 규제로 ‘제 발목’ 잡은 일본, 핵심 소재 수출 허가 나서

지난 7월부터 단행된 일본 정부의 한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인해 일본 소재 업체들의 실적 하락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한국 규제가 도리어 일본 소재 업체에게 직격탄이 된 셈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일본의 스텔라케미파는 지난 7월~9월 영업이익이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10분의 1 수준에 그치는 1억4800만엔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53.9% 줄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7월 이후에는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진 것. 

스텔라 케미파는 순도가 소위 트웰브 나인(99.9999999999%) 이상인 초고순도 불화수소 제조 기술을 가진 업체다. 이 회사는 불화수소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한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공급해왔지만, 수출 규제로 인해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실제로 이 회사는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업황 악화, 미중 무역전쟁, 한국에 대한 수출 관리 강화 등으로 실적이 줄었다”고 밝혔다.

한편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초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한 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했지만, 지난 15일 스텔라 케미파가 신청한 고순도 액화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 요청을 허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 7월 주문한 물량으로 지난 8월 중순에 접수를 받았고, 심사 만료 기한인 90일이 끝나기 직전에 허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초 삼성전자가 신청한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고, 8월 말에는 불화수소 수출 신청을 허가한 바 있다. 이로써 반도체 공정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들을 모두 일본 정부가 한국에 최소한 1번씩은 수출을 허가해준 셈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지소미아 연장 불가가 효력 정지 상태가 된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 등이 진행되며 반도체 수출 규제 해결도 기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9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왕좌, 올해는 인텔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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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차지했던 세계 반도체 업계의 시장 1위 자리가 올해는 인텔로 바뀔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매출 기준 1위는 미국 인텔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IC인사이츠는 인텔이 올해 매출 698억 3,200만 달러를 기록해 작년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작년보다 29% 줄어든 556억1,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년에는 삼성전자가 매출 785억4,100만 달러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인텔과 삼성전자의 자리가 역전된 배경에는 올 한해 반도체 시장을 휩쓸었던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가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급 불균형에 고객사의 주문량이 급감하면서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메모리 위주인 삼성전자의 실적은 악화된 반면, 인텔은 작년부터 난항을 겪었던 CPU 생산 차질 문제를 해결하면서 올해 반도체 시장에서 실적을 방어할 수 있었다. 여기에 5G, AI(인공지능) 등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인텔의 주력 제품인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성장세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작년 세계 3위였던 SK하이닉스는 올해 4위를 기록하고, 그 자리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차지할 전망이다. TSMC는 애플 아이폰 신제품 출시, AI 반도체 수요 급증 등에 따라서 실적이 소폭 성장할 것으로, SK하이닉스는 작년 대비 매출이 38% 가량 줄어들 것으로 각각 예상됐다.

YMTC, 64단 3D 낸드플래시 출하량 증가…저가 제품 시장 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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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가 최근 64단 3D 낸드플래시의 출하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YMTC는 작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체 개발한 3D 낸드플래시 기술을 공개한 데 이어 올 1분기부터 월 5,000장(웨이퍼 입고 기준) 규모로 64단 3D 낸드플래시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웨이퍼 입고량을 대거 늘려 생산량을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분석이다. 대만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지타임즈는 “YMTC가 내년 연말까지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월 6만장 규모로 확대할 것”이라며 “이번 생산량 증대는 이를 위한 신호탄”이라고 보도했다. 64단 3D 낸드플래시는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92단, 96단 제품과 비교해보면 기술 수준이 1~2단계 가량 낮은 제품이다. 하지만 저가형 스마트폰 등에서는 여전히 많이 쓰이는 반도체 제품. 반도체 업계에서는 YMTC가 자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많이 쓰는 염가형 제품부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64단 제품의 생산량을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YMTC는 내년부터 96단 낸드플래시 양산 대신 128단 제품을 선보일 계획으로 전해졌다. 기술 세대를 2단계 뛰어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키오시아(구 도시바) 등 주요 낸드플래시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단번에 좁히겠다는 것. 만약 YMTC의 128단 낸드플래시가 정상적으로 양산될 경우 올해 공급 과잉으로 심각한 업황 부진을 겪었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계 슈퍼컴퓨터 500 순위 발표…양은 중국, 질은 미국이 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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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두 차례씩 발표하는 세계 슈퍼컴퓨터 top 500 순위 발표에서 미국의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서밋(summit)이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오크리지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서밋은 이론 상 최고 속도 20만795 페타플롭스를 기록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20만 페타플롭스 벽을 깬 슈퍼컴퓨터 자리를 지켰다. 서밋은 2018년 6월 처음 1위에 오른 이후 4번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뒤를 이은 슈퍼컴퓨터도 미국의 몫이었다. IBM과 엔비디아, 멜라녹스가 공동 제조한 시에라는 이론상 최고속도 12만5712페타플롭스를 기록했다. 특히 시에라는 전력 소모량이 1위인 서밋보다 훨씬 적은 7,438kW(킬로와트)를 기록해 비교적 전력 효율이 좋은 슈퍼컴퓨터 자리를 차지했다. 두 제품은 모두 IBM의 슈퍼컴퓨터용 칩셋과 엔비디아의 V100 GPU를 탑재한 슈퍼컴퓨터이기도 하다. 

한때 세계 슈퍼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던 중국은 선웨이 타이후라이트가 3위를 기록하면서 체면치레를 했다. 중국 우시의 국립 슈퍼컴퓨터센터에서 운영하는 선웨이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CPU를 탑재해 성능을 높였다는 주장으로 유명해졌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최고 12만5,435 페타플롭스를 기록해 시에라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나, 전력 소모량이 1만5,371kW에 달해 비교적 효율성이 낮다.

비록 1위 자리는 미국에 계속 내주고 있지만, 중국은 양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인 1위 국가 자리를 굳히고 있다, 중국은 총 500대의 세계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 가운데 총 227대를 보유해 6개월 전보다도 8대가 더 늘었다. 반면 미국에 있는 슈퍼컴퓨터는 역대 최저치인 118대에 불과했다. 성능 측면으로 봤을 때 미국의 성능 점유율이 37.8%로 중국의 31.9%보다 앞섰으나, 이 지표 또한 지난 6월 미국(38.4%)과 중국(29.9%)의 격차에 비해서는 줄어든 수치다.

※ 본 칼럼은 반도체/ICT에 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외부 전문가 칼럼으로, SK하이닉스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테크 칼럼니스트 / 전 조선일보 기자

강동철